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 : 물 몸 봄

by 하루오

육체가 곧 영혼이다. 봄의 하천을 보고 있노라면 사실이다. 하천의 사실들이 말을 걸어 온다. ‘괜찮아질 것이다.’가 생동한다. 사실의 감각들이 나의 감각이어서 나도 봄이다. 하천을 걷고 있으면 나는 무작정 괜찮다. 세계는 죽음을 모른다. 오직 태어남뿐이다.


봄은 보이기 전에 들린다. 물소리의 결이 다르다. 산에서, 들에서 녹은 겨울들의 여음이다. 겨울뿐인 소리는 맑고 가늘다. 겨울이 물러나는 소리도 맑다. 맑은 것은 두꺼워도 맑다. 돌을 치는 소리가 돌까지 투명하게 만들며 소리는 내부를 보인다. 소리의 안쪽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흐르는 힘이다. 끊어지는 상상을 할 수 없도록 잇대지고, 잇대진다. 얼음이 잊히며 보이지 않아도 하천이다. 봄의 혈관이 하천이더라도 봄의 심장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겨울과 봄의 소리 낙차만 명징하다. 다리 아래 소리는 둔하게 울린다. 다리 그늘 경계로 나오면, 울림 위에 다리 바깥의 소리들이 화음을 얹힌다. 눈을 감으면, 무질서가 조율되는 시간, 봄의 전압이 하천을 타고 몸으로 스민다. 모든 계절은 봄의 기억으로 맥박을 유지하듯, 몸은 태어남을 되새긴다. 봄의 하천에서 나는 흐르는 생이다.


눈을 뜨면, 겨울의 흔적이 보인다. 강변에 투명한 얼음이 남았다. 더이상 흰빛을 붙들 힘이 없다. 땅 가장자리도 붙잡지 못해 간신히 떠 있다. 얼음 표면에 미세한 금은 깨진 것이 아니라 물이 스민 것이다. 물소리는 쩍, 얼음 가르는 소리를 품는다. 얼음은 녹는 것이 아니라 봄으로 떠내려 간다. 얼음이 이미 지워진 곳은 겨울을 닮은 소리가 바닥을 가볍게 젓는다. 눌려 있던 낙엽이 물 위로 떠오르기도 하고, 어디에서 떠내려 온지 모를 잔가지가 마른 풀잎에 걸려 제자리에서 까딱댄다. 그러나 봄의 하천은 멈춰 있는 것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하천의 중심에서 퍼진 힘 한 가닥이 툭, 잔가지를 밀어낸다. 잔가지는 물살을 타고 멀어진다. 물살의 중심에는 봄의 체중이 있다. 물살은 탁하되, 튼살 같은 하얀 결을 남긴다. 하천은 속도와 깊이를 갖추고 윤슬을 거느린다. 윤슬은 속도 위에서 부서지기 위해 신생한다. 불투명함의 안쪽에서 깊이가 커진다. 나는 하천의 깊이를 보고 있지만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하지만 본다. 혈관이 곧 심장인지도 모른다. 흐르고, 흐른다. 흐르면, 충분하다.


모든 것이 흐르지는 않는다.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보면 안다. 내뱉고 다시 들이쉬어도 마찬가지다. 몇 번을 반복해도 물비린내가 한결 같다. 물에서 왜 비린내가 나는지도, 이 비린내는 왜 역하지 않은지도 알 수 없으나 소리와 반짝임으로 마비되어 있어서 괜찮다. 녹아 풀린 낙엽의 숨, 오래 눌려 있던 흙의 단내, 물에 젖은 돌의 금속성 냄새가 겹쳐 있다. 햇볕 아래에서는 연해지고, 그늘 아래에서는 진해진다. 콧속에 덩어리째로 박히는 비린내는 썩은 것이 아니라 풋것이다. 겨우내 갇혀 있다 막 풀려난 땅의 체취다. 땅이 숨겨둔 속내가 수분으로 스며 개울로, 시내로, 하천으로 집합한 진실이다. 계절은 늘 풋것이어서 숨을 들이마시면 나는 겨울과 봄 사이의 우뚝 선 머무름이다. 내 안으로 들어온 봄의 체취가 잠시 머물다 빠질 때, 내 안에 숨겨진 속내를 데려 가고, 코와 목 사이에 얇게 붙어 봄의 사실이 몸으로 남는다. 내 비릿내를 내가 맡을 수 없지만, 나는 영혼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봄이다. 우리는 같은 체취를 공유한다.


체온은 별개의 일이다. 손끝을 물에 대어 보면, 겨울이다. 손을 담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겨우내 봄이 땅에 숨어 있듯, 봄엔 겨울이 물 속으로 몸을 옮긴 듯하다. 하천은 얼지 않은 물일 뿐이다. 끊임없이 흘러, 흘러 겨울을 밀어낸다. 그러나 계절은 서로를 일방적으로 잡아먹는 아수라의 진창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도록 물은 꽤 오래 겨울임을 안다. 겨울을 담지 못하는 내가 봄을 완전히 닮지 못한 것이다. 하천의 바람은 덜 차나 더 거세다. 냉온의 격차가 머무름을 허락하지 않듯, 머리칼과 옷자락을 사납게 헝클인다. 바람을 타고, 혹은 거슬러 걷는 것, 봄을 기다리는 몸의 일이다. 흙은 축축하다. 부드럽게 으깨진 흙이 발바닥에 달라붙는다. 질척이는 것이야말로 봄의 촉감이다. 봄은 천천히 계절의 체온을 회복하고 말 것이다. 따뜻해질 것이라는 확실성으로, 몸에 닿는 겨울의 끄트머리들을 담는다. 나는 따뜻해질 것이다.


하천변에서 걸어나와 뒤돌아 보면, 문득 연초록빛 파스텔 가루가 뿌려져 있다. 둑 가장자리에서 먼저 번진 색이 풀끝을 타고 올라, 버드나무 잔가지까지 옅게 적신다. 물소리의 낙차가 만든 생기를 윤슬로 빚고 풋내를 바른 온도, 연초록이다. 점은 면으로 퍼지며 하천변을 잠식해 나간다.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초록빛 운동성에 육체와 영혼의 경계가 지워진다. 심장은 없어도 된다. 태어남, 그뿐이라며 봄의 하천은 흐른다. 두근두근.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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