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되나 싶었다. 우리는 같은 시간, 10m도 떨어지지 않는 거리에서 다른 계절을 살고 있었다. 나는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했지만, 노부부는 계절과 무관하게 폐지를 주웠다. 그러하기 버거울 테지만 그러할 수밖에 없는 필연이 시장주의가 구축한 자연이었다. 약육강식의 안온한 풍경 속에 커피향이 은은했다.
영화 『기생충』을 생각했다. 기생충에서는 ‘선(線)’이 중요했다. 부자는 선을 넘지 말라고 했고, 화면은 계층이 마주하는 상황을 성실하게 선으로 이분했다. 나와 노부부 사이에도 창으로 선이 그어져 있었다. 나는 3층 창 안 쪽에서 전봇대 아래를 내려다봤다. 나는 잘 보였지만, 저쪽에서는 바깥보다 어두운 이쪽이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쪽에서는 의도치 않아도 창밖은 구경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5,000원짜리 커피를 마셨고, 2023넌 9월 국내 폐지 평균 매입가는 1kg 당 73원이었다. 폐지 68kg짜리 그란데 사이즈가 손아귀에 고여 따뜻했다. 사람의 고혈보다 콩가루 볶은 물이 비싼 사태를 시장은 질서라고 불렀다. 노부부가 필사적인 무게를 나는 손목 까딱하는 것으로 들어 올렸다. 시장에서는 그래도 되었다.
너희가 그래도 될지는 모르겠다. 너희 돈이 아니라 부모님 돈이니까. 조각케이크까지 곁들여 공부를 핑계로 10,000원 넘게 소비할 수 있는 여유의 이름이 대학생이나 취준생인 것은 불합리했다. 너희들이 소화하는 A4지 인쇄물과 책이 생산하는 것은 폐지일까 너희의 미래일까. 부모 등골 빨아 먹은 폐지생산자가 대량 생산되는 사회도 시장이라고 불렸다. 너희 중 누군가의 50년 후가 창 밖에서 부지런하다.
내가 너희 나이 때, 창밖이 내 미래가 될 것을 예감했다. 답이 보이지 않았다.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각종 청년 정책으로 관심이라도 가졌지만, 88만원 세대를 시발하고 삼포시대를 열어 N포세대의 아저씨를 관통하는 생애사는 새로운 사회 현상으로 관음될 뿐이었다. 나와 세계 사이에 그어진 유리벽이 ‘이거 방탄유리야, 이 개새끼야.’ 했다. 한 발 남은 총알이 우연히 뚫어내기 전까지, 나는 누구도 건들지 않는 잉여, 쓰레기였다. 그 시절이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DSLR을 사서 처음 나간 출사는 우리 동네였다. 쓰레기를 찍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쓰레기가 아프다.
창밖 전봇대 아래는 인근 상가 쓰레기 배출소였다. 나는 평일 오전 9시에 출근하다 시피해서 3층 창가에 자리 잡고 쓰레기 배출 생태를 목격했다. 이 동네는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쓰레기를 버렸다. 재활용 수거함도 없어서 늘 지저분했고, 그러려니 했다. 다만 종이 쓰레기는 특정 구역에 터 잡으면 그곳을 중심으로 모여졌다. 10시 전후로 상가가 문을 열고 어제를 정리하며 활발하게 종이 쓰레기를 배출했다. 상품이 빈번하게 드나드는 만큼 종이박스는 풍년이었다.
노부부는 낡은 1톤 트럭을 몰고 왔다. 리어카나 장바구니 카트를 압살하는 폐지 포식자지만, 기름 값을 비롯한 차량 유지비를 생각하면 답이 서지 않았다. 노부부는 합을 맞춰 신속하게 짐칸에 폐지를 실었다. 옮기는 사람과 정리하는 사람은 그때, 그때 달랐지만 결과는 늘 가지런했다. 종이박스가 아무리 가지런히 높아도 통장은 흉년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청소 노동자가 아니었다. 정부의 무관심 하에서 글로벌 자원 시장의 밑바닥에서 고군분투 중인 자원 재활용 업자였다. 늙은 몸으로 세계와 싸우는 일은 각다분했을 것이다. 일종의 하청이었다. 정부는 시장 경쟁력 없는 공공성을 이들에게 일임하고 방관 중이다. 대중은 암묵적으로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를 합의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 예의를 실천한다. 아마 공부해도 저 역할을 맡을 학생들이 이 공간에 반드시 있을 것이고, 저들은 노력한 사람들이었다.
노부부 세대는 부모 등골 빨아 먹고 큰 세대는 아니다. 1950년 전후에 태어나 청춘을 경제개발계획에 착취당하고, 갈아 넣은 인생을 중년에 보상 받는 듯했으나 장년에 IMF로 말아 먹거나 말아 먹은 자식을 뒷바라지 하느라 노후를 잃어버렸다. 노부부 트럭이 지나가고 나면 리어카나 카트를 끈 영세하고 영세한 노인들이 부스러기를 챙겨갔다.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잘못된 것들이 생겨난다. ‘늙으면 죽어야지.’를 기다리는 사회에서 다시, 커피향이 은은했다.
여름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는다. 이곳은 충분히 시원해서 얼음이 필요 없다. 얼음이 필요한 곳에 얼음이 없고, 얼음이 필요 없는 곳에서는 부모 등골들이 아이스하고, 나이스하게 빨리고 있다. 부유한 부모를 만난 덕분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고, 축하한다. 다만 그것이 특권인지 모르고 징징대는 소리는 듣기 싫다. 내 뒷자리에서 일본 여행 계획을 짜는 대학생들에게 청년 실업률은 남의 나라였다.
사실은 안다. 50년 후에도 노인이 폐지를 주워야 한다면, 이곳에 있는 학생은 아닐 것이다. 잘못한 것 없이 폐지를 주어야만 하는 사람처럼, 잘한 것 없이 폐지를 줍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있다. 능력주의로 위장한 부모주의 사회에서는 그래도 되었다. 시장의 세일러문(Saler moon)이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봉을 휘두르며 앙칼지게 외치는 듯했다. - 정의의 이름으로 빈곤을 용서하지 않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