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반찬이다

by 하루오

1. Yes : 결핍 결핍의 시대


‘씨발’은 기본 의미와 별개로 인간의 모든 감정을 담아낸다. 일반적으로 화나는 상황에서 쓰이지만, 기쁘거나 슬플 때도 두루 쓰인다. 그래서 ‘씨발’의 의미를 사전적으로 규정하기 힘들다. 상황을 모르는 한 ‘씨발’의 의미는 열려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모든 어휘의 숙명이다. 의미는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으로 완성되는 복합체인 것이다.


맛도 상황이 결정한다. 당구장의 짜장면, 비 오는 날의 부침개, 한겨울의 라면, 운동 직후의 탄산음료, 군대 화장실에서 몰래 먹는 초코파이는 각각의 영역에서 미슐랭에 등재된다. 미슐랭을 결정하는 궁극적 요인은 허기다. 압도적인 허기는 압도적인 맛을 보장한다.


허기의 의미론은 만고불변이다. 선조는 임진왜란 피난길에 먹은 ‘묵’이 맛있어 은어(銀魚)라는 이름까지 하사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환궁해서 은어를 다시 먹어 봤지만 기억하는 그 맛이 아니었다. 실망하여 ‘도로 묵이라고 불러라’고 하여 그 물고기의 이름은 도루묵이 되었다.


이제는 배부른 시대다. 대부분 임금처럼 먹는 것은 아니지만, 임금처럼 허기와 무관한 일상을 살아간다. 먹을 건 많다. 오죽하면 가난할수록 살이 찐다. 식(食)의 목표는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맛의 향유로 바뀌었다. ‘맛집’ 탐방이 문화가 되었다. 블로그에 맛집 탐방기가 전시되었고, 셰프들이 TV를 점령했고, 맛집 음식은 SNS로 인증되었다. 급기야 맛집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는 것까지도 코스 요리의 애피타이저처럼 여겨졌다.


맛을 향한 집착은 커지는데 정작 최고의 맛집은 한산하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며 극강의 가성비를 자랑하고, 도루묵을 은어로 바꾸는 마성의 MSG, 허기.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허기를 통해 맛을 규정하려 하지 않는다. 배부른 손님의 미각을 사로잡아야 하니 맛의 숙제는 고달프다. 손님은 손님대로 고운 맛에 익숙해지며 더 아름다운 맛을 갈망한다. 갈망이 충족된 순간 덩치가 더 커진 새로운 갈망이 생겨난다. 갈망이 충족될수록 결핍이 증축된다.


우리는 아귀(餓鬼)에 수렴해 왔다. 아귀들은 허기에서 더 멀리 달아나 과식을 선택했다. 아귀처럼 먹을 수 없어서 먹방이 범람했다. 사람들은 먹방을 AV처럼 소비했다. 과식이 지겨워지면 간간히 괴식(怪食)을 먹기도 했다. ‘맛’의 갈증이 채워질 리 없다. 한 끼만 굶어도 다음 끼니에 800원짜리 라면으로도 맛집을 연출할 수 있지만 라면은 800원짜리 맛이므로 기각된다.


비단 음식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풍요는 결핍의 결핍을 낳았다. 우리는 외로움도 결핍되었다. 인터넷만 열면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졌기에 외로울 틈이 없었다. 사람은 드라마 속에 그득했다. 넷플릭스 드라마를 먹방처럼 몰아봤다. 엔딩의 여음처럼 외로움이 퍼질 때, 즉시 다른 드라마를 먹어대면 외로움은 지워졌다. 사람이 필요 없는 시대는 산업뿐만 아니라 개인 일상에서도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연애조차 번거로워 하는 청춘들이 늘어났다. 경제적인 요인이 큰 이유겠지만, 외로움을 마비시켜줄 대체제들이 많아 연애가 간절하지 않은 것도 한몫할 것이다.


나는 사람 결핍을 혼자 생활 11년 만에 알아챘다. 인터넷 가십과 드라마를 탐식하는 동안 내 결핍을 인지할 능력이 마비되어 있었다. 지난 11년, 나는 기억할 만한 서사가 없었다. 내 시간을 채운 것이라고는 몇 번을 돌려본 [무한도전], [왕좌의 게임], [어벤저스]를 비롯한 타인들의 조작된 서사였다. 나는 허기진 적 없어 몸이 비만해졌고, 외로운 적 없어 인생이 왜소해졌다.


다시 말하지만 의미를 완성하는 것은 상황이다. 내가 선택한 상황은 사람이었나, 돈이었다. 혹은 꿈이었나. 내 잃어버린 결핍이 내 인생을 조금 더 맛없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



2. No : 빈곤의 반찬


가난한 사람들도 시장이 반찬일까. 식사의 순간은 맛을 즐기겠지만 생명 유지의 안도감을 반찬으로 비유하는 것은 잔인하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시장을 반찬 삼을 수 있는 권력을 쓰지 않아서 멍청했고,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에서 우월감을 느끼고 있어서 비열했다. 나는 허기가 허기일 뿐인 의미론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keyword
이전 05화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