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봄이 짧다. 시작이 늦다. 콘크리트로 매장된 부동산은 땅속이 없어, 어린 봄이 숨어 있을 데가 없다. 볕은 멀고 칼바람은 가깝다. 바람이 휘몰아치면 볕에 온기가 돌아도 부동산은 봄을 모른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임’이어서 봄일 테지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볼 줄 모르는 시력으로 읽는 봄은 얇다. 춥고, 춥다가, 화단과 공원에 꽃이 보이면 ‘즉시’ 봄이다. 도시의 봄은 가벼워진 전기세와 가스비로 정산된다. 인간은 장미가 어떻게 피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장미만 여왕으로 옹립한다. 흙이 없는 봄은 얕다.
봄은 땅 속에서 바쁘다. 바람을 피해 볕을 먹는다. 한 줌, 한 줌, 버릴 볕이 없다. 볕이 닿는 모든 흙 속에 봄이 살찌는 중이다. 봄살은 물의 일이다. 동결과 해빙이 반복되며 흙 입자 사이가 벌어진다. 미세혈관처럼 물길이 트인다. 밤이 시려도 낮이 길어지며 물이 기어이 돈다. 물이 움직이며 멈춰 있던 것들을 깨운다. 물을 타고 공기도 스며 땅 속의 숨통도 트인다. 흙이 호흡하는 일이야말로 봄의 시작이다.
물은 먼저 가장 작은 것들을 깨운다. 흙 속에는 겨울 동안 숨죽이고 있던 미생물들이 있다. 미생물은 미(未)생물을 생물로 만드는 보이지 않는 미학자다. 물이 돌면 효소가 다시 작동한다. 낙엽과 죽은 뿌리가 천천히 풀리며 흙으로 돌아간다. 유기물이 쪼개지고, 묻혀 있던 양분이 풀려나 흙은 다시 살아 있는 봄의 조직이 된다. 태어남은 이제 조직의 생리학이다. 미생물의 보이지 않는 손은 태어남에 가격을 매기지 않는다. 태어남은 본래 강제나 의무가 아니다. 그저 그러함이다.
뿌리에 물이 닿으면 뿌리는 겨울잠을 깬다. 뿌리 끝의 생장점이 먼저 움직인다. 멈춰 있던 세포 분열이 다시 시작되고, 뿌리털이 늘어나며 물과 무기염류를 끌어들인다. 성급하지 않다. 먼저 깊이 내려가고, 그 다음에야 옆으로 뻗는다. 겨우내 서로 멀뚱히 바라보던 뿌리들이 악수한다. 뒤엉킬지언정 서로를 막지 않는다. 비좁으면 다시 깊이를 키우면 된다. 깊이만큼 높이가 준비된다. 깊이는 물을 찾는 여정이고, 높이는 해와 공기를 찾는 여정이다. 깊이와 높이의 교집합으로 초록이 태동할 것이다.
씨앗은 조금 더 늦게 출발한다. 먼저 물에 젖어 몸을 불린다. 마른 껍질이 서서히 팽창하고, 굳어 있던 조직이 풀리며, 씨앗의 안쪽은 시끄러워진다. 저장해 두었던 전분이 당으로 바뀌고, 잠자던 효소가 깨어나면 배근이 준비된다. 배아는 아래를 더듬는다. 중력에 반응하며 물이 스민 쪽으로 세포가 길어진다. 껍질이 갈라지는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하지만 툭, 순간이 그어진다. 뿌리는 시각화된 중력이다. 중력의 깊이로 지구를 길어 올려 씨앗은 스스로를 해체한다. 싹이 준비된다.
식물의 시간 옆에 동물의 시간도 흐른다. 지렁이는 겨울 동안 바닥의 바닥으로 내려가 있다가 다시 위로 기어오른다. 지렁이 피부와 흙은 습기의 한몸이다. 촉촉해질수록 지렁이의 숨통이 트이고, 지렁이를 따라 흙의 숨길도 열린다. 뿌리 끝들은 흙이 쉬워진다. 자라도 된다, 아직 지상에서 통하지 않은 허락이 지렁이 꽁무니를 따라 이어진다. 낙엽 아래 숨어 있던 작은 절지동물들도 기지개를 켠다. 대사를 늦추고 버티던 몸이 온도에 반응해 다시 속도를 낸다. 알은 아직 조용하지만, 그 안에서도 시간이 녹고 있다. 누적된 낮과 축적된 열이 임계점을 넘으면 껍질은 스스로 갈라진다. 천지사방으로 흩어질 방향이 준비된다. 서로 다른 리듬들이 묵음으로 어우러진다.
나는 땅속의 일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 자전거를 타고 인근 농가를 가로지를 때, 봄은 냄새로 왔다. 농촌은 봄이 길다. 시작이 이르다. 아직 겨울인지 봄인지 애매할 때, 농촌은 봄을 연다.
봄은 스스로 오는 듯 보이지만, 겨울 동안 굳어 있던 밭은 스스로 풀리지 않는다. 표면은 마르고 단단해져 있다. 경운은 파괴가 아니라 계절의 호흡을 고르는 일이다. 겨우내 바람뿐인 밭에 트랙터가 시끄럽다. 응축된 계절이 펴지는 기운이어서 거슬릴 수 없다. 문명이 만든 거대 지렁이는 순식간에 계절을 뒤집는다. 아래 있던 흙이 위로 나오고, 위에 있던 낙엽과 잔뿌리가 아래로 묻힌다. 흙덩이가 갈라지며 묵은 공기가 빠져나온다. 젖은 흙이 햇볕을 처음 받는 얼굴처럼 김을 올린다. 나는 내가 페달을 굴려 만든 바람만큼 봄에 가까워진다.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비 온 뒤 같은 냄새가 난다. 해가 닿은 흙이 내는 봄의 첫 문장이다. 눈을 감으면 ‘햇비’가 하늘에서, 땅에서, 분다.
장미의 서사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묵묵한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그래서 해가 좋은 날 어쩌다, 버려진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주워 든다. 보도블록 틈, 아스팔트와 인도 사이의 흙먼지 무덤 위를 살짝 긁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