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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Oct 22. 2024

전단지의 비극

전봇대는 최후 보루였다.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지 않아 나는 백수였다. 과외 전단지를 붙이며 전봇대 사이를 떠돌았다. 전봇대에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덕지덕지했다. 나의 간절함과 그들의 간절함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우뚝 선 전봇대가 팔 벌린 예수님, 부처님 같았다. 부디 우리에게 사랑과 자비의 전화 한 통을 베푸시길.


과외 전단지를 처음 붙인 것은 실직 직후였다. 예상치 못했다. 아니, 하나 남았던 개국공신 같은 선배 강사까지 그만 두었을 때, 학원의 중심에서 내 차례를 예감했다. 원장님의 합리와 내 합리의 이격이 커져갔다. 어떻게든 될지 알았지만 어떻게도 되지 않았다. 자존심을 낮추지 못해서 대책 없이 사직서에 사인했다. 사직서를 쓰면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정도로 멍청하고 무방비한 퇴사였다. 퇴사하고 보니 2km 이내 겸업 금지 조항이 숨 막혔다.


당시에는 수성구가 아닌 곳의 논술 학원을 상상할 수 없었고, 과외 경험도 없었고, 조언을 구할 사람도 없었다. 이도 저도 못하고 방구석에서 뒹굴었다. 학원을 나왔을 뿐, 내 강의력은 변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강사가 아니게 된 사태가 무참했다. 당장의 밥그릇도 문제였지만 ‘강사가 아닌 나’는 감당되지 않았다. 아침에 눈 뜰 때마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시간은 너무 많았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나의 쓸모없음을 묵묵히 견디는 것뿐이었다. 실업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쓸모없음에 스스로 설득되어 갔다. 더 있다가는 통장 잔고보다 마음의 잔고가 더 빨리 소진될 것 같았다. 전단지라도 인쇄해서 집 밖으로 나갔다.


자존심 때문에 학원을 나왔더니 자존감이 바닥을 기었다. 전단지를 붙여나갈수록 위축되었다.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던 청소부와 경찰차가 너무 많았다. 전단지를 통해 상담 전화를 기대했지만, 상담 전화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않았다. 내가 학부모라도 전봇대에 청테이프로 모서리가 마감된 흑백 전단지를 보고 전화할 것 같지 않았다. 전봇대에 붙은 내 전화번호는 폐점 정리나 남성 전용 마사지와 잘 어울리는 재고나 불량 같았다. 그럼에도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효과는 역시 미미했다. 2년 간 전봇대 전단지로 맺어진 인연은 2명에 불과했다. 겨우 전단지를 보고 나를 신뢰하다니, 기적 같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가능성을 뿌리는 행위를 멈추면 삶은 뿌리 채 뽑힌다. 한여름에 20km를 걸으면 사타구니가 쓰라렸고, 한겨울에 20km를 걸으면 손마디가 터질 것 같았다. 가르치는 시간보다 걸은 시간이 많은 달, 내 자존감을 달래기가 더 피곤했다.


전봇대는 가사 상태인 자존감들의 서낭당이었다. 이런 식의 의미 부여를 해봤자 전단지 부착은 불법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는 도시 미관을 망쳤다. 구청에서는 전봇대 둘레에 테이프가 점착되지 않는 도료를 칠하거나 우둘투둘한 외피를 입혀 전단지가 구겨지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투명 테이프로 전봇대를 칭칭 감아 저항했고, 나는 그 테이프에 내 전단지를 붙였다. 그래도 버스 정류장의 구조물이나 가로수에는 붙이지 않았다.


내 행동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병든 아이 약값이 없어서 서낭당에서 기도하는 어미의 심정으로 전봇대 사이를 오갔다는 사실을 고백할 뿐이다. 당시는 정말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 유일한 희망의 길이 불법이어서 전봇대를 오갈수록 이방인이 된 듯했다. 불법인간, 탈락인간, 장외인간, 시민실격, 자본주의난민이 당시 나의 자아 정체감이었다.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다 보면 다른 전단지 주인과 희미한 연대감을 느끼곤 한다. 사회 하부에서 꿈틀대는 것에 대한 측은지심의 동병상련이었다. 사람 생각이 엇비슷해 전단지를 붙이는 동선이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좋은 자리라고 해도 앞 사람의 전단지를 함부로 뜯거나 그 위를 내 전단지로 덮지 않았다. 나는 당신도 간절함을 안다. 오히려 테이프가 뜯어질 것 같으면 내 테이프 조각을 하나 붙여줬다. 과외 전단지 경우 하단의 문어발처럼 갈라놓은 전화번호를 한두 개쯤 뜯어 관심 받고 있는 전단지처럼 보이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거짓 희망이라도 필요할 때가 있었다.


이제는 광고 전단지를 붙이며 돌아다니지 않는다. 갑자기 준법정신에 각 잡힌 것은 아니다. 전단지를 붙일 때 배어 나오는 처량함과 비효율에 질렸다. 돈 주고 아파트 게시판에 광고했다. 그러다 블로그와 인스타를 통해 홍보 활로를 뚫었다. 한 번 붙이면 떼어질 수밖에 없는 전단지와 달리 블로그와 인스타에 올린 전단지 같은 게시물들은 쌓여서 역사가 되었다.


전봇대 사이를 거닌 덕분에 전단지로 흉물스러운 전봇대가 사회 하부에 그득한 생존 아우성임을 안다. 그들도 그곳에 자신이 부착되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그곳마저 빼앗기면 마땅히 자신을 알릴 길이 없어, 그들은 없는 존재가 된다. 옛날, 소작인들이 논가에 심은 콩을 지주들도 건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봇대에 광고 전단지 부착이나 길바닥 투기를 허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행정 조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내 입장이 뭐냐면, 쓰레기통에 자신의 전단지가 구겨져 있어도 꾸깃꾸깃, 아무튼 힘내시길 꾸역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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