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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Jul 19. 2024

토마토가 과일이어야 하는 이유

토마토는 과일계의 이민자다. 과일로 태어나 과일성을 부정당하고 채소로 살아간다. 나는 채소로 살아가는 기분에서 표백제로 세수하던 혼혈인 아스카를 떠올렸다. 그러나 측은지심은 인간중심적 관점일 뿐, 토마토와 무관할지도 몰랐다. 과일과 채소의 구분은 인간의 일이었다. 무엇이 되었든 인간에게 먹히는 토마토의 숙명은 변하지 않는다. 단, 먹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중요했다. 토마토는 과일이어야 했다.


과일을 일상적으로 먹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토마토는 1순위가 아니었다. 토마토는 과일성이 부족했다. 토마토는 요리에 주로 쓰여 채소가 되었다. 그러나 이 분류법에 동의하는 한, 토마토는 내게 채소일 수 없었다. 나는 실천이 본질을 결정한다고 믿었고, 토마토로 요리한 적 없었다. 분명 생으로만 먹었으니 과일에 가까웠지만, 오이도 생으로 잘 먹어 정체성이 유보되었다. 맛이 첨가된 납작하고 뚱뚱한 오이는 채소인가 과일인가?


‘토마토 맛’ 하면 토마토보다 케첩이 떠올랐다. 지금은 케첩 먹을 일이 거의 없지만 케첩은 유년에 각인 된 첫 소스다. 핫도그를 완성시켜 주는 화룡정점이자 식빵을 식용으로 승인하는 최고존엄이었다. 사람에 따라 토마토 소스가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내 식문화에서 토마토 소스는 피자 속에서 토마토 맛 보호구역을 건사할 뿐이었다. 간혹 냉동피자를 먹었고, 토마토 파스타는 먹지 않았다. 파스타는 식재료 대비 값이 부당했다. 파스타는 여자와 먹는 의무이고, 여자와 식사할 일은 없으니, 뭐 그렇다.


GPT에게 토마토 맛을 물었다. GPT는 단맛, 산미, 감칠맛, 신선한 맛, 풋내로 정리했다. 산미는 케첩으로 이해했다. 감칠맛은 뜻금없었지만 토마토 소스가 대중적인 이유로 이해했다. 신선한 맛, 풋내는 오이로 공감했다. 오이가 호불호 갈린다는 것을 알았을 때 놀랐을 정도로, 오이는 내게 신선하고 풋내나는 당위였다. 토마토는 맛은 달랐지만 오이와 비슷한 청량감을 줬다. 그러나 단맛은 의외였다. 하긴 너도 과일인데 단맛이 없을 리가.


토마토에서 단맛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설탕토마토 때문이다. 청소년기 이후로 설탕이 토마토의 영양분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엄마가 설탕토마토를 만들어 준 적 없었다. 음식을 맛 때문에 먹는 걸 누리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삐쩍 마른 자식에게 가닿지 못하는 영양분이 아쉬우셨겠지만 살 찌우려면 설탕을 먹이셔야 했다. 지금은 단맛에 환장할 나이라기보다는 당 눈치 볼 나이라서 굳이 설탕토마토를 찾지 않았다. 무엇보다 칼질에 설탕까지 찾아 넣어야 하는 작업이 귀찮았다. 15년 전 개봉한 설탕이 거의 정량 그대로 싱크대 안에 있다. 토마토에서 단맛을 떠올린다면 설탕토마토의 기억 때문이라 생각했다.


토마토는 내 취향이어야 했다. 씻어 먹으면 되고,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지 않아 간편했다. 군동작을 요구하지 않은 쉬운 과일이 맛도 좋았다. 단맛으로 기억하지 않지만 초월적 오이로서 새콤 상큼 입 안을 깔끔하게 헹궈줬다. 무엇보다 입체적 질감이 좋았다. 탱탱한 몸체를 살점처럼 뜯으면 씨앗을 보호하는 젤리가 흘러내렸다. 탱탱함과 흐물흐물함은 단짠단짠처럼 식감을 상호확증했다. 급하게 먹다가는 툭 터지는 젤리에 흰옷을 낭패보는 경우가 있어서 천천히 먹어야 했다. 느리게 먹어야 포만감이 차오를 틈을 주므로 토마토는 먹는 방식까지 다이어트를 위해 존재하는 과일이었다.


인근에 토마토 하우스가 지척이었다. 대단위는 아니지만, 봄날 강변 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오갈 때, 길가에서 박스를 쌓아 놓고 파는 정도는 되었다. 한 박스 10,000원짜리를 나는 번번히 지나쳐 왔다. 자전거에 짐을 실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상자는 두고 토마토만 배낭에 넣어 오면 되었다. 5,000원짜리 참외는 그렇게 사곤 했었다. 아마 10,000원이 심리적 장벽이었던 모양이다. 우리동네 돼지국밥 6,000원 하던 시절이었다.


돼지국밥 8,000원 하는 요즘, 10,000원은 소비 심리 장벽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올 봄에는 자전거를 타지 않아 토마토를 볼 일 없었다. 마트에 너덧 개 단위로 포장해서 파는 몇 천원짜리는 가성비 설득력이 없었다. 박스 단위로 파는 것은 10,000원을 넘어가 쳐다보지도 않았다. 점심값 10,000원을 이제 조금씩 생활에 들이는 소비 수준에서 과일값 10,000원은 아직도 부담스럽다.


토마토를 생활에 들인 것은 순전히 비합리성 때문이다. 마트 안 10,000원과 스마트폰 안 10,000원은 체감 물가가 달랐다. 알리에서 한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농산물을 세일가에 뿌렸을 때, 10,000원이 넘는 토마토 한 박스는 인터넷 최저가로 내 소비 심리 장벽을 간단히 부쉈다. 박스 단위로 사서 냉장고에 넣어 두고 먹었다.


기기를 써서 과일-야채 종합 주스를 만드는 시간 낭비는 하지 않았다. 내가 설거지를 자청할 리 없었다.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믹서기를 샀다가 한 번 쓰고 보관 중이다. 누군가 대신 갈아준다 한들 사양한다. ‘탱흐탱흐’를 씹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박탈당해서도 손해고, 느리게 먹어 포만감이 내려앉을 시간을 주지 못해서도 손해다. 토마토는 모든 과일이 그렇듯, 생으로 먹어야 한다.


다이어트 음식으로서 토마토는 파격적이다. 100g에 19칼로리다. 1kg을 먹어도 190칼로리. 알리에서 5kg 14,279원에 샀으니 하루 10,000원이면 배부르게 살 뺄 수 있다는 계산이 선다. 과일이 아니라 끼니라서 지나치게 저렴해졌다. 비뇨기과 의사들이 단 하나의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단연코 토마토라고 했으니 영양학적으로도 문제 없을 듯하다. 짱짱한 오줌발로 자신감도 곧추 세우니 일석이조다.


끼니로서 토마토는 관용적이다. 탄단지를 보충할 감자나 계란과도 잘 어울렸다. 설탕대신 바나나도 좋았다. 젤리는 자기 부피 몇 배의 퍽퍽함도 촉촉하게 받아들였다. 여기에 아메리카노를 곁들이면 가볍고 든든한 아침이 완성되었다.


토마토의 제자리는 야식이다. 아침이야 가장 굶기 만만한 끼니고, 대안도 많다. 그러나 한 밤중 출출함은 참기 힘들다. 라면, 치킨, 족발로 거창하게 채우진 않지만, 바나나를 먹어도 와구와구, 400칼로리짜리 아침에 준하게 먹어왔다. 토마토는 ‘많이 먹으면 오줌 눈다.’ 때문에 적정량이 지켜졌다. 많이 먹는다 한들, 100칼로리를 넘기기 힘들었다. 먹을 때 살점을 뜯는 기분 때문인지 심리적 포만감이 들었다. 물론 물배는 금방 꺼지겠지만, 잠들기 한두 시간 전, 나를 속이기 좋았다.


내가 토마토를 과일로 호명하면, 토마토는 나를 정상으로 호명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매일 밤, 나의 정상이 익어간다. 나는 비만계의 탈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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