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박탈감이 익숙한 시대다. 범람한 관찰 예능들은 ‘내 돈 내 산’의 시장주의 하에 이뤄지는 과소비를 플렉스(flex)로 격상시켰다. 플렉스를 보며 열등감과 동경심의 양가감정을 느낄 때, 시장주의는 열등감을 지질한 감정으로 내몰았다. 시청자는 자신이 평생 저축해도 사지 못할 집에 사는 사람들의 여유를 마음껏 감탄했다. 그러나 인간이 개만도 못해지는 지점에서, 나는 내 열등감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가짜이길 바랐다. 제발 가짜이길 바랐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서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으나, 진짜 존재했다. 프롤레타리아의 붉은 울분이 차올랐다. 당신들의 ‘So cute!’와 같은 종류의 감탄 속에서 나는 개만도 못한 존재로 전락했다. 그 순간만큼은 유재석을 제외한 누구라도 죄책감 없이 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소한 당신들 보는 앞에서 당신들 개의 뱃대지에 혁명의 깃발이라도 꽂고 싶었다. 개의 한 끼 비용은 23,000원~29,000원이었고, 그날 내 아침 비용은 편의점 샌드위치와 커피의 3,420원이었다. 그나마 교직원 할인 10% 덕분이었다.
2022년 6월 9일 방영된 [식스센스]에서 애견 카페가 등장했다. 그곳에는 견주를 위한 차와 브라우니뿐만 아니라 개들을 위한 식사도 준비되어 있었다. 개밥은 고급 사료 정도가 아니라 양식과 한식으로 된 코스 요리로 나왔다. 출연자는 메뉴 중 하나를 직접 맛보고 맛있다며 감탄했다. 그 정도 음식이라면 20,000원이 넘어갈 법하지만, 상대는 개였다. 개에게 파인다이닝다운 테이블보와 커트러리가 제공되었고, 음식 자체도 예뻤다. 알록달록한 개밥은 견주의 SNS를 반짝반짝하게 채워주기 적합한 피사체였다.
개밥이 정갈해서 내 끼니가 개밥 같았다. 1인 가구의 일상적 끼니는 밥, 스팸 구이, 김치, 김, +@에 수렴한다. 스팸도 사치여서 계란 프라이나 1,200원짜리 유사 햄이나 소시지를 먹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특히 내 끼니는 계란조차 없이 시래기, 버섯, 약간의 콩나물과 김치뿐이었다. 요즘은 밖에서 사 먹어도 두 번 중 한 번은 편의점이었다. ‘끼니’라는 단어 덕분에 ‘먹이’가 된 ‘식사’를 그럭저럭 가렸다.
물론, 특별한 날 좋은 음식을 먹기도 했다. 그러나 내 돈으로 29,000원짜리 음식을 내게 먹여 본 기억은 없다. 2020년 중위 소득 242만 원인 나라에서 29,000원짜리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었다.
과소비가 플렉스가 되는 문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해는 했다. 한국은 더 이상 개도국이 아니라 선진국이므로 소비에 대한 태도는 달라질 수도 있다. 수 백, 수 천 만 원짜리 가방을 자랑하고 선망하는 천민자본주의적 속성과 마찬가지로 지금 내 열등감은 모두 인간적이었다. 인간은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 242만 원짜리 저녁을 먹는 것도, 또 다른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연봉을 하룻밤 술값으로 탕진하는 불평등도 어디까지나 인간 사이의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개만도 못한 것은 사정이 달랐다.
물론 자신이 애정하는 것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나도 개를 키워 봤지만, 개는 자식 같은 식구다. 당장 내 어머니도 당신 입에 들어가는 끼니보다 노견이 된 녀석의 끼니에 더 많은 돈과 정성을 쏟아부으셨다. 더군다나 내 연봉의 수십 배를 버는 사람들에게는 반려동물에게 쓰는 29,000원짜리 한 끼는 2,900원도 안 되는 합리적 비용일 것이다. 세계 어딘가에서는 아동이 노동 착취당하고 있지만 세계 부호들의 반려동물은 이보다 더 나은 것을 누릴 것이라는 것도 안다. 유재석 곁에서 활동할 정도의 연예인이라면 반려 동물 식비가 내 식비보다 더 많이 들 것도 예상 가능하다. 주인 잘 만나면, 개 팔자가 상팔자다. 그러나 막연히 아는 것과 그것을 직접 목격하는 것은 달랐다.
더군다나 유재석의 프로그램이었다. 유재석은 스스로 콘텐츠이자 플랫폼이었다. 사람들은 유재석을 중심으로 모였다. 안테나에 유재석이 속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유재석이 안테나를 고용한 것처럼 보였다. 지상파와 케이블의 경계가 무너진 지금, 유재석은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바르고 반듯한 이미지 덕분에 지상파 공영 방송에 준하는 보편 도덕의 기준을 제시했다. 이번 29,000원짜리 개밥이 시청률 0.3%도 안 되고 화제성도 없는 어느 케이블 티비 프로그램에서 ‘세상이 이런 일이’쯤으로 다뤄졌다면, 그래, 세상엔 그런 일도 있을 거라며 적당히 씁쓸하게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유재석이라는 대중문화 공인인증서 같은 사람에 의해 확인 받으니 현실이 보다 구체적으로 참담했다.
아니, 출연자들 중 누구라도 이 카페를 의심했다면 글을 써야 할 만큼 감정이 극단적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들 의심은커녕 확신했다. 들어서자마자 ‘이건 찐이다.’며 입을 모았고, 무엇보다도 비용 언급이 없었다. 양 팀이 모두 이 카페를 진짜로 확정하는 것은 카페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나에 대한 최종 부정(否定) 선언 같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당신들의 세상에서 나는 천민이었다. 1398년 노비 몸값은 많이 잡아도 오승포 150필로 400~500필인 말에 못 미쳤다고 한다.
숫자를 더 따져 보지 말았어야 했다. 결국은 개밥만도 못한 내 밥을 증명하는 자해가 되고 말았다. 나는 내게 얼마치를 먹이고 있는지를 종합해 봤다. 가계부를 쓰기 시작한 2015년 내 월평균 식비는 211,808원이었다. 치킨 121마리를 먹은 2020-21년에는 317,336원이었다. 올해는 5월까지 234,404원을 썼다. 콘드로이친, 양파즙, 도라지배즙을 빼면 2015년에 준했다. 다이어트 덕분이긴 하지만 이 글을 쓰는 6월 13일까지는 월 49,830원을 썼다. 그리고 당신들의 개밥 비용은 얼마인가?
‘직장인 점심’으로 검색해 보면 최근 급격히 오른 물가 때문에 신음하는 직장인들의 점심값 사정이 줄줄이 나온다. 런치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점심값 1만 원이 현실화 되면서 직장인들은 구내식당과 편의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 와중에 29,000원짜리 개밥 한 끼라니, 웃자고 본 예능에서 열심히 노동해도 우리 사회에서 개밥의 도토리 같은 존재가 되고 마는 기분을 마주하고 말았다. 정말이지, 29,000원짜리 개밥은 가짜였어야 했다. 하아…… 진짜, 가짜여야 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