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창고

지구방위대의 우울

by 하루오

서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아래에서부터 무너져 내렸다. 주유소가 있던 자리 곳곳에서 폭음이 터지며 불기둥이 치솟았고, 지면이 흙먼지로 뒤덮였다. 인류 최후의 날이었다.


후폭풍이 금암산까지 불었다. 흙먼지에 벚꽃이 섞였다. 공기는 탁하되 달달했다. 봉태는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폭발음이 잦아들자 사이다를 한 모금 마시고 트림을 길게 뱉었다. 빈 화선지에 가로로 한 획을 그어지듯 입꼬리에 정갈하고 고요한 기운이 맺혔다. 비로소 지구의 정의가 실현되었다. 역대 최강의 지구방위대 레드맨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지구를 구했다. 죽어라, 인류여.




지구를 지키는 일은 시시했다. 우주 괴물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 특히나 봉태는 크리스털 에너지와 99.47% 동조(지구방위대들 평균 동조율은 88.85%)했기에 전투는 나물 뜯는 일만큼 싱거웠다.


사실상 지구방위대의 일은 의문과 싸우는 것이었다. 한국군만으로도 충분한 일을 왜 굳이 지구방위대가 나서야 하는지, 왜 괴물은 한 기씩만 침투하는지, 왜 우주 괴물 무리의 본부를 찾아 선제공격하지 않는지, 연봉은 누구 주는 것이며 어떻게 책정되는지, 전투 중 파괴된 시설물은 누가 복구하는지가 궁금했지만 물어볼 데가 없었다. 지령은 각자의 지구방위 애플리케이션으로 일방적으로 전달될 뿐이었다.


딱 한 번, 지구방위와 무관한 일로 관계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번화가 지구대에서였다. 봉태의 취미는 번화가 카페 창가에 앉아 라떼 한 잔 마시는 것이었다. 한 시간 정도 멍하게 앉아 있다가 번화가를 두 시간 정도 거닐다가 귀가했다. 아무도 몰라주지만, 자기 덕분에 지켜진 평화 속에 묻혀 있으면 시시한 일에 의미가 충전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건물 사이 후미진 곳에서 교복을 입은 채 담배를 피우는 남학생 넷을 훈계했다. 학생들은 다짜고짜 욕지거리를 하며 주먹을 휘둘렀고, 봉태는 가볍게 한쪽 손목들만 부러뜨렸다. 하필 그때 순찰중인 경찰에 걸려 도망쳤다. 처음에는 지구방위대가 지구대 경찰에게 좇기는 상황이 우스웠지만, ‘도망’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고 보니 한심해졌다.


경찰을 따돌렸다고 생각하고 핫도그를 사 먹다가 붙잡혔다. 학생들의 부모들은 어떻게 사람을 그 지경으로 만들 수 있느냐며 바락바락 악을 썼다. 저 따위 인류를 위해서 지금까지 목숨 걸고 시시함을 버티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구한 목숨들이니 다 죽여 버릴까 하다가 묵비권을 행사했다. 욱하는 마음을 거듭 쓰다듬었다. 부모들의 악다구니가 봉태의 인내 임계점을 돌파하기 직전, 검은 양복을 차려 입은 사내 둘이 나타났다. 봉태의 변호사라며 봉태를 돌려보내고 봉태 대신 합의했다. 둘 중 리더인 듯한 키 작은 사내가 봉태에게 귓속말로 ‘나대지 말고 본부로 돌아가.’라고 명령조로 말했다. 그것이 관계자와의 유일한 만남이었다.


한 시간 만에 지구방위 어플리케이션으로 공지가 왔다. 합의금으로 두 달치 월급이 털렸다는 것과 지구방위대 품위 위반으로 6개월 간 월급 50%가 감봉된다고 했다. 봉태는 대체 왜,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우주 괴물 대공습이 시작되었다. 1년에 한 달쯤 있는 연례 행사였다. 괴물들은 시도 때도 없이 기습해 왔다. 대원들은 수면 시간이 부족했다. 2개조로 나누어 대응했기에 전투 난이도가 조금 상승하긴 했지만 봉태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 다른 대원들은 피로 누적, 혹은 방심으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봉태는 괴물들에게 화풀이했다. 죽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난도질을 해, 괴물 수거반이 치를 떨 정도였다.


“사, 살려주세요!”


괴물이 말을 했다. 봉태는 괴물이 말을 하는 것에 놀랐고, 지성을 가진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괴물은 자신이 전투원이 아니라 연구원이라고 했다. 휴가 중 호기심에 지구에 와 본 것일 뿐, 아무 짓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싶었지만, 괴물의 다음 말이 봉태의 마음을 움직였다.


“봉태님은 온 우주에 악명이 자자하십니다.”

“내가?”

“모르셨나요? 대적할 상대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 쪽에서도 지구를 구해야 하는데, 봉태 님이 계셔서 곤혹스럽습니다.”

“지구를 구한다고? 너네가? 누구로부터?”

“그야 당연히 인간이지요.”




번화가에 변한 건 없었다. 봉태는 예전보다 웃질 않았다. 더 건장해진 체격이 무표정에 위압감을 더했다. 전투를 반복할수록 무표정이 두꺼워졌다. 작년에 뭐 했느냐고 물으나 어제 뭐 했느냐고 물으나 대답은 같았다. 감흥 없는 승리를 언제까지 지속해야 하는지 답답했다. 익숙함에 익사 중인 것 같았다. 메마른 익사에 체념했다. 카페에 앉아 있어도, 평화 속을 거닐어도 의미가 충전되지 않았다.


대체 내가 왜 저들을 지켜야 할까, 봉태는 생각을 성냥개비처럼 톡톡 부러뜨렸다. 뒷골목 기생충이 그렇듯, 사람과 괴물은 다르지 않았다. 봉태 자신과 상관없는 것들이, 불편함으로 상관해왔다. 여자들의 날카로운 웃음소리를 목 조르고 싶었다. 마음의 재떨이에 부러진 성냥이 넘쳤다. 불꽃이 튀면 테이블을 태우고 세상으로 번질 것 같았다. 차라리 살려달라던 장미라는 괴물(괴물도 이름이 있음에 놀랐다)의 소식이 궁금했다.


봉태는 남은 라떼를 한 모금에 다 털어 마셨다.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카페를 나갔다. 봉태가 앉아 있던 테이블 위의 컵 옆에 크리스탈 와치가 남겨져 있었다.




불바다가 된 서울의 열기가 금암산까지 전해졌다. 얼굴이 후끈해 나와 봉태의 얼굴은 뻘겋게 익어가고 있었다.


“이게 웃을 일이야?”

내가 물었다. 봉태는 아수라장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대답했다.

“홀가분해서.”

“죽을지도 모르는데?”

“야~ 호오오오오오!”


봉태의 메아리는 서울의 불바다에 묻혔다. 수도방위군과 우주방위대의 전투 소리가 조금 격한 재즈 같았다. 봉태는 발끝을 까딱댔다. 우리는 남은 사이다를 나눠 마시며 불타는 서울을 감상했다.

“사이다로 바꾸길 잘했네.”


이틀 후, 인류는 핵공격을 승인했다. 결사항전으로 비장함을 가장했지만, 승산 없이 지구를 파괴하는 비열한 결정이었다. 우주방위대는 지구에 침투한 병력의 절반을 잃었다. 지구는 심해와 극지 일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생명체가 죽었다.


봉태는 긴장이 풀렸는지 우주선을 타자마자 잠들었다. 푹 자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내일부터는 지구 재생 작업에 나와 함께 참여할 것이다. 공기를 정화하고, 방사능을 제거하려면 몇 년 걸리겠지만 함께라면 즐거운 작업이 될 것이다. 우리 아이는 다시 아름다워진 지구에서 마음껏 뛰놀았으면 좋겠다. - b612에서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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