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

by 하루오

1. No : 못 올라갈 나무 쳐다도 보지 마라


88만원 세대를 기억하는가? 이들은 N포 세대의 시조이자 제대로 된 청년을 살아본 적 없이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 정부는 청년을 위한 지원책을 강구하지만 88만원 세대는 이미 중년에 들어서버렸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 낙오자들도 소싯적에는 다들 나무 열 번쯤은 찍어 봤다.


88만원 세대는 한국전쟁 이후에 부모보다 잘 살 가능이 희박한 첫 세대였다. 부모 세대보다 월등한 스펙을 가지고서도 사회 구조 때문에 누군가는 낙오되어야만 했다. 월등한 스펙에 맞는 나무를 찍어댔지만, 괜찮은 나무는 제한적이었다. 누구나 나무를 열 번 찍어야 했지만 나무는 결국 도끼질에 재능 있는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당락은 1점 때문에 갈리지만, 인생은 50점, 80점 간극으로 벌어진다.


모든 성취는 유전자 수준에서 70~80%가 결정된다. 서울대 집안, 의사 집안이 생기는 이유는 단순히 막대한 사교육비를 투자할 재력 때문만은 아니다. 이종범, 허재의 아들과 이동국의 딸이 스포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콩 심은 데 콩 나는 유전학이다. 노력은 왼손처럼 거들 뿐이다.


노력은 ‘노오오오오오력’이 되었지만 분배되는 몫은 점점 적어진다. 그렇다고 노력하지 않으면 반드시 최악의 몫을 분배 받으므로 인생은 노력의 외통수에 걸려들었다. 노력하는 동안 우리는 이상 자아와 현실 자아의 간극 사이에 매몰된다. 수험생과 취준생들이 갇혀 있는 정서적 시궁창이 자존감의 보편 재료가 되어간다. 노력할수록 자신의 무능만 증명할 뿐이다.


나무를 열 번 찍어도 나무가 안 넘어간다면, 내 무능을 돌아봐야 한다. 한 우물만 파는 우직함이 만들어 내는 것은 우물이 되지 못한 자기 무덤이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매달리다가는 스토커가 되고, 재능 없는 꿈을 놓지 못하면 청춘이 박살난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어 20, 30대를 허비하다가 88만원 세대의 선두에 서버렸다. 높이 나는 꿈을 꿔도 되는 것은 갈매기이지 사자나 고래는 아니다. 나는 꿈을 포기하는 데 너무 오래 걸렸고, ‘꿈은 이루어진다.’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단단히 찍혔다.



2. Yes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국민의 평균은 수능 백분위대로라면 5등급이라고들 한다. 그 말을 듣고 보면 국민은 개돼지라는 조롱을 납득 못할 것도 없다. 아마 남자들은 군대에서 5등급의 의미를 체감했을 것이다. 우리의 정치수준은 5등급 인간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니, 이만하면 한국 정치는 나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속한 입시판에서는 5등급은 불가촉 숫자다. 입시 논술에서는 수학 능력 시험 최저 기준을 맞춰야 하는데, 논술을 치는 대학에 지원하려면 최소한 언수외탐(탐구는 두 과목) 네 과목 중에서 최소 3등급 두 개는 있어야 하기에 4등급을 가진 학생이 하위권을 형성한다. 미안하지만, 수능에서도 5등급은 공부에 관심 없이 부모 등골 빨아 먹는 학생코스프레 시작 구간이다. 5등급 이하는 수능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았어야 했다.


지원이는 학생코스프레라고 단정하기엔 억울했다. 고2 9월 모의평가 기준 54656을 기록했지만 미친 노력가였다. 노력의 결과가 54656이었으니 공부에 소질이 없는 것이기도 했다. 노력도 보상이 될 때 지속하는 힘이 났을 텐데, 지원이는 성적에서 특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도 의대 준비생처럼 공부를 지속했다.


지원이가 내게로 왔을 때는 고3 3월이었다. 고2 때부터 논술 준비를 하다가 그쪽 학원에서 일단 최저부터 맞추라고 강권해서 그만두었다고 했다. 지원이를 가르치면서 그쪽 학원에서 왜 최저부터 맞추라고 했는지 알았다. 지원이는 참담했다. 제시문 중심 내용조차 찾지 못했다. 최저는 핑계일 뿐, 학원 입장에서 지원이는 쳐내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지원이는 1+1이 왜 2인지를 묻는 수준의 질문으로 다른 학생들의 첨삭 대기시간을 늘렸다. 나도 최저부터 맞추라며 우회적으로 쳐내고 싶었지만, 이미 다른 학원에서도 그렇게 쳐내졌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내가 잘 가르쳤다기보다는 지원이가 열심히 했다. 매번 제시문을 문장 단위로 뜯어가며 노트에 다시 적더니(보통 5시간 넘게 걸린다고 했다) 제시문 간 핵심어의 연관까지도 파악했다. 그러나 수능에서 53554가 나왔다. 6논술에 4개가 최저에서 걸러지고, 최저 없는 대학 2군데 논술 시험을 쳤지만 모두 떨어졌다.


지원이는 재수했다. 일단 수능 점수를 올리고 다시 논술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6월 모의평가에서 42633이 떴다고 기뻐하며 7월에 돌아왔다. 9월 모의평가에서는 53532가 떴지만 실전에서는 더 잘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수능에서는 53533이 떴다. 작년 지원 대학 기준으로는 논술이라도 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6월의 기억에 맞춰 상향 지원한 탓에 최저 없는 대학 하나만 시험을 볼 수 있었다.


논술은 평균 수준이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작년 그맘때에서 정체되어 있었다.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였지만, 거기가 재능의 한계였던 것이다. 그런데 합격했다. 하필 그 대학은 그해부터 최저를 없앤 곳이었다. 지원이는 전화 속에서 미쳐 날뛰었다. - 쌤! 제가 10수를 해도 거긴 못 가죠!


나는 여전히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칠전팔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1만 시간의 법칙도 성공한 사람들의 자기 과시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그러나 지원이를 통해 나무를 열 번 찍는 동안 한 번의 운이 있을 수는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운은 무식하도록 노력하는 사람에게 깃드는 것이다. 그때 나무는 쓰러진다.


그래서 나도 5등급도 안 되는 작가 지망생 주제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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