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고

옛날TV를 보면서

(가져본 적 없는 꿈에서 추방된 후)

by 하루오

향수(鄕愁)가 필요할 만큼 나이 먹어버렸을까. 혹은 ‘요즘’에 지치고, ‘새 것’을 이해하는 게 번거로운 탓일까. 언젠가부터 예전에 봤던 예능이나 드라마를 정주행 하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하이킥] 종영이 벌써 14년이다. 세월은 빠르고, 나는 보잘 것 없어졌다. 10년 전, 20년 전 내가 그린 ‘요즘’에 이런 나는 없었다. 맥수지탄(麥秀之嘆)과 백수(白手)지탄 사이의 아슬아슬한 불안이 내 일상인지도 모른 채 살아왔다.


요즘은 [무한도전] 정주행 중이다. 해마다 정중행 했으니, 정주행이 무의미한 정주행이다. 멤버들이 인생 에피소드를 채워가며 사회적 지위를 쌓아가는 동안 나는 겨우 생존해냈다.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보다는 그 시절 나에 대한 죄책감이 크다. 특히 내일 모레 마흔이라며 깽판 부리던 박명수. 당시 나는 박명수를 곁에 두고 싶지 않은 이기적 쭈구리로 낙인찍었다. 그러나 지금의 박명수는 유재석의 선한 영향력 때문인지, 돈이 주는 안정감 때문인지 몰라도 나 같은 것은 비벼볼 수도 없는 성숙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나의 마흔은 당신의 마흔보다 비굴하다. 당신은 당신의 꿈속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이고, 나는 꿈과 밥이 비벼진 괴식을 꾸역꾸역 먹어왔다.


대충 아는 내용을 다시 보다 보니 새로운 감상법이 생겼다. 예능은 게스트 중심으로 보고, 드라마는 작은 역할 중심으로 봤다. 그들은 그 나이의 나처럼 꿈을 좇는 이들이었다.


나는 A의 미래를 알고 있었다. A는 모 예능 몇 주 후에 자살했다. 아직 톱은 아니었지만 그 예능에 고정 패널로 출연할 만큼 상승세였기 때문에 A의 죽음은 의외였다. 방송에서의 웃음은 자살을 견디는 것인지, 그렇게 웃어야 하기 때문에 자살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A의 예능 출연은 A가 그리던 꿈속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살아 본 꿈은 보잘 것 없었나? 아니면 예능은 꿈을 꾸기 위해 자신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고역이었나?


A의 죽음으로 내 삶이 평균에 다가선 느낌이 들었었다. 나는 시기심과 열등감이 만든 괴물이었다. 그때보다 성숙해진 지금도 이 저열한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열등감도 지겨워지고, A가 막내 동생 내지는 큰조카뻘로 어려지자 A가 죽지 않고 활동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에 변수는 많겠지만 그 시절 A와 비슷한 레벨의 연예인들의 지금 모습을 보면, 좀 더 견뎌보지 그랬니, 그 한 마디 할 수 있게 되었다. A에게 한 말인지 내게 한 말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박명수보다 빨리 늙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나도 A를 따랐어야 하는 건 아닌가 죄책감도 갈마들었다. ‘나는 이런 내가 되고 싶은 적 없었다.’는 내 원죄였다. 하물며 나는 A만 못했다. 20대 때는 아무도 추궁하지 않는 죄의식에 짓눌려 쭈구리를 자처했다. 하지만 비만해진 나이는 그런 죄책감쯤은 간단하게 무질러버렸다. 양심도 열정이 있을 때나 활성화 되었다. 지금은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어차피, 어차피다.


모 드라마에서는 스타가 된 B의 초창기 시절이 발견된다. 예능은 최소한의 인지도라도 있어야 출연하지만 드라마에서 조연 미만의 연기자들은 싱싱한 무명이었다. 보잘 것 없는 역할이 너무 어울려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도 없어 보였다. 내일의 내게 오늘의 내가 어울리듯 다음 드라마, 그 다음 드라마에서도 보잘 것 없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런 자리에서 주연 배우의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묘하게 경이로웠다. 이미 ‘나라고 안 될 건 뭔데?’에서 ‘내가 그럼 그렇지 뭐.’에 익숙해진 나는 부끄럽지도 않았다. 한편으론 결과가 정해진 젊은 그를 응원했다. 무열정의 열등감 괴물의 일관되지 않는 속을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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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준조연급 연기자 C의 신상을 검색한 적 있었다. 모 드라마 방영 당시에는 비중이 없어 C에 관심 없었다. 종영 10년이 훨씬 지난 후 다시 정주행하다가 문득 C의 안부가 궁금했다. 다시 본 C는 연기력보다는 비주얼 가치가 높았다. 연기력은 노력으로 극복 가능하지만, 비주얼은 타고 나야 하므로 C는 스타가 되기 좋은 자원이었다. 그러나 C의 필모그래피는 그 드라마 이후 1년 만에 끝났다. 지상파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포털의 등장인물 소개란에는 빠져 있었고, 듣도 보도 못한 케이블 방송 등장인물 소개란에는 얼굴을 올렸다. 뉴스 검색을 해보면 언론 플레이성 봉사 활동과 동명이인의 변호사 기사만 나왔다. 팬카페는 100명 남짓한 회원이 남아 있을 뿐 14년 전 게시물이 마지막 글이었다. SNS를 하는 듯했지만, 포털에 연결된 주소로는 연결되지 않았다. 이후 가능성 있어 보이는 D, E, F, G들을 찾았다. 이들은 대동소이하게 사라졌다.


꿈에서 추방되고 난 이후의 삶은 무엇일까? 그들에게 tv에 얼굴을 비추던 시절은 추억일까, 젊은 날을 헛되게 보낸 기회비용의 안타까움일까? 편의점 알바를 해도 시급의 50%는 더 받아도 될 비주얼들이니 내 인생보다 편하겠거니 한다. 그러나 비주얼이 튀지 않아 내가 관심도 주지 않았을 10년 전 d, e, f, g도 있을 것이다. 연기력이든 가창력이든 2% 모자란 사람들은 연기, 노래가 아닌 것 중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꿈이 높고 멀었다면 빨리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았을 텐데, tv에 얼굴을 내밀고 크고 작은 역할을 맡은 작은 성공의 경험이 쉽게 꿈을 놓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인생을 좀먹었을 텐데, 지금 괜찮을까? 아니면 아직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직도 꿈을 좇고 있을까?


요즘은 학생들부터 묻는다. 꿈을 꿔야 하느냐고. 다들 아는 것이다. 추락하는 꿈에는 날개가 없다. 꿈을 좇느라 쌓인 인생의 기회비용은 꿈을 실패/포기한 순간 빚더미로 다가온다. 내 꿈은 소설가였고, 20년 만에 꿈을 포기하고 보니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지인들과 나의 밥벌이 격차가 아프고, 남는 시간에 소설을 쓰겠다고 연애, 여행도 포기한 지난날이 허무하다. 나는 살아온 게 아니라 텅 빈 시간을 꿈을 좇는다는 사실로 미장하며 버텼을 뿐이다. 어중간한 재능으로 꿈을 좇는 것은 비루하다. 다 알면서도 꿈을 놓는 용기를 내지 못해 질질 끌다가 기어이 마흔을 넘겨 버렸다.


높이 날려다 땅에 떨어진 갈매기를 만나고 싶다. 술을 못 마시지만 그 날은 어쩌면 진탕 취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날 수 없어 지상의 고양이에게 쫓겨 다니는 갈매기가 제발 내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혀가 꼬부라진 채로, 최선의 추억이었다고. 지금도 자기 이름으로 된 드라마 촬영 중이라고. End가 아니라 And라고, 제발 이 따위 잡문이나 배설하며 찌질대지 말라고. 그러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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