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것들은 양극화 되었다. 비싸거나 쌌다. 싼 세계는 치열했다. 정가의 한가운데를 할복하듯 가로로 선을 긋고, 쏟아진 내장 같은 빨간 글씨로 더 저렴한 가격이 표기되면 비로소 살아남았다. 크리스마스, 새해, 설/추석, 졸업/입학, 어린이/어버이날, n주년, 감사 등 주기적으로 명분을 만들었다. 할인해도 활인(活人)하기 어려워지며 건물 창에 붙은 ‘임대’가 늘었다. 붕어빵은 그 와중에 살아남았다.
붕어빵은 비쌀 수 없었다. 손님이 목적을 갖고 찾는 음식이 아니라 길가다 눈에 띄면 우연히 소비되므로 길거리에서 흔해지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저렴했다. 한편 한철 장사는 생계 안정성을 보장하지 못하므로 붕어빵은 밥 벌어 먹는 사람의 최후 보루였다.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으므로 경쟁도 치열했다. 붕어빵이 비싸다고 느껴진다면, 우리가 저렴해진 것이다.
2020년 인간 한 마리는 시간당 8,590원이었다. 목숨 값이 반영되면 위험수당이 붙어 비로소 목숨 명(命) 자가 눈에 들어 왔다. 같은 해 산업재해 사망자는 2,062명이고, 이 숫자에 포함되지 못한 목숨과 불구가 된 사연이 숨겨져 있음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목숨 값과 교환 가능한 붕어빵 개수를 생각하면, 마리와 명 사이가 여전히 불투명했다. 당시 붕어빵은 3마리 1,000원이었다.
2023년 인간 한 마리는 시간당 9,620원이 되었다. 3년 간 12% 올랐다. 최저임금은 아르바이트의 보편 원칙으로 인간의 최소 기준을 제시했고, 최소 보편성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영업자는 더 영세해졌다. 우리 동네 붕어빵은 2마리 1,000원으로 40% 올랐다. 먹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영세해져 붕어빵에게 명(名)을 양보해야 할 것 같았다.
“대구 시내는 한 마리 700원 하고, 서울에는 1,000원 하는데도 있어요.”
아차 싶었다. 동일 상품을 절반 값에 팔아야 한다면 주인은 스스로 ‘마리’에 가까웠을 것이다. 40%에 눈길을 주느라 원재료 값 상승은 짐작하면서도 ‘인적 자원’이 임대 근처까지 할인되어 있음을 보지 못했다. 2마리 1,000원짜리 붕어빵을 먹을 때, 나는 노점 주인의 인건비를 갉아 먹은 셈이었다. 타인의 인건비는 역시, 달달했다. 시간당 몇 마리를 팔아 9,620원을 남길지 몰라야 달달함이 덜 미안했다.
운동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붕어빵 두 개를 사먹는 습관이 생겼다. 걸으며 먹을 거라 봉투에 담지 않고, 손에서 손으로 넘겨받았다. 5분 안팎, 손 안의 따뜻함을 얼렁뚱땅 씹어 먹으며 걸을 때면 얼굴을 쓰는 칼바람이 잠깐 온순해졌다.
노점은 문 닫은 지 오래 된 오토바이 가게와 열쇠 집 앞에 차려져 있었다. 4시에 개점해서 언제 폐점하는지는 몰랐다. 노점 주인은 응? 응? 응? 방글라데시 사람이었다. 나는 생각에 다문다문 뚫린 구멍을 수습하느라 멈칫했지만, 그는 한국적이자 국제적인 사태를 방글방글 소화했다. 2마리 1,000원은 동남아시아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기까지의 시간으로 단숨에 설명되었다.
그는 친절했다. 마스크 밖으로 눈을 타고 웃음이 흘러 나왔다. 선입견이 반영된 탓이겠지만, 그의 친절에는 차별로 담금질 된 야생의 얌전함이 있었다. 혹은 알라의 뜻이었다. 알라는 붕어빵 팥소처럼 적의 없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달달했다.
붕어빵은 팥의 가장 성공적인 자아실현 방식인 듯하다. ‘겉바속촉’의 궁극이다. ‘단짠단짠’은 아니지만 밀가루 반죽과 팥의 조화는 ‘단’의 뿌리를 무한히 받아내고, 뿌리 깊은 단맛은 짠맛이 아니 아쉬웠다. 식으면 식은 대로 샘이 깊은 물이 가뭄에 아니 그치듯 일반 빵에 없는 촉촉한 쫄깃함을 내놓았다. 팥떡, 송편은 기념일로 연명되고 있을 뿐 음식으로 자체 경쟁력에 의문이 들고, 팥칼국수 먹을 바엔 팥죽을 먹고, 팥죽은 노티난다. 붕어빵과 결이 같은 호빵도 있지만 특정 기업 이슈 이후 불매 중이니 팥앙금 계열 음식 천하는 붕어빵으로 일통되었다. 붕어빵 내에서 슈크림, 고구마, 피자 등 분파가 다양해져도 근본은 역시 팥이다. 무언가의 최선이 이리 저렴해도 될까?
붕어빵이 비싸게 체감되는 이유는 지폐 한 장 최소 단위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10진수의 세계에서 1,000원은 소비 적정 가격, 혹은 최소 가격의 단위였다. 10개 1,000원, 5개 1,000원은 여차하면 끼니를 갈음할 수 있는 소비 적정 단위였다. 3개 1,000원일 때는 끼니와 무관해진 소비 최소 단위로 작동했다. 2개 1,000원은 간에 기별도 전하지 못하며 심리 저항에 부딪쳤다. 다만 나는 운동 직후, 저녁 식사 40분 전의 입가심으로서 2개 1,000원에 동의할 따름이었다. 3개 2,000원은 입가심이 될 수 없었다. 4년제 대학 2개와 공단 주거지가 포개진 상권에서 4,000원에 짜장면, 5,500원에 콩나물국밥이나 순두부찌개로 온전한 한 끼가 가능했으므로 2,000원은 입가심 비용으로는 부적절했다. 대한민국 경제 하부를 외국인 노동자들이 지탱하는 것처럼 붕어빵 2개 1,000원은 그렇게 건사되었다.
방글방글 이후 내심, 먹고사니즘에 적합한 붕어빵 적정 가격은 3개 2,000원인 모양이었다. 길을 걷다 아저씨, 하며 구걸해온 노인에게 내준 금액은 2,000원이었다. 지갑에서 5,000원이 딸려 나왔지만, 노인의 부름에 멈춰 섰을 때부터 끼니로는 모자라겠지만, 잠깐 달달할 수 있는 최소 단위를 생각했다. 내 2,000원에는 지갑으로 다시 들어가는 5,000원이 묻어 있어 덜 달았을 듯하다. 내 눈은 방글방글하지 못해 노인을 ‘명’으로 본 건지 확신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2,000원으로 ‘선행을 베푸는 나’를 가성비 좋게 구매하는 소비자 한 마리였다. 2마리 천 원을 사 먹을 때 구체적으로 미안했다.
2마리 1,000원은 파는 쪽에서는 착취당할 각오가 필요하고, 3마리 2,000원은 사는 쪽에서 목적을 가져야 해서 붕어빵은 길거리에서 자리를 잃어 갔다. 버스/지하철 역 부근에 당연했던 겨울을, 이제는 붕어빵 지도로 기록되어야 할 정도로 적어졌다. 적어져도 귀해지지 않는 비시장적인 상황은 기후 위기로 서식지를 잃어가는 붕어빵의 생태일 뿐인가, 한다. 마리, 명, 분이 교란된 세계, 하긴, 그게 시장이었다. 그래서 2마리 1,000원짜리를 살 때마다 시장 바깥에 있는 안전 비용을 지불하듯 꼭 덧붙였다.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