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에는 부잣집 아우라가 있었다. 머리에 고깔을 쓴 사람들이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을 불러주는 사람 가운데서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후우, 부는 사람은 나여야 했다. 촛불이 꺼지면 폭죽이 터지고 박수가 쏟아졌다. 축복, 기쁨, 환희, 행복이야말로 케이크의 달콤한 주재료였다. 먹고 싶다기보다는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일찍 철든 아이는 우리 집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간파했다. 케이크는 선망의 대상이되, 비싸서 살 수 없다는 정도는 알고 있어서 선망하지 않았다.
케이크를 언제 처음 먹어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유치원 재롱 잔치에서 먹은 것 같기도 했고, 집에서 먹은 것 같기도 했다. 단, 10살이 안 된 아이는 황당했다. 단맛에 한창 환장할 나이였지만, 케이크는 독하게 단데도 맛이 없었다. 미끄러웠다가 끈적끈적해지는 크림은 촉감도 찜찜했다. 행복을 채색할 물감이어야 할 크림의 실체가 하수구 오니 같은 질감이라니, 너무 일찍 산타의 실체를 폭로당한 것처럼 충격이었다. 게다가 케이크 몸체는 우유가 없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빵의 최하위계급, 카스테라였다. 카스테라는 우유와 함께 할 때 존재 가치가 승격되었지만, 우유로 만들어진 크림은 우유를 대신하지 못했다. 입안의 모순이 어리둥절했다. 선망해 왔기에 최선을 다해 맛있어 했지만, 그날 이후 다시는 케이크가 먹고 싶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케이크의 아우라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케이크에는 부잣집, 그러니까 사치의 아우라가 있었다. 필요와 편리의 영역 다툼을 아득히 초월한 덤의 영역,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지만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과시적 존재. 부자는 화려해 보여도 크림을 걷어내면 결국은 카스테라 덩어리일 뿐인 것에 돈을 쓸 수 있는 사람 정도로 인지부조화를 기동했다, 그 나이에.
케이크의 아우라는 제과점 빵도 함께 했다. 케이크와 달리 빵의 아우라는 침샘에 맞닿아 있었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빵보다 명백히 맛있었고, 그 정도는 엄마한테 떼쓰면 얻어먹을 수 있는 사치였다. 시간이 지나며 동네 제과점은 프렌차이즈에게 압살 당했다. 프렌차이즈 내부 숫자의 도덕성은 몰라도, 프렌차이즈 간 경쟁 덕분인지 빵은 더 다양해지고 맛있어진 듯했다. 이제 ‘빵’에서, 파리바게트나 뚜레주르를 떠올린다. 물론, 내 이야기는 아니다.
내 빵은 슈퍼마켓에서 스티커에 끼워 파는 식량을 지칭했다. 물론 그 빵도 썩 합리적인 가격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밀가루를 수입해야 하는 사정은 라면 값으로 무마되었다. 빵이 가장 저렴한 라면 두 봉지에 준하는 사용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아무 음식이나 시골 누렁이(얘들은 케이크를 먹을까?)처럼 잘 먹는 나는 슈퍼마켓에서 파는 빵도 맛있다. 그러나 우유와 함께 하더라도 하나로 배를 채우기에는 모자랐고, 두 개를 먹기에는 그 비용과 그 포만감에 그 칼로리를 부담해야 하고 싶지는 않아 끼니와 간식 사이에서 정체성이 애매했다.
어렸을 때는 거의 늘 집에 식빵이 있었다. 빵 자체가 식용인데, 굳이 빵 앞에 ‘식(食)’을 갖다 붙였지만 식빵은 족(足)발만큼 자기주장이 강한 음식은 아니었다. 우유와 케첩이 필요했다. 가세가 펴짐에 따라 마요네즈가 추가되었다가, 계란 프라이가 더해졌다가, 낱장짜리 체다치즈가 더해졌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던 시절, 아무 생각 없이 먹어댔다. 호불호와 무관한 식습관이었다. 그러나 자취를 할 무렵에는 유통기한과 칼로리가 감당되지 않아 식빵과 멀어졌다.
올해는 슈퍼마켓에서 빵 자체를 구입한 적 없었다. 한때 원피스 스티커를 모은다고 세 끼를 빵으로 때우기도 했고, 학생들에게 빵을 사주고 스티커만 수거한 적도 있었지만, 올해 불어 닥친 포켓몬스터 광풍은 꽤 오래 유지 중인 다이어트 덕분에 피해갈 수 있었다. 이전에는 간간히 빵을 먹었다. 카스테라와 우유는 서로의 영혼을 빛내주는 단짝이었고, 슈크림빵이나 크림이 들어간 단팥빵은 우유 없이도 먹을 수 있었다. 출근하며 사온 김밥은 더운 날 점심으로 먹기 찜찜했지만, 빵은 상온 보관이 가능해서 바쁠 때 허기를 급속 충전하기 유용했다. 그러나 올해는 바쁘지도 않았다.
올해 유일하게 먹은 빵은 샌드위치다. 주로 편의점에서 샀다. ‘편의점’을 달고 보니 빈곤해 보이는데, 샌드위치는 편의점 경쟁 속 미끼 상품인 덕분에 가성비가 좋았다. 물론, 누렁이도 맛있는 게 뭔지는 안다. 서브웨이나 파리바게트가 비싼 만큼 맛있었다. 그러나 ‘비싼 만큼’ 맛있는지는 의문이었다.
그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고기 대신 먹을 수 있는 빵이 전시된 공간, 파리바게트는 부자의 가장 낮은 관문이다. 파리바게트 소비 자체가 부자라는 것이 아니다. 최저생계비를 버는 사람도 5,900원짜리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었다. 나도 간간히 파리바게트에서 돈을 써왔다. 그러나 내가 ‘체험’하는 것들을 ‘일상’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구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부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좀 울고 싶다.
사람들의 ‘돈 없다’ 뒤에는 괄호가 쳐져 있다. 괄호 안에는 맛집, 취미, 모임, 여행, 명품, 아파트 대출금 등이 스프링 달린 피에로 인형처럼 웅크려 있다가 튀어 나왔다. 피에로는 나를 보고 웃었다. 술 마시며 사랑 찾는 시간 속에 그들은 부의 진실을 누리고 살았다. 나는 편의점 샌드위치를 먹으면서도 그들의 뷰 맛집 브런치 인스타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주고 그 사진담(談)에 공감해줄 수 있다. 그러나 돈 없다는 말은 뷔나 차은우가 자기 못생겼다고 말하는 겸손이 아니라, 순수한 믿음이어서 내게 조롱이었다.
내가 관계하는 사람 중에서 나는 최소 생활양식으로 살아가는 축에 속한다. 인스타에 올릴 만한 음식을 자발적으로 먹는 일도 드물고, 비행기를 타 본 적도 없다. 읽고 쓰며 얌전히 생존했다. 월세 포함 한 달에 60만 원을 안 쓴 적도 있었고, 런치플레이션이 본격적으로 발생한 2022년 6, 7월 평균 625,498원을 썼다. 다시 말하지만, 월세 포함이다. 그나마 월 57,000원은 병원비였다. 사는 게 재미없지만, 스트레스도 없었다. 재미에 체념한 내 앞에서 돈을 양껏 쓰고서 돈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토사물을 얼굴에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빵 값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 그런 나라의 파리바게트는 맛있되(다른 나라 빵에 비해 맛이 없다고들 하지만, 누렁이는 안 먹어서 봐서 모르겠다), 가격이 무례했다. 밀 값 폭등으로 가격 상승 명분이 생겼으니 가격은 명분 이상으로 대가리를 빳빳하게 쳐들 테고, 한 번 올린 가격은 떨어진 적 없었다. 이걸 부담 없이 소비할 수 있는 구매력이라면 자신이 뭔가를 하려고 할 때 돈이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출퇴근길에 파리바게트를 늘 본다. 횡단보도 앞이자 지하철 역 입구이자 버스 정류장 앞이어 장사가 안 되기 힘들 위치에 있다. 나와 인연 없는 공간으로 지나치지만 다이어트 전만 해도 폐점 전 5천 원 묶음 빵은 종종 샀었다. 최근에는 샌드위치만 사 먹었다. 단, 배달 어플에서 11,000원 이상 포장 구매 시 4,000원 할인행사 때뿐이었다. 구매 가능 최소 금액에 맞춰 할인 받으면 짬뽕이나 국밥의 가성비에 그럭저럭 견줘 볼 수 있었다. 빵의 산수를 하는 내가 궁상맞지는 않다. 빵의 산수가 필요 없는데도 자신의 부를 모르는 사람들의 살기 퍽퍽하다는 타령에 맥 빠질 뿐이다.
파리바게트가 당연한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절대적 빈곤만이 빈곤이 아니다. 가격이 건방진 빵 쪼가리와 그 앞에 고개 숙인 구매력,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도 알아 달라는 것이다. 세계 GDP 10위의 나라에서조차 노동 소득으로 살아가면 대체로 부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4인 가구 연봉 2억의 노동 소득자가 부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대꾸할 말은 없다. 애들 학원비 떼고, 보험료 떼고, 케이크 값 떼고, 뭐 떼고 하면 남는 게 없다는 논리는 완전무결하다. 케이크의 아우라 속에서도 덜 행복하다는데 어쩔 텐가. 그저 ‘부자라고 해주세요!’ 그런, 기분이다, 팔이 바게트가 되도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