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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Jul 05. 2024

살 빼야 하지만, 운동은 싫습니다만

과체중이 표준보다 생존에 유리하다. 그러나 생활에 불리하다. 인간은 자연이 아니라 문명에 적응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자기 관리’의 선택압이 표준을 너머 저체중으로의 인위선택을 강제한다. 자연계에서라면 축복받은 비만유전자는 선진 문명의 재앙이다. 기후 위기로 식량난이 발발하지 않는 한, 비만유전자가 과거의 영광을 누릴 일은 없어 보인다. 당장 나도 과체중 이상의 이성보다 표준이 더 호감이다. 경도 비만 주제에 선호는 별 수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 뚱뚱한 주인공도 없다. 있다면, 고난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살이 빠진다.


살을 빼야 하는데, 그러게, 살을 빼야 하는데, 열 달인가 1년을 결별했던 치킨이 다시 애틋해졌다. 요즘은 바삭바삭한 튀김옷이 그렇게 맛있다. 과일도 좀 먹어야 할 것 같아 과일을 들이기 시작했더니, 끼니와 별개로 주식처럼 먹어댔다. 뭘 먹든 기본적으로 많이 먹었다. 브레이크 거는 방법은 안다. 운동이다. 운동이 나를 덜 먹게 할 텐데, 운동은 금식보다 싫다. 숨차고, 아프고, 힘들다. 기계가 근력을 대신하는 시대, 적정 근력 이상의 근육을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인생 낭비다. 그러나 나는 적정 근력은커녕 과잉 지방인이어서 자기 확대적이다. 내게 운동이 ‘필수 생명 요소’임은 알지만 역시, 재밌지도 않으면서 숨차고, 아프고, 힘들기만 한 시간 낭비가 싫다.


내가 타협할 수 있는 운동은 걷기와 자전거다. 걷기는 좋아한다. 도보로 홈플러스까지 27분, 인근 재래 시장까지 40분, 구립 도서관까지 55분, 공부방까지 2시간 20분이다. 생활권이 몸으로 측량되고 나면 공간이 몸처럼 만만해진다. 단, 족저근막염과 무릎 통증 때문에 이젠 2시간 20분씩 걷고 나면 탈 날 조짐이 보인다. 자전거는 내 부실 부위와 무관하게 탈 수 있지만, 열심히 탔다면 지금 이 몸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 타지 않았느냐면, 역시 그러게. 살이 찐 건 ‘그러게’의 산물인 듯하다.


‘그러게’는 사회적 구성물이다. 선진국에서 비만은 빈곤층에 집중된다. 주머니 사정 때문에 인스턴트 식품을 더 자주 먹을 수밖에 없고, 상대적으로 긴 노동 시간 때문에 자기 관리할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없다. 연예인의 예쁘고 잘난 몸은 여유 시간의 산물이다. 휴식이 필요한 노동자에게 운동은 또다른 노동일 뿐이다. 이 사회적 사실은 비만에 대한 내 편견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몸의 문제라면, 하위 계층이 불리한 여건에 있더라도 극복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2022년 9달에 18kg을 감량했을 때, 하루 네 끼 먹으며 월 평균 식비 23만 원도 쓰지 않았다. 다이어트는 적정 의지 문제였기에 그 사람의 처한 여건과 무관하게 비만을 ‘자기 관리 실패’로 읽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하위계층이 아니었기에 심각한 패배자였다.


주2회 필라테스를 하지만 필라테스는 내 기준에서 운동이 아니다. 필라테스는 마조히스트적 물리치료다. 갈 때마다 내 돈 주고 고통 받아야 하는 사태가 짜증났지만, 순환계/신경계 안정 효과를 경험했기에 별 수 없었다. 손발 붓는 느낌이 사라졌고, 입면 장애 관련 수면제를 끊어냈다. 고통을 지불하지 않고는 편안해질 수 없는 몸이 남은 생이고, 이 몸은 더 불편해질 걸 생각하면, 운동은 삶에 지불하는 세금 같다. 세금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 필라테스는 몸으로 지불하는 의료보험료지, 지방세는 아니다. 차라리 지방세가 나으려나.


운동이 싫어서 활동량이라도 늘렸다. 애초에 활동량 자체가 적었다. 나는 책상 인간이었다. 일이 있는 날도 책상에 앉아 있었고, 일이 없는 날도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지하철 역사를 오갈 때 계단을 이용했다. 3층을 오르내릴 때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환경 윤리를 지키는 것이자 활동량을 늘릴 수 있는 기회였다. 운동하러 간다면서 자동차를 끌고 가서 낮은 층 이동의 엘리베이터에 동의하지 않는 만큼 계단 오르기를 잘 지켜졌다. 몇 칼로리 되지 않았지만, 이렇게라도 칼로리를 소비해야 기초대사량의 최소한을 충족했다며 정신 승리할 수 있었다.


사실 운동 자체는 체중 감량에 큰 도움이 안 된다. 70kg짜리 성인 남성이 10kg짜리 상자를 1.5m 높이로 들어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해서 1kg 감량하려면 몇 번 반복해야 할까? 2,200번이다. 아니다. 22,000번이다. 2초에 1회를 해도 하루 12시간 이상 그 짓을 해야 1kg 감량된다. 1kg이란, 무릎과 허리가 작살나는 무게인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마저도 거짓이다. 진실은 220,000번이다. 타 생물종을 멸하며 지구를 정복한 사피엔스는 지나치게 진화해버렸다. 에너지 효율이 너무 좋다.


운동은 칼로리를 태우는 데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식탐을 죽이는 데 효과적이다. 운동하면, 라떼 한 잔은 달달한 게 아니라 자전거 20분, 치킨은 맛의 존엄성이 아니라 자전거 2.5시간으로 환산된다. ‘내가 운동하기 얼마나 싫었는데!’의 힘으로 먹성이 눌러진다. 마시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은 음료수 한 캔 때문에 자전거 30분을 소모해야 하는 가성비는 내게 가학적이다. 운동이야말로 하루 2000칼로리 이하 먹기의 쟁투에 맞서싸울 의지 그 자체가 되어주는 것이다.


내 의지는 냉장고 옆에서 수건 걸이로 쓰이고 있다. 10년이 넘은 실내 자전거는 10만 원을 안 주고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계절, 날씨 무관하게 탈 수 있었다. 예능이나 드라마 보는 시간이 아까워 자전거라도 탔다. 시간 가성비를 늘리는 일을 좋아했다. 그러나 고정적으로 보는 예능과 드라마가 사라지며 자전거 타는 일도 드물어졌다. 야구 중계를 보며 타기도 했지만 올해는 도파민에 중독되어 야구의 느린 템포가 답답하고, 티빙 유료 중계로 넘어가며 야구도 끊었다. 유튜브는 15분짜리로 호흡이 짧아 한 시간 단위로 타는 자전거와 어울리지 않았다. [더 글로리] 정주행을 시작하면 두 시간은 타겠지만, 밤새 완결까지 볼 것이기 때문에 시작하지 않는다. 다음 화를 참는 것은 먹는 것을 참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다이어트의 정답은 알고 있다. 그러나 할 수 없는 변명만 늘어 놓는다. 애초에 정답대로 살았으면 오답 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답의 관성을 되쳐줄 운동 한 번, 그게 귀찮아서 아직 뚱뚱이로 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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