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갔더니 환기창 너머에, 설국이었다. 눈 예보는 알았지만 이 정도로 쌓일 줄은 몰랐다. 느티무가 크리스마스 트리로 변할 정도면 심상치 않았다. 경산에서의 눈은 높은 확률의 싸라기였다. 쌓인들, 얕은 발자국이나 남길 수준이었다. 길게 오줌을 누며 희뿌연 하늘을 바라봤다. 집에 일찍 들어오길 잘했고, 내일 출근길이 귀찮아질 테니, 젠장 맞을 날씨였다. 2월 24일의 눈은 겨울눈인지 봄눈인지를 가늠했다. 나이 탓인가, 오줌 끝이 개운치 않았다.
방으로 돌아와 창을 열었다. 흰 공기가 훅 끼쳐 들어왔다. 세상이 하얘지는 것도 모른 채 방구석에서 ‘개학’을 쓰고 있었다니, 나는 세상에서 잠시 생략되어 있었던 듯했다. 흰 바탕에 찍어 나간 검은 글자는 생각의 발자국이었다. 이 발자국을 추적해봐야 무명의 글쓴이에 도달할 뿐이었다. 내 나이는 무명의 넝마고, 발자국은 나이를 꿰맨 자국이다. 내 흔적을 지우듯 숨을 들이켰다. 찼다. 데운 공기를 내뱉고 다시 들이켜, 찼다. 가슴속에 눈이 찼다. 눈은 모든 자국을 덮는다. 내 자국만 예외다. 나는 눈 위에 또 생각을 새겨 나간다. 나는 내 생각을 취소하는 눈을 싫어해야 했다.
싫어하기에는 2월 24일의 눈은 많았다. 세상은 흑백 논리로 단순했다. 눈은 모든 색을 덮었고, 눈이 아닌 곳은 검었다. 흑백의 명도 차이만으로 눈은 새하얗게 빛나는 설득력을 발휘했다. 생각의 속도보다 흰빛이 압도적이었다. 자존심 상하지만 중얼거리고 말았다. 설국은 예뻤다.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마트에 갈 이유도 생각나지 않았다. 창을 닫았다. 겨울눈인가, 봄눈인가. 개학전 방구석 난장(亂場)이 혼자 조용했다. 인스타 속에는 이미 각자의 설국이 시끄러웠다. 주어가 구분되지 않는 세속들을 냉소하며 추사의 ‘세한도’를 생각했다.
눈이 싫은 게 아니다. 얼음이 싫은 거다. 폐지 줍는 노인, 배달 노동자, 산동네의 난감함, 산발할 교통사고가 집약된 사회적 비용을 본다. 눈은 동사(凍死)를 가리는 형용사다. 걷자니 미끄럽고, 눈사람이라도 만들자니 손 시렵고, 얼마 안가 더러워질 것이다. ‘그런데’ 나가고 싶었다. 내가 가장 멀리하는 접속사가, 그날은 지나치게 가까웠다. 그래서 아이와 개를 생각했다. 눈 올 때 날뛰는 것은 생존이 보장된 생명의 반응이었다. 어린 날의 나도 눈을 막무가내로 좋아했다. 눈이 더 귀한 부산에서 눈사람과 눈싸움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었다. 생명의 작용을 추사하듯 내 세한도에는 컵라면을 들이기로 했다.
눈 오는 날의 컵라면은 뜬금 없지만, 태어나 보니 내가 나이듯, 그냥 했다. 끓는 물을 텀블러에 담고, 컵라면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눈 위에 앉아야 하므로 초록색 쓰레기 봉투도 하나 챙겼다. 보편적이지 않은 것들, 합리적이지 않은 것들은 대체로 낭만이다. 우주에서 생은 보편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으므로, 이날의 나는 낭만의 물리 작용이었다. 어떤 일을 하든 ‘왜냐하면 눈이 오기 때문이다’를 갖다 붙이면 낭만의 논리가 완성된다. ‘의미’는, 애초에 빈약했는지도 모른다.
건물 밖을 나가보니 폭설이었다. 자동차 바퀴 자국이 만들어 놓은 길은 흙빛으로 엉망이어도 바닥을 드러내지 못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길 위 눈은 7cm가 넘을 듯했다. 심리적으로는 5년치 적설량이었다. 눈길이 만드는 진부한 사실을 몸으로 돌파했다. 걸을 때마다 바닥이 푹푹 파였다. 뽀드득뽀드득 밟히는 질감도, 펑펑 쏟아진 눈도, 응결되어 그저 하얘진 고요도, 사실 개처럼 좋았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할 따름이었다. 몇 걸음 걷지 않아 크록스에 눈이 스몄다. 걸을수록 발바닥 아치 아래 얼음이 압착되어도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눈이 오기 때문이었다.
인근 언덕으로 갔다. 내 앞을 걷던 대머리 노인도 같은 방향이었다. 노인은 언덕에서 천천히 사위를 둘러 봤다. 그 나이가 되어도 눈 오는 풍경이 특별한 사건일 수 있다니, 내가 지나치게 많은 나이를 살다 온 기분이었다. 노인을 앞질러 언덕 안쪽으로 들어갔다. 내 발자국을 남기기 민망해 누가 밟은 자리를 따라 밟았다. 언덕 중앙 소나무 인근에는 베트남어들이 왁자지껄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연인들은 눈 위에 몸을 던지며 서로 사진을 찍어줬다. 나는 내 무릎보다 조금 큰 눈사람 앞에 멈춰 섰다. 혼밥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쓰레기 봉투를 깔고 그 위에 컵라면을 올렸다. 눈밭의 초록은 어울리지 않아 컵라면이 더 도드라졌다. 눈사람에게 바치는 기형적 젯상 같았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을 못 본 척했다. 물을 붓고 기다리는 동안 전국에서 하나뿐일 제물을 사진에 담았다. 내 뒤에는 히잡을 쓴 젊은 엄마가 대여섯 살 남자 아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지나가겠거니 했지만, 내 주위를 맴도는 낌새였다. 젊은 엄마도 눈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서 자리를 옮겼다. 엄마는 아이를 눈사람 앞에 세우고 사진을 연신 찍었다. 나보다 어린 엄마는 아이와 함께 기록되고 싶었을 텐데, 그때는 두 사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나설 여유가 없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몇 걸음 물러나 사람 발자국 없는 곳에 비닐을 깔고 주저앉았다. 역시 혼밥이었다. 나는 다시 세한도를 생각했다. 소나무 언덕에서 그림체가 다른 사내가 컵라면을 먹는 그림을 하이데거가 어떻게 해석할지를 따지다가, 또, 또, 생각하는 것이냐 하며, 면발을 입 안에 밀어 넣었다. 그러나 역시, 맛은 맥락으로 완성된다며, 몇 년 전에 썼던 문장을 소환하고 말았다. 얼굴과 손에서 눈송이가 녹았고 발은 젖으며 시렸다. 국물을 버릴 데가 없어 다 마셨다. 그 자리에 더 뭉개고 싶었지만 시린 엉덩이를 참기 힘들었다. 엉덩이가 파인 자리를 보며 묵념하듯 내 체온을 생각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개학’을 마무리했다. 글끝이 개운했다.
다음날 아침, 어제는 사라져 있었다. 아스팔트는 제설작업을 했나 싶었지만, 인도도 거짓말처럼 말끔했다. 과잉 행정과 과잉 계절 사이가 오락가락했다. 하룻밤을 경계로 드러난 사실들의 풍경은 앙상했다. 집 앞 느티나무와 언덕 위 소나무도 빛이 벗겨져 크리스마스를 잃었다. 색깔들이 제자리를 찾아서 세상은 조금 더 칙칙해졌다. 그 풍경 속으로 걸어가, 출근이었다. 여기저기 세워졌던 눈사람들은 간신히 몸통만 남아 있었다. 사라졌을 내 발자국과 엉덩이 자국을 생각했다. 오늘이 겨울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졌고, 길이 얼지 않고 질척거려 어제의 눈은 봄눈이었다. 봄눈은 겨울 끝에 매달린 짧은 여음이다. 사라지기 위해 내린다.
하루종일 실내에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봄을 인정해야만 했다. 낮 최고 기온 10도 안팎, 노지에 남은 어제도 완전히 증발되어 있었다. 눈사람 잔해인지, 눈을 치워 놓은 것인지 모를 흰 덩이만 흙먼지가 섞여 쓰레기처럼 길가에 치워져 있었다. 주인 없는 무덤 앞에 멈춰 서서 내 엉덩이 자국을 추념했다. 마음 속으로, 어제 못 본 척한 절을 했다. 왠지 눈사람과 함께 컵라면을 나눠 먹은 기분이 들었다. 삶은 죽음의 여음 속에 봄눈처럼 왔다 간다. 나는 무명이 아니라 생명이다. 집으로 돌아와 유튜브를 보며 늦은 저녁을 먹었다. 생명 현상은 충분히 정당하다. 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