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을 세우고 무너뜨리기를 한 달 남짓 반복한 끝에 다리 입구까지 왔다. 서울 1964년 겨울 어쩌구 하는 시공석에 걸터앉았다. 열흘 넘게 이어지는 열대야에 먼지잼까지 더해져 푹푹 쪘다. 안개로 강바닥도 보이지 않았다. 양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볼륨을 높였다. 30년 가까이 장송곡을 들어온 셈이다.
1. 난 알아요 (feat. 김광석)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14년이 전광석화처럼 지나가버렸다.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청춘은 또 하루만큼 떠나 버려야 한다는 그 사실을, 그 이유를 이제는 나도 알 수 있다. 남겨진 것은 마흔 살이다.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겠다. 어쨌거나 지금은 너무 늦어버렸다. 스무 살, 그때 나는 무얼 하고 있었나. 그 미소는 아마 아름다웠을 텐데. 비어 가는 내 가슴 속에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맞고, 내가 떠나온 것도 맞다. 이제 그만.
알고 싶다. 한양의 정궁을 중심으로 종묘와 사직이 동쪽에 있는지 서쪽에 있는지를 묻는 시험이 내게 적당한 것인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그것을 모르면 사람이 될 수 없음은 분명했다. 중앙직이든 지방직이든, 9급이든 7급이든 내게 오직 합격만이 전부였는데, 내가 기투할 진실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제 없다. 아직도 마음속에 내가 있을까. 나는 합격의 영원한 신기루다.
2. 필승(feat. 넥스트)
불합격이란,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보기 좋게 차인 것이다. 빌어먹을 내 가슴 속엔 아직도 합격이 살아 있다. 난 정말 바보였다. 인생이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내 마음도 인생을 사랑했기에 내가 가진 전부를 다 줘버렸다. 그러나 하늘은 무너졌고, 솟아날 구멍은 없었다. 다리 건너편의 소실점을 향해 발을 뗀다.
처음에는 아침에 우유 한 잔, 점심에 패스트푸드를 먹어도 좋았다. 쫓기는 사람처럼 시계바늘을 보면서 강의실을 가득 메운 수험생들의 적요, 어깨를 늘어뜨린 수험생들, 모두가 똑같은 얼굴을 하는 것까지 좋았다. 아무런 말없이 각자 걸어가는 풍경 속에서 나는 나의 길을 갔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는 나의 길을 간 것이 아니라 끝을 반복했을 뿐임을 알았다. 그 시간 동안 아무도 모르게 내 속에서 살고 있던 내가 죽었다.
3. 교실 이데아(feat. 이한철)
됐다. 정말 됐다.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다. 그걸로 족했다. 14년 차가 되고 보니 내가 알아야 할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매일 아침 7시 30분까지 좁은 교실로 들어갔다. 전국 수천수만 공시생의 머릿속에 똑같은 것을 집어넣는 풍경이 기괴했다. 그래봤자 불량률 95% 이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도 위험 없는 사람 장사. 사방이 막힌 이곳에 우리 모두 삼켜진 듯했다. 이 시커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웠지만 이곳을 통과하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없었다.
14년 동안 착실하게 시간을 죽여 왔다. 죽은 시간 더미는 문득, 마흔이었다. 땀은 추깃물이고 땀내는 시취다. 살아있는 내가 호러다. 괜찮아 잘 될 거라고, 우리에겐 찬란한 미래가 있다고, 자기기만에 취하는 것도 3년차까지였다. 이제는 불합격이 눈물 한잔에 마셔지지 않았다. 뭔가 새로 시작하기엔 어중간한 나이와 타성만 남았다. 좀 더 비싼 내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하기 위해서는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내가 외운 것과 내 인생이 등가교환되기를 바랐다. 그곳은 종묘와 사직만큼 오래되고 쓸모없는 지루함으로 금을 만들려고 하는 21세기 중세였다.
4. 발해를 꿈꾸며
나는 온전한 내가 아니다. 이것만이 내가 나를 납득할 수 있는 방식이다. 현재의 나는 나의 절반이고, 합격한 나도 나의 절반이다. 나는 절반의 나로서 나머지 절반의 나를 찾아가는 여행 중인 것이다. 진정 나에게 단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갈려진 절반의 나를 만나는 것이다. 망설이는 것은 아니지만 망설인 게 되어버린 시간 동안 나는 나를 잃어왔다. 이미 되어버린 나와 되고 싶은 나가 서로에게 칼끝을 겨누고 있는 꼴이다. 이미 되어버린 나는 되고 싶은 나를 향해 열등감을 찌르고, 되고 싶은 나는 이미 되어버린 나를 향해 자책감을 내리친다.
내게 물었다. 몸을 반을 가른 채 현실 없이 살아갈 거냐고. 치유 할 수 없는 아픔에 절규하는 나를 지켜주는 것은 없었다. 취향이 사라지는 것으로 나는 이미 되어버린 나조차 닳아가는 중임을 깨달았다. 대체 언제적 서태지라고. 그래서 시원스레 마음의 문을 열고 되고 싶은 나와 나갈 길을 찾았다. 더 행복할 미래가 없으므로 다리 위를 걸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등과 사타구니에 옷이 붙었다 떨어졌다. 쉰내가 진해졌다.
5. 컴백홈
난간 앞에 섰다. 겨우 한 뼘이었다. 난간 앞으로 반동을 주며 몸만 앞으로 더 숙이면 되는데, 숙여지지 않았다. 한 번만 더, 생각뿐 숙여지지 않는다. 살아 있는 습관에 발목 잡히고 만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나는 참 별로다. 내 가슴 속은 답답해졌다. 내 삶을 막은 것은 내일의 대한 나의 두려움보다는 제대로 죽지도 못하는 비겁함과 그런 채로 살아있는 어정쩡함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반복됐던 기나긴 날 속에 버려진 내 자신과 또 그렇게 악수하는 나는 최악의 인간이다. 서태지를 듣던 시절에 멈춘 채 생에 가산되는 연체료를 무력하게 바라봐 왔다. 이곳에 1년 전에 왔어도, 2년 전에 왔어도, 3년 후에 오더라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6. 환상 속의 그대
눈으로 들어가는 빗물을 손등으로 닦아낸다. 온몸에 달라붙던 점성이 다 빠질 만큼 빗물로 축축해지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면 시원하게 쏟아질 것 같다. 강물이 불어나면 나는 인천으로, 서해로, 태평양으로, 온 세상 물고기들 다 만나고 오겠다. 아니, 오지는 못하려나. 다시 난간에 선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몸을 숙였다가 선을 넘지 않고 되돌린다. 온 세상 어린이가 겁쟁이라며 하하, 하하 비웃는 것 같다. 마음을 다잡는다. 결코 시간은 멈춰질 순 없다. 나만 줄곧 멈춰 있었다. 무엇을 망설이일까? 되는 것은 단지 뛰어내리는 것뿐이다. 바로 지금이 나에게 유일한 순간이며, 바로 여기가 단지 나에게 유일한 장소이다.
드디어 나는 뭔가 제대로 된 인간이다. 그저 삶 한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얘기하려 환영에서 벗어난다. 다만 좀 아쉽다. 좀 더 높은 곳에서 뛸 걸. 40년간의 환상이 너무 길었다. 중력 가속도가 시원해지고서야 알겠다. 나는 서태지가 아닌 다른 노래를 듣고 싶었다.
7. Good 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