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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Oct 22. 2024

폐지 줍는 노인(1)

수요일과 금요일 점심, 저녁 네 끼를 교직원 식당에서 먹으면서 사실상 다이어트가 끝났다. 버섯밥에 김치-참치 수준의 끼니를 먹던 인간에게 국이 더해진 급식은 한 판은 진수성찬이었다. 무상으로 제공되는 돈까스와 닭강정에 손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숟갈 덜 먹던 것이 한 숟갈 더 먹는 것으로 변하며 식탐에 무게가 더해졌다. 


후식으로 식혜, 오미자 차, 비피두스 요구르트 등이 나오다가 런치플레이이션이 시작되며 매실음료로 일원화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요구르트 하나가 딸랑 나왔다. 마트에서는 이제 개도 아닌 15개 단위로 파는 그 요구르트 하나가 후식을 대변하고 있는 모습은 가히 시장적이었으나, 능히 후식이었다. 10여 년 전, 노파 때문이었다. 다음은 10여 년 전에 쓴 글이다.



그해 겨울, 노파는 3주째 오지 않았다. 젠장, 한파 때문에 어떻게 되신 거 아냐? 대구에는 잘 오지도 않는 눈마저 잦은 1월이었다. 쌓이는 신문에서 오래된 요구르트 냄새를 맡는다.


수성구는 부촌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내 월급보다 많은 사교육비를 썼다. 높은 아파트는 햇살을 막아 긴 그늘을 배설하고, 학원 강사였던 나는 그들의 자녀 덕분에 그늘을 이불처럼 덮고 파지를 배설했다. 내 배설물 앞에서 노파는 이미 90도로 굽은 허리를 또 한 번 숙여가며 내게 인사했다. 자판기 커피 값도 안 될 파지를 가지고 가면서 ‘고맙습니다.’를 서너 번씩 또박또박 새겼다. 쓰레기를 나눠주는 것조차 권력이었다.


학원에서는 파지도 많이 나오고 광고물 순환도 활발해서 학원가에는 파지를 줍는 노인들이 많았다. 수능이 끝날 때마다 그해 문제집이 길가에 넘쳤다. 문 밖에 내어진 종이는 시간 불문하고 금방 사라졌다. 할아버지들은 리어카를 끌고 다녔고, 할머니들은 장바구니 카트나 보행기를 끌고 다녔다. 그 노파도 녹이 슨 카트를 끌고 다녔다. 카트 옆에는 쌀자루를 달았고, 카트 위에는 큰 박스를 수평으로 대고 그 위에 종이를 쌓아 올려 여러 가닥으로 꼬아 만든 고무줄로 묶었다. 작은 체구에 허리까지 굽어져 있어 카트의 키와 노파의 눈높이는 거의 같았다. 노파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무덤을 끌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파트의 스카이라인은 노파의 굽은 척추와 평행해서 맞닿지 않았다.


“계십니까?”


학원 문을 열고 파지를 달라는 사람은 노파가 유일했다. 출입문은 바깥에서 두 계단 위에 있어서 내 자리에서 노파는 머리만 간신히 보였다. 별관은 대체로 나 혼자 지키고 있어서 그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노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왔다. 일주일치의 신문과 복사기가 씹어 먹은 A4지의 가벼움을 노파는 무겁게 받았다.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고 자기한테만 달라고도 부탁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어차피 학원에 고개를 내미는 사람은 노파 외에는 없었다.


노파는 4주가 지나도 오지 않았다.


한 번은 수업 중에도 왔다. 외부의 소리를 반기는 것은 수업이 잠시라도 중단되기를 바라는 학생들이었다. 나는 나가지 않으려고 했고 학생들은 누가 집에 왔는데 나가보지 않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며 키득댔다. 학생들 앞에서는 인상을 썼지만 일주일의 헌금을 치르는 것처럼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안도감이 차올랐다.


“할머니, 지금은 수업 중이거든요.”

“아이고, 미안합니다. 나는 지나가다가 그냥 들른다고…….”

“늦은 저녁에는 수업이 있으니까 안 되고요. 3시에서 6시 사이에 오실래요? 그때는 챙겨드릴 수 있어요.”

“아이고, 미안합니다.”


노파는 내 말을 듣지도 않은 채 허리를 바닥까지 숙였다. 그 어찌할 수 없음이 사과가 등에 박혀 다리를 부들대는 카프카의 벌레 같았다. 밑바닥에서는 사과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 사과로 몸이 썩어도 사과해야 했을 것이다. 수업 때문에 급히 들어가려는데 노파가 나를 붙들었다. 어기적어기적 카트로 돌아가서 쌀자루를 뒤지더니 65ml짜리 요구르트 두 줄을 꺼내왔다.


“미안합니다.”

어쩌면 나도 노파의 등에 사과를 박아 넣었는지도 몰랐다.

“감사히 먹어라.”


학생들에게 요구르트를 나눠줬다. 요구르트 10개의 파지를 줍기 위해서 노파는 겨울 속을 몇 시간씩 뒤졌어야 했을 것이다. 골목길을 휘감아 치는 겨울과 뼛속에 도사린 겨울은 노파의 살가죽을 안팎으로 포위했을 것이다. 좁혀오는 포위망을 파지를 지펴 버텼을 텐데, 내가 무심코 던진 사과에 하루치, 혹은 한나절치의 파지를 내게 내주었을 것이다. 학생들은 급하게 먹었다. 집에 있으면 마시지도 않을 요구르트를 서로 먹겠다고 다퉈줘서 고마웠다. 나는 천천히 먹었다. 내가 마신 요구르트 병 하나를 집으로 가지고 왔다. 버리지 못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집에서 나오는 파지도 학원으로 가져왔다. 노파는 2주 후에 왔다. 그 전 주에 안 온 이유를 물으니 수업 중일까봐 못 왔다고 했다. 나는 2주치의 신문을 내주며 다시 수업 외 시간을 알려줬다. 노파는 그 다음 주에 한 번 더 온 후, 사라졌다. 출퇴근할 때, 식당을 오갈 때, 본관을 오갈 때마다 주위를 살폈다. 허리가 굽은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도 문득 출입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노파가 문을 여는 환영을 그렸다. 환영은 몸 안의 겨울과 몸 밖의 겨울의 삼투가 완료된 그냥 겨울을 남겼다. 


파지 1kg = 당시, 90원에서 120원 사이에서 시세에 따랐다.

신문 52면 = 0.262g

요구르트(이마트 기준) = 1,800원

z = 신문 배달 일 수

이를 바탕으로 내가 받은 요구르트 값에 해당하는 z의 평균값을 구해보면 다음과 같다.

90×0.262×z ≤ 1800÷3×2 ≤ 120×0.262×z

38.17 ≤ z ≤ 50.89

z ≒ 44.53


신문은 일주일에 여섯 번 들어왔고, 파지는 광고지와 A4지를 포함하고 있으니 z는 7주 분량쯤 되었다. 그러나 나와 노파의 관계가 7회가 되었는지를 알 수 없어 산수의 끝이 싸늘했다. 요구르트 병은 책장 위에 뒀다.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요구르트 병이 보였다. 나의 산수는 요구르트 병 속에서 빠져 나가지 못한 채 고였다. 요구르트 병 바닥에 찌꺼기처럼 남은, 노파가 낡은 척추로 쓴 ‘고맙습니다.’를 발견하고 말았다.


그해 노파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해가 바뀌어도, 날이 풀려도, 다시 겨울이 와도 노파는 없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폐지 가격은 kg당 50원 안팎까지 떨어졌다. 나는 아직 요구르트 병을 버리지 않았다. 비어 있어서 마셔지지 않는 노파의 겨울이, 매해 겨울마다 빈 채로 가득 차올랐다. 65ml이 무한으로 수렴된다. 겨울이 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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