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수험서 무더기를 보면, 잠깐 멈춰 서서 묵념이라도 하고 싶다. 골방에서, 도서관에서, 스터디카페에서, 누군가의 죽은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수험 생활은 수명에서 기억을 지우고 책을 새겨 넣는 부당 거래였다. 수험서에 청춘을 상납하기에 청춘은 더 희소해졌다. 매체와 SNS에서 유통되는 맛집, 여행, 연애의 생기에 눈감아야 다음 나이를 제대로 먹을 수 있었다. 절박함으로 쌓아 올린 자기 학대, 최선을 다한 무기력의 증거, 수험서였다.
수능 친 날, 집에서 저녁을 먹고, 수험서를 모두 버렸다. 아파트 단지 내 종이 쓰레기 모으는 노란 함에 힘껏 내던졌다. 나를 괴롭혔던 시간에 대한 화풀이라고 생각했지만 개운함 가장자리를 조금씩 좀먹어 들어오는 우울감에 어리둥절했다. 앞으로의 시간은 살아왔던 시간과 다른 방식으로 소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비현실적이었고, 겨우 시험 하나에 내 전부였던 교과서와 문제집들이 100% 종이 쓰레기가 된 사실은 허탈했고, 수험생활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서의 삶이 조금 무서웠다. 내 생에 넘을 수 없는, 혹은 넘어서는 안 되는 선 위에서 나는 문득 작아져 있었다.
대학 앞 원룸촌에 살다 보니 수시로 버려진 수험서를 봤다. 특정 시기에 버려지기도 했고, 뜬금없이 버려지기도 했다. 수험서를 버리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 가는 표 같았다. 길바닥에 표를 지불한 학생은 이곳을 떴을 것이다. 성공행인지 포기행인지 알 수 없었다. 어딜 가든 선이 목이나 손목에 그이지 않길 바라는 정도로 묵념을 대신했다. 걷다 보면 몫이 생길 테니 그저 삶의 길목이길 바랐다.
나는 최근 한국어 교재와 한국어 교육 관련 서적을 모두 버렸다. 본업에 충실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주말 노동자인 내게 주중 6학점은 주중에 섭취할 ‘선생’이기도 했고, 쏠쏠한 부수입이기도 했다. 그러나 본업에 집중하기 위해 선택이 필요했다. 귀찮지만 확실한 수입원을 포기하는 결단은 쉽게 내려졌다. 강의 평가 ‘매우 싫음’ 2개에 맥 빠졌다. 웃는 얼굴 가운데 나를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눈 두 쌍이 은폐된 공간에서 허깨비짓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사교육은 학생 자체가 높은 강의 평가 점수였다. 나는 ‘쓸모의 기분’이 좋았다.
한국어 교재는 대부분 주웠다. 이곳에는 외국인 유학생도 많이 살았다. 책에는 베트남 이름이 써져 있었다. 교재 필기상태를 보면 이 학생의 금의환향은 힘들어 보였다. 학생 신분은 외국인 노동자가 되기 위한 절차였을 것이다. 내가 한국어 교재를 버리는 일은 자영업자가 되기 위한 절차였다. 이제 논술만 다뤘다.
본업에서 내 쓸모의 완성도가 높아졌다. 편입논술에서 비대면으로 수업한 서울 학생이 연세대 간호학과 1차에 합격했다. 첫 수업 직후, 학생은 기존에 배웠던 것과 내가 가르치던 것이 달라서 갈등했었다. 학생은 두 수업을 병행할 생각이었지만 나는 선택하라 일렀다. 내 입장에서 학생이 쓰는 방식은 글이 아니라 서술형 보고서여서 병행이 불가능했다. 학생은 며칠 갈등하더니 과거에 선을 긋고 내게로 왔다. 나는 책임져 냈다. 2차 서류만 통과하면, 학생은 미래로 금의환향할 수 있었다. 최종 발표는 2월 초라고 했다.
1월 21일, 간호학과 관련 수험서 무더기를 봤다. 보통은 또 한 명이 뜨는구나, 무심코 지나치지만, 언젠가 내 학생도 치게 될 시험이기에 눈이 갔다. 흩어져 있는 것을 쌓으면 한 아름에 안을 정도는 되었다. 쌓아 놓은 책 높이로만 설명될 수 있는 시간 1년, 어쩌면 2년, 혹은 3년, 내 친구 송은 5년이었다. 시간이 완성될 때까지, 수험생은 사람이 아니었다. 책 안의 그어진 밑줄과 빽빽한 글씨들은 ‘불합격’ 한 마디에 높이를 잃었다. 성인으로서 뭔가를 위해 노력하지만 사람구실 못해서 미성년을 벗어나지 못하는 불구의 시간을 다시 살아야 하는 암담함을 삶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책 이름들은 읽어도 내용을 알 수 없어 외국어 같았다. 저 외국어들을 공부해야 직장을 갖고, 세금을 내는 ‘한국 시민’이 낼 수 있으므로 간호사 고시는 어쩌면 그들의 귀화 시험인지도 몰랐다. 1월 25일, 또 간호학과 관련 수험서 무더기를 봤다. 검색해 보니 1월 19일이 간호사 고시 시험이었고 결과 발표는 2월 중순이었다. 재수를 생각하지 않았던 열여덟 살짜리 나처럼 낙방을 예상하지 않든, 마흔 살이 넘은 나처럼 중심을 향해 배수진을 친 것이든, 연말연시가 더 어두웠을 것은 분명했다. 2월 중순, 당신은 몇 살일까?
2월 2일, 내 학생은 최종 불합격 소식을 전해왔다. 후보 10번을 받아냈지만, 연세대에서 후보 10번까지 기회가 주어질 리 없었다. 몇 년 전에도 연세대 간호학과 논술은 붙였는데, 서류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기의 나의 쓸모는 오그라들었다. 내가 자소서 설계에 더 집중했으면 이 학생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논술이 필요 없었던 다른 대학으로 편입하고 나면, 이 학생에게 논술의 시간은 헛것이었을까. 학생이 논술 기출과 그동안 썼던 답안과 첨삭을 패대기쳐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헛것의 기억이었다. 아니, 차라리 잊히길 바랐다.
4년 전 고려대 경영에 합격한 학생은 보기 드물게 학점이 낮았지만, 자소서가 좋았다. 이 학생의 대학생활은 강의실 밖에 있었다. 학과 관련 풍부한 대외생활 덕분에 자소서를 통해 편입의 당위를 논증했다. 그 학생을 보며 삶은 숫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토익 유효 시간처럼 숫자가 증명한 능력은 휘발된다. 그러나 서사는 실존 양식으로서 영생한다. 대학이 학생부 종합 전형을 선호하는 것도 숫자로 가스라이팅 된 학생을 서사로 구원하는 방식이다. 나는 수학 공부에 전념한 내 10대가 아깝다. 내게 시도, 소설도 가르치지 못한 국어 공부 시간도 아깝다.
내가 간호학과 수험서들을 발견한 건 아침이었으니 수험서는 전날 밤 버려졌을 것이다. 그날 밤, 그들은 뭘 했을까? 나는 책을 모두 버리고, 만화방에 가서 만화책 스무 권 남짓 빌려와 이불 속에서 결핍되었던 서사를 탐식했다. 당신들은 아껴둔 [더 글로리]나 [무빙]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친구나 연인과 함께 밤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뭐가 되었든 선을 그은 이상, 서사를 합성해 나가기를 바랐다, 는 책임 없는 낭만이다.
사실 누구나 서사는 힘들다. 성공행 표로 도착한 세계는 월요일이 지나치게 거대한 삶이다. 주말에 어쩌다 숏폼 같은 일화가 끼어들 뿐, 무한 출근에 서사를 상납한다. 서사의 관점에서 외국인 노동자보다 내가 더 빈곤한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국의 삶과 돌아갈 고향이 있다. 기만이겠지만, 우리는 선을 넘은 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 희망이, 그 지긋지긋한 출근을 지속하는 정도로 단순해진다. 그래도 출근할 수 있으면 내 밥벌이 내가 하는, 성인으로서 자존감 최소 요구치는 충족한다. 나이 먹고 부모님 등골 빠는 죄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한국어 교재로 그은 선 밖에서, 나는 돈은 더 벌되 서사는 더 단순해졌다. 잃어버린 서사의 가격은 알 수 없지만 ‘돈을 번다’, 그거면 되었다. 21세기 20대는 청춘이 아니라 수험서다. 수험서 부류의 20대를 보낸 이들에게도 ‘돈을 번다’, 역시 그거면 되었다. 수험서가 아닌 모든 것에서는 서사의 가능성이라도 있었다.
버려진 수험서에서 버리지 못한 수험서를 생각한다. 수험서를 버리지 못한 당신들의 20대, 어쩌면 30대, 혹은 40대가 무사하길. 언젠가 꼭 버릴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