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오 Oct 22. 2024

어쩌면 고독사에게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니 팬데믹 기간이었을 것이다. 약간 추웠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금방 돌아올 텐데’ 하며 망설였던 기억이 분명한 것을 보면 출근길은 아니었다. 마트에 가는 길이었을 수도 있고, 드물지만 밥 먹으러 가는 길이었을 수도 있다. 뭐가 됐든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날이었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일도 아니었다. 인문학책 여섯 권을 주웠다.


집에서 나가 코너를 돌면 재활용 쓰레기 배출소가 있다. 그곳에 책 더미가 있기에 슥 눈을 줘보니 웬 떡이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은 읽으려 했던 책이었기에 더 반가웠다. 책은 막 배송 받은 것만큼 멀쩡했다. 그보다 더 많은 수험서도 함께 쌓여 있었다. 대학가 원룸촌에서 흔한 일이었다. 수험서는 풀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도 외관이 깔끔했다. 책 주인은 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인가 보았다.


수험서는 몰라도 인문학 책은 당근마켓이나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 수 있을 텐데 왜 버렸는지 의아했다. 인근 대학 졸업장과 각종 자격증도 함께 버려진 것도 의아했다. 눈을 낮춰 취업했나 보구나, 마음대로 단정했다. 현실에 맞춘 눈높이 아래에 선을 긋듯 인문학 책을 버렸겠지만, 여기에 발 담갔던 사람이라면 밥을 먹다 보면 다시 이 책들이 필요해질 거라는 걸, 그 나이는 모를 수도 있었다.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챙길까 하다가 알라딘 중고서점에 최저가로 팔아도 10,000원은 족히 넘을 가격이라 생각하니 만 원짜리를 길바닥에 두는 것 같아서 책을 챙겨 집으로 왔다. 문 안에 넣어두고 오기까지 1분도 안 갈렸을 텐데, 폐지 줍는 노인이 수험서를 챙기고 있었다. 내 정확한 판단이 흡족했다. 노인 역시 양질의 수 킬로그램이 흡족했을 것이다. 내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1년이 지나도록 책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다 당근마켓 동네 생활 게시판에서 우리 동네 이야기를 읽다가 당신이 떠올랐다. 당근마켓 사람들은 우리 동네를 우범지대라고 했다. 외국인이 많기 때문이었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큰길 600미터 남짓 거리에 외국인이 운영하는 베트남쌀국수 집 4개, 할랄 음식점 7개가 있었다. 아시안 푸드 마켓과 중국어 간판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고독사도 많다고 했다. 누군가가 소방서에 근무했던 지인의 말을 빌려 단 댓글에 의하면 한 달에 서너 건쯤 되었다. 2023년 월세 25만 원 안팎 동네는 1960년대 낙원구 행복동 같아서 그럴 법하게 들렸다. 나는 나갈 수 있어도 귀찮아서 보증금 70만 원에 월 17만 원짜리 방에서 15년째 머무는 중이지만, 밀려나야만 하는 사람들은 갈 데가 없음직 했다.


당신에 대해서라면 나보다 어린 사내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학과와 학번도 모르겠다. 자격증 종류도 모르겠다. 어쩌면 자격증이 아니라 토익 성적표였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되었든 당신의 기능을 증명하는 것이었지만 내 전공이 아니어서 그 가치를 읽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단, 당시 당신은 학번상 20대는 아니었으므로 수험서는 막다른 길인 정도는 알았다.


내 알 바 아닌 사실 속에는 죽음들이 우글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덤덤했다. 내 아랫방 사람도 당신이었을지 몰랐다. 20여 년 된 원룸이라 몇 년 전부터 세입자가 나갈 때마다 도배/장판은 물론 내부 시설을 리모델링했다. 아랫방은 2년여 전에 갈아엎었다. 15년째 그대로인 채 낡아버린 내 방과 얼마나 다른지 슬쩍 구경한 기억이 있기에 확실했다. 그런데 올해 또 시끌시끌하더니 문짝까지 새로 달았다. 문짝은 아예 톤도 맞지 않았다. 요즘은 내가 아침마다 카페나 도서관으로 출근했으니, 문제 되었던 것들이 낮에 수습되었다면 내가 알 길이 없었다. 길고양이가 많지만 길고양이 시신이 잘 안 보이듯, 사람도 조용히 치워진다.


책을 주운 날, 나와 폐지 줍는 노인은 시신을 파먹는 구더기였을까. 당신의 고독사를 가정했을 때 모든 정황이 자연스럽게 들어맞았다. 그날 주운 책 『육식의 딜레마』를 읽는 동안 부패한 고기 위에 꿈틀대는 구더기 떼와 이불을 적시고 뚝뚝 흘러내릴 추깃물을 생각했다. 『팩트 풀니스』는 내 학생들 학생부에 기록될 것은 당신의 유산이고, 나는 『강신주의 감정수업』을 당신의 유언처럼 읽을 것이다.


삶은 감당할 수 없는 사태지만, 아이들의 눈으로 ‘나에겐 꿈이 있어요.’에 확신을 가져야 했을까. 우린 이제 젊지도 않고, 괜찮은 미래도 없고, 차가운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도 없고, home에 가닿을 수 없어 이 비루한 house를 전전하지만, 당신이 살아 있으면 좋겠다. - 어쩌면 16년째 같은 방에 살게 될 내게 하는 말이다.

난 내 삶의 끝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당신일 것이다. 밀폐된 생활양식은 고독사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므로 가슴이 답답해질 일은 아니다. 답이 정해져 있으니 답으로 가는 과정은 아무래도 좋지 않은가, 요즘은 그런 기분이다. 하긴, 이 또한 아직 살아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태평한 기만인지도. 당신에게는 그저,


고생하셨습니다. 사느라, 산다면, 살려고.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