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 봄의 여백

by 하루오

봄은 매화를 위한 여백이다. 매화는 여백이 뜬 눈이다. 겨울의 꽁무늬에 하늘이 가득하다. 하늘에 시간이 잠들어 있다. 낮이든 밤이든 얼음은 풀리지 않는다. 추위가 뜨고, 추위가 내리고, 추위가 분다. 앙상한 가지와 지푸라기의 색은 제자리다. 할 이야기가 없어 시간이 길다. 긴 것이 고이고, 고여서 길다. 긴긴 기다림 끝, 시작의 시간이다. 이야기가 탄생한다. 매화는 여백으로 된 첫 번째 이야기다.


매화는 필기체로 농담(弄談)한다. 까만 가지는 매끈한 직선을 모른다. 휘어지고, 굽어져도 직선의 방향을 잃지 않는다. 활자가 아닌 활력이 제멋대로 생기를 쓴다. 잘생긴 글씨는 말이 없어도 이야기다. 매화가 핀 순간, 가지는 선(鮮)하므로 선(線)이다. 봄보다 먼저 온 선(善)이다. 매화는 선 위에 찍힌 흰 점이다. 겨울 위에 밥풀떼기처럼 일어난다. 괜찮다는, 다정한 전언이다. 비장했던 글씨만이 건넬 수 있는 아버지 같은 진심이다.


매화는 벚꽃의 키 낮은 예고가 아니다. 꽃이 풍성해 가지를 뒤덮은 벚꽃과 달리 매화는 가지와 함께 뻗는다. 벚꽃은 부피로 부풀어 오른다면, 매화는 선과 점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가지도 꽃이다. 설중매는 눈(目)에 눈(雪)이 포개진 계절의 극치다. 가지가 눈맞춤을 지탱한다. 눈이 녹으면 겨울은 봄의 여백이고, 봄은 겨울의 여백이다. 눈과 눈 사이, 아직 부피를 가지지 않아도 되는 여백이 부푼다.


평면은 그림에 담기 좋다. 그림은 표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속내를 드러내는 언어다. 수묵화는 사진이 우겨 넣는 입체를 농담(濃淡)으로 무마하며 매화의 의미를 현시한다. 매화는 가지가 더 예쁜 꽃이다. 먹의 농담은 가지의 실감을 반영한다. 가지는 옅고, 진하며, 선이되 곧지 않다. 꽃은 윤곽으로 단순화된다. 사진에서는 가지에 초점을 맞추면 꽃이 윤곽을 잃고, 꽃에 초점을 맞추면 가지는 배경으로 전락한다. 매화는 가지와 꽃의 한 몸이다. 먹이 이끄는 여백, 봄이다. 묵향의 시간이 여백을 채운다.


매화는 가까이에서 봐야 더 예쁘다. 멀리서는 겨울 가지에 찍힌 작은 소란 같지만, 가까이서는 향이다. 매화는 코로 읽는 꽃이다. 처음에는 얼음 위에 떨어진 꿀처럼 차가운 단내가 돈다. 더 가까이 가면 살구나 복숭아 같은 과일 향이 오른다. 바투 다가서면 맑은 나무 냄새가 꽃 냄새와 한 호흡에 섞인다. 다층의 냄새를 매화로 조향하기까지는 조금 기다려야 한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시간 속에 머문다. 내 숨을 따라 대기가 번지고 맴돈다. 다시 들이쉴 때, 매화다. 매화는 나무가 꽃이다. 매화의 이야기는 느리고 고요하다. 다가갈수록 짙어지는 것은 향이 아니라 시간이다. 입에 침이 고이며 백 일 뒤에 익을 매실을 마중한다.


매화는 도시를 닮지 않아 도시에서 추방되었다. 그 자체로 도시의 반증이다. 서로 살고 있는 시간 축이 다르다. 도시에는 사람이 머물 시간이 없다. 도시는 빠르다. 직선을 좋아한다. 매화의 낮은 키는 가로수로서의 효용이 없다. 도시는 꽃에 가지가 섞여든 색깔의 비효율도 참지 못한다. 멀리서 단번에 보이지 않으면 무능한 꽃이다. 향기도 보이지 않으면 소용없다. 매화는 도시에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도시에는 여백이 없다. 사람이 머물지 않는 시간 속에서 매화는 마음껏 느리다. 매화에서는 오래된 수묵화의 향이 난다.


수묵화 속 매화는 ‘너’였다. 선비들은 매화와 일대일로 관계했다. 네 곁에서 조용히 머무르며 그림에 향기를 담았다. 현대의 매화는 ‘그것’조차 되지 못한 ‘그것들’이다. 매화 축제는 매화의 부패다. 그러나 부패야말로 생존 방식이다. 매화는 더 이상 한 그루로 존재하지 않는 예쁜 전언이다. 봄 직전, 사람과 매화는 군중 단위로 접합한다. 매화를 우르르 피우게 모아 놓고, 우르르 몰려 간다. 군중 현상에 매화의 시간과 향기는 중요하지 않다. 매화의 그루 수가 구경 거리의 질을 결정한다. 매화도 풍경의 빅데이터다. 다다익선이다. 매화는 사진 속으로 사멸한다. 시끄럽다.


아마 사람들도 여백이 없어, 어떻게든 여백을 충전하느라 급했을 것이다. 굳이 시간을 내어 까만 아스팔트를 따라 굽이굽이, 일직선으로 매화였을 테니. 풀려가는 하늘을 올려다 보는 나의 농담(濃談)이다.


길 가다가 뜬금없이 서 있는 매화를 보면 반갑다. 언제 마주해도 매화는 봄을 위한 여백이다. 눈맞춤은 매화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이다. 처지가 어찌 되었든 아버지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괜찮다. 밥풀떼기 떼 먹는 심정으로 매화향을 맡는다.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수묵화를 떠올리면 매화향이 난다. 빠름으로 멈춰 있던 시간이 시작된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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