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햇볕으로 온다. 칼바람이 무뎌진 겨울 끝, 고양이가 먼저 볕을 쬔다. 움직이면 볕이 달아날까 부들부들한 덩어리로 얌전하다. 밤새 언 몸에 온기가 내려앉아 졸린 모양이다. 눈꺼풀에 볕이 걸려 무겁다. 한두 시간쯤 지나면 고양이에게서 잘 구워진 식빵 냄새라도 날 것 같다. 바람이 고양이를 깨우지 않기를 바라며 해의 반대편 하늘로 눈을 돌린다. 하늘은 아직 찡하다. 바람에 겨울 냄새가 아린다. 겨울은 냉기가 냄새다. 고양이의 몰랑몰랑한 발바닥 아래 봄이 천천히 고인다.
도시의 봄은 더디게 온다. 도시는 변온동물이다. 콘크리트의 체온을 올리기에는 볕이 모자라다. 콘크리트 안쪽에선 보일러와 히터로 열을 내지만, 항온은 방의 일이다. 방은 고성능 단열로 온기를 바깥과 나누지 않는다. 늘어난 공실이 밤새 가둔 냉기를 바깥으로 풀어낸다. 비좁은 건물 사이를 따라 냉기가 휘몰아친다. 도시는 아스팔트로 결박된 회색 공룡들의 냉동고다. 그래서 새벽의 청소부, 오토바이로 바람을 갈라야만 살 수 있는 음식 배달원, 바람보다 더디 움직이는 폐지 줍는 노인에게 조금 더 일찍 봄이 온다. 볕이 따스한 만큼 봄이다. 핫팩을 손에 쥐고 있는 한, 고양이의 이른 봄을 볼 수 없다.
하늘이 볕을 머금고 나면, 햇무리가 괜히 둥글어진다. 눈에 넣어도 긁히지 않을 것 같아서 가만히 바라보면, 과연 해는 해라서 부시다. 눈을 감으면 어둠이 환하다. 햇무리는 둥근 발로 뚜벅뚜벅 걸어와서 햇발이다. 햇발이 젖 빠는 새끼 고양이처럼 눈알을 꾹꾹 밟는다. 겨울이 눈시울 안쪽에서 아무도 모르게 녹는다. 눈물은 봄의 전조다.
봄은 햇발로 윤곽을 두른다. 식빵을 굽는 고양이 털끝이 윤슬처럼 흔들린다. 볕이 흩어질 걱정 없이 고양이는 간간이 꼬리를 휘젓는다. 털이 빛가루처럼 날린다. 빛가루는 그림자가 없다. 햇발이 가려 놓은 허공으로 사윌 뿐이다. 바닥에 달라붙은 고양이 그림자는 조금 진해졌다. 그래서 햇발은 고양이의 그림자다. 햇발이 고양이처럼 사방을 걸어 다니며 발자국을 찍는다. 발자국은 봄의 음표다. 음표의 합은 고요하다. 사물은 조용히 경계가 밝아진다.
도시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햇발이 닿은 담벼락 아래, 전봇대 밑동에 눈물이 남아 있다. 본래 무엇이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는데, 문득 물기가 번진다. 저 물기가 땅속 어느 씨앗을 깨운다. 이 역시 아무도 모른다. 콘크리트는 묵묵히 콘크리트다. 그러나 눈을 감았다 뜨면 숨길 수 없다. 햇볕에 익은 눈은 햇발의 음표를 읽는다. 콘크리트 위에 잠깐, 빛의 잔상이 어린다. 세상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밝다. 무엇이든 명징해진다면, 무엇이든 있어도 될 것 같다. 평화로운 허락이 토닥토닥, 하늘에서 내린다. 밝은 무심함 속에서, 겨우내 콘크리트 같던 은행나무, 벚나무도 색깔을 준비한다.
빛과 어둠 사이의 선을 타고 햇기가 퍼진다. 햇기에서 생기가 부글댄다. 콘크리트가 꼬리를 휘두를 수 있다면 오직 그 경계다. 콘크리트는 얌전히 있음으로써 생기와 활기의 구분을 지운다. 고양이는 햇빛이 심은 봄의 씨앗이었다. 고양이 그림자는 봄의 뿌리다. 모든 그림자는 햇기의 뿌리다. 살아 있는 것은 옳다.
봄은 햇살로 채워진다. 해의 살이 여기저기서 차올라 생이다. 생은 해의 아류다. 무엇이 되었든 따뜻하고 밝을 수밖에 없다. 고양이는 이를 잘 아는 동물 중 하나다. 햇살 속에 머무르며 해를 몸속에 충전한다. 해가 온몸으로 간질간질 돌며 나른해질 때, 고양이는 늘어지게 하품한다. 생이 귀찮지만 살아 있는 한 별 수 없다. 살아야 하는 권력감으로 한 번 더 나른해진다. 앞발을 쭉 내밀고 엉덩이를 뒤로 올리며 기지개를 켠다. 콘크리트 그림자 속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간다. 밥 먹을 시간이다. 혹은 짝짓기의 시간이다. 그림자도 햇살의 땅이어서 어딜 가도 봄이다. 봄은 생의 동의어다.
나는 벤치에서 해를 맞으며 맡는다. 봄에는 온기도 냄새다. 니트는 얇아졌고, 신발 밑창은 시리지 않지만, 벤치는 아직 차갑다. 그러나 뭉개고 앉아 있을 만하다. 온몸에 머금은 햇볕을 엉덩이로 나눠줄 수 있다. 엉덩이로 봄을 낳는 중이다. 주머니에서 손을 뺀다. 햇살을 향해 손을 뻗으면 살과 살이 악수한다. 공룡과 고양이가 만져진다. 시간의 살결이다. 내가 해의 아류라는 게 믿기지 않지만, 내가 해의 아류여서 참 다행이다. 나는 따뜻하고 밝다. 햇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