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 국밥, 저칼로리의 삼위일체, 베트남쌀국수다. 나의 성찬(聖餐)이다. 나는 라면으로 뱃살을 빚었고, 스스로 국밥왕에 즉위한 바 있다. 칼로리의 부덕으로 후덕해져 끼니마다 채소 섭취를 부채로 떠안았다. 사 먹는 음식들은 대체로 채소는 적으면서 700칼로리 안팎이기에 베트남쌀국수의 또 다른 이름은 ‘초록빛 도덕’이었다. 베트남쌀국수는 악성 채무를 갚는 맛있는 방법이고, 베트남쌀국수를 먹을 때 내 몸은 도덕적이었다. 베트남쌀국수는 320칼로리다.
믿기지 않았다. 밥 한 공기가 300-330칼로리였다. 쌀가루를 압축해야 면이 될 텐데, 고깃국물에 살코기가 더해진 쌀국수 전체가 밥 한 공기에 준하는 계산은 납득할 수 없었다. 물론 납득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도덕적이라는 사실만 섭취해도 충분했다. 한 끼의 도덕은 다른 끼니로 확산되어 다이어트 습관의 마중물이 되어줬다. 그러나 알고 보면 더 충분했다. 밥 한 공기는 200g이고, 베트남쌀국수 건면은 60-100g이다. 탄수화물 자체가 적어 칼로리 총량이 낮았던 것이다. 우리동네는 고기를 많이 줘서 450칼로리 정도로 예상했다. 베트남쌀국수의 칼로리 과학을 믿었다.
저칼로리의 핵심은 물이었다. 쌀가루는 조리 전 100g 당 350칼로리지만, 조리 후에는 수분을 머금어 110-140칼로리로 낮아졌다. 수분이 칼로리 밀도를 떨어뜨린 것이다. 사람 신체의 70%가 물인 것과 비슷한 칼로리 밀도가 아무 이유없이 육체 친화적인 듯했다. 나는 베트남쌀국수의 칼로리 비과학도 믿었다.
신토불이, 우리에겐 잔치국수가 있다. 그러나 칼로리 싸움에서 잔치국수는 결코 베트남쌀국수를 이길 수 없다. 조리된 밀가루 면이 100g 당 130-160칼로리로 쌀가루 면보다 20칼로리쯤 높은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양이다. 잔치국수의 미덕은 ‘우걱우걱’에 있다. 잔치국수는 뜨끈하기보다는 따뜻하고, 시리기보다는 시원해서 면을 한 입에 왕창 쳐넣고 볼이 터져라 씹을 수 있었다. 빨리 먹어서 많이 먹을 수 있었고, 실제로 어떤 면 음식보다도 푸짐하게 나왔다. 나는 적정량을 주는 잔치국수집을 다시 가지 않았다. 적정량을 먹으면 금방 배가 꺼지므로 많이 먹어야 했다. 고명은 거들 뿐, 빵에 준하는 탄수화물 폭탄, 잔치국수인 것이다.
베트남쌀국수는 잔치국수의 아종이 아니라 국밥의 변이로 이해되었다. 왜 한식이 아닌지 따지고 싶을 정도로 한국적이었다. 맑되 묵직한 뜨끈함이 목구멍을 적시며 뱃속으로 흘러 내려갈 때, 온기가 전신으로 퍼지며 배 아래쪽에서 혈통적 민족주의 얼이 담긴 ‘크으으!’를 퍼올리는 메커니즘은 국밥과 매한가지였다. 그저 밥 대신 면이 들어갔다. 베트남쌀국수는 고수와 레몬즙이 들어가서야 국적을 회복했다. 안 넣어 먹어도 그뿐이니 취향 따라 먹으면 된다.
일반적으로 베트남쌀국수는 접근성이 좋지 않아 특식이겠지만, 우리동네에서는 가까운 분식이다. 주택가 큰길은 밤이면 베트남, 태국, 중국, 우즈베키스탄인들이 퇴근 후 휴식을 즐기는 국제화 거리로 변했다. 외부에서는 우범지대로 겁먹지만, 나는 별일 없이 국제적으로 맛있게 사는 중이다. 중국집보다 베트남쌀국수 가게가 더 많았다. 필라테스를 마치고 집에 오는 큰길에만 베트남쌀국수집 대여섯 개를 지나쳤다. 모두 현지인이 운영했다. 나는 채소를 많이 주는 식당을 골라 갔다.
식당에서 주는 채소는 모두 넣었다. 애초에 베트남쌀국수를 먹는 이유는 칼로리보다는 채소 섭취 때문이다. 외식 메뉴는 대체로 밀가루와 고기의 변주였다. 먹다 보면 게임 효과음 ‘not enough mineral’이 혈관에서 들리는 듯했다. 채소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후보군은 협소했다. 쌈밥, 비빔밥은 근처에 없었고, 회덮밥은 비싸서 자주 먹진 않았다. 만만한 게 베트남쌀국수였다. 베트남쌀국수는 내 식사권에서 싱싱한 초록이 가장 푸짐했다. 베트남쌀국수와 나란히 나온 채소 바구니에는 고수와 더불어 숙주와 채 썬 상추가 곁들여져 있었다.
고수를 좋아하지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는다. 민트향 고깃국물은 나름 산뜻했다. 레몬즙까지 더해지면 이것이 더운 나라의 국밥 형제구나 싶었다. 이국적 맛이 강해지면 비로소 잔치국수의 아종이 되어, 다문화 감수성이 국밥의 보편성으로 차올라 도덕이 몸을 위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곱배기로 준비했다. - 먹어라, 이것이 너와 나의 동일성이다. - 뚱뚱했던 베트남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당신들의 건강한 몸을 추앙한다.
내가 베트남쌀국수를 먹는 방식이 얼마만큼 표준적인지는 모른다. 그냥 주는 대로 먹었다. 생선 소스를 넣는다고 들었고, 실제로 식탁에는 중국집 식초나 간장처럼 정체불명의 소스가 있었다. 베트남인 손님들이 넣어 먹는 것을 봤지만, 나는 그냥, 따라하지 않았다. ‘국밥’에 레몬즙을 넣는 지점에서 이미 내 다문화 수용성은 최대치를 찍은 때문인 듯했다. 대신 고수는 모두 넣었다. 손님을 온 베트남인들은 적당히 넣어서 대부분 테이블의 채소 바구니에는 고수가 한 줌씩 남아 있었지만, 나는 음식을 서빙 받자마자 국물 서너 숟갈을 음미한 다음 채소를 다 넣었다. 국그릇에 다 들어가지 않아 국물을 흘리곤 했다. 그래도 일단 우겨 넣어야 숨이 죽을 것이기 때문에 면을 끄집어 올려 아래에 채소를 묻었다. 겉보기로는 고수 매니아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미네랄을 채굴하고 있을 뿐이다. 미네랄이 모여야 내 몸은 내가 살아갈 스포닝풀(Spawning pool)을 편다. 칼로리에도 초록색이 필요했다.
면 먹방의 본질은 ‘후루룩’의 속도전이다. 먹방이 만든 과장된 후루룩에 동의하지 않지만, 후루룩은 흡식의 자연발생적 방식이다. 나는 어떤 식당이든 점식 저녁 피크 때를 피해 가므로 조금 덜 조심스럽게 속도에 충실한 편이다. 빠르게 면을 건져 먹은 다음, 고기와 고수의 시간을 맞는다. 숨이 덜 죽은 고수로 고기를 싸 먹는다. 고수는 향보다 질감으로 다가온다. 적정량을 넘긴 고수는 질겼다. 소 된 기분이다. 풀을 씹는다는 자각이 소고기맛이어서 더 좋다.
원시적인 생각이지만, 베트남인들의 날씬한 몸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