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낭만 오리

[미운 오리 새끼] 패러디

by 하루오

체리는 하늘 위 떠 있는 멋진 달이 되고 싶었다. 다른 오리들은 체리를 미쳤다고 했다. 자기 이름을 스스로 체리라고 부르는 것부터 오리답지 않은 짓이었다. 모든 오리들은 성이 오리였다. 그래서 이름도 오리조, 오리유, 오리진, 이런 식으로 지었다. 체리도 원래 이름이 있었지만, 누구도 원래 이름으로 체리를 부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체리라 부르지도 않았다. 오리들에게 체리는 그냥 미친놈이었다.


체리는 오리들의 생활사에 관심이 없었다. 물 위를 유유히 헤엄칠 때의 여유로움, 머리를 물속에 처박았다가 밖으로 들어 올릴 때의 상쾌함, 날갯짓을 하며 수면을 차고 달릴 때의 벅참, 재빠른 송사리를 한 입에 잡았을 때의 성취감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리가 오리할 때 느낄 수 있는 행복과 체리는 일부러 거리를 두는 것 같을 정도였다. 어떨 때는 오리의 감정이 결여된 사이코패스처럼 보이기도 해서 새끼가 있는 어미들은 체리를 더 경계했다.


체리가 특별히 잰 체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오리들이 오리처럼 살 듯, 체리는 체리처럼 살았다. 조용히 풀을 뜯거나 크고 작은 벌레를 먹으며 혼자 지냈다. 요즘은 체리가 제철이라 바닥에 떨어진 체리를 주워 먹었다. 체리가 자기 이름을 체리로 지은 것도 체리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오리들은 체리가 셔서 거들떠보지 않았다.


체리는 낮에는 덥다며 잘 움직이지 않다가 밤만 되면 높이 나는 연습을 해댔다. 날다보면, 날아올라 하늘 위 떠 있는 멋진 달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오리 중에서 체리만큼 높이 날 수 있는 오리는 없었다. 체리가 날 때, 하얀 배 때문에 땅에서 보면 별이 춤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체리의 행태는 오리로서의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한 오리들의 눈 밖에 나기 좋았다. 이들은 착하고 성실한 오리였지만, 그 착하고 성실함 때문에 착하고 성실함 밖에 있는 체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오리로서의 기쁨을 가르쳐주고 싶은 열정이 강했다. 이들은 체리를 물가로 끌고 가 헤엄치기와 잠수를 강요했다. 체리는 마지못해 따라했지만 이내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 좀 내버려 두면 안 돼?”

본성은 착했던 오리들이라 더 이상 체리를 괴롭히지 않았다. 포기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 일 이후로 체리는 오리들에게 미친놈도 아니라 오리의 탈을 쓴 무엇, ‘그것’이 되어버렸다.


모든 오리들이 체리를 정말로 내버려 두었다. 아무도 아는 체하지 않았다. 그전에도 깊은 관계를 맺고 지내지 않아도 몇몇 오리들과는 가벼운 인사나 스몰토크 정도는 주고받았었다. 체리는 오리 무리 속에 있을수록 자신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리를 떠났다.



왜 오리로 태어났다고 해서 오리로만 살려고 할까? 똑같은 오리지만 다른 오리여야 했다. 오직 오리 필터로 본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알까? 체리 필터의 세상은 달랐다. 체리는 더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봤다. 오리들은 그 세상을 모른다. 사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오리 필터 속에서 저급하게 꽥꽥 거리며 오리에 만족하는 그들이 한심해 보였다.


체리는 한참을 날았다. 오리들은 닿을 수 없을 만큼, 힘이 닿는 데까지 멀리 갔다. 그곳에는 호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넓은 물이 펼쳐졌다. 바다였다. 체리는 바닷바람에 몸을 맡겼다. 날개만 펼치고 있어도 몸이 떠오르는 듯했다. 끝도 보이지도 않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몸이 한 없이 떠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체리를 먼저 발견한 것은 체리보다 높이 날던 갈매기였다. 갈매기는 체리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지켜봤다. 처음 보는 새였지만 어리다는 것은 알아보았다. 이 정도 높이 날기에는 뚱뚱한 몸으로 꽤 높이 오른 데다가 바람을 탈 줄 아는 것이 귀여웠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너, 날 줄 아는 놈이구나.”


갈매기의 말에 체리는 깜짝 놀랐다. 누가 먼저 걸어준 말에 호의가 담긴 것이 오랜만이었다. 더군다나 자기보다 더 높이 나는 새는 독수리를 제외하면 처음 봤다. 체격은 체리와 비슷한데 훨씬 편안하게 날고 있는 모습이 경외롭기도 했다.


갈매기의 이름은 조단이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를 남긴 위대한 갈매기 조나단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옛날에는 조나단을 무시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나단의 업적을 높이 사는 젊은 갈매기가 늘어나, 그를 추종하는 무리까지 생겨났다. 조단은 그 무리 중에서도 골수에 해당해 조나단의 높이를 잇는 3대천왕으로 불리고 있었다.


체리는 조나단의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신과 같은 곳을 바라보던 새가 있었고, 자신과 같은 삶을 사는 새가 있었다. 비록 모습은 다르지만 조단과 피가 통하는 기분이 들었다. 조단은 조단대로 놀랐다. 조단이야 태어날 때부터 조나단을 추종하는 무리와 가까이에서 지낸 탓에 3대천왕으로까지 불리게 되었지만, 체리는 높이 나는 새의 불모지에서 진정으로 조나단의 길을 걸어왔다. 두 새는 금세 의기투합해서 체리가 조단 무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모두가 함께 날았고, 나는 이야기를 했다. 그것이야말로 동족과 함께 하는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날아올라 저 하늘 달이 되고 싶다는 체리의 이야기를 모두 진지하게 들어주고 응원해줬다. 체리는 벅차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고, 친구들(무려 친구들!)은 체리를 말없이 머리를 맞대 주었다.


체리는 이 무리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입에 맞지 않는 해초를 먹어가며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는 애처로운 끈기가 갈매기들을 자극한 것이다. 더군다나 높이 날기에는 통통한 몸과 짧은 날개로 평범한 갈매기보다 높이 날아올랐다. 체리는 갈매기들의 가르침 덕분에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했고, 살도 빠져 몸도 미끈해졌다. 갈매기들도 체리에게 부끄럽지 않는 새가 되고 싶어 필사적이었다.


그 한 달 간은 체리 인생에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인생에게 가장 우울한 날들이 시작되고 말았다. 오리 무리에서 이탈할 때보다 더 힘들었다.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오리의 몸으로는 갈매기의 높이와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갈매기와 오리는 태생적으로 골밀도와 근육의 결이 달랐다. 다른 갈매기들에게는 웃어 보였지만 이미 온 몸의 근육이 찢어질 듯했다. 날개 뼈에 미세한 실금이 갔을 지도 몰랐다. 날다가 통증 때문에 정신을 잃은 적도 있었다. 친구들에게는 활강처럼 보였지만, 기절한 채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체리의 한계선을 갈매기들은 가볍게 오르내렸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한없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달이 더 멀어져 버린 느낌에 가슴이 뻥 비는 듯했다.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차올랐지만, 다르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체리는 갈매기 무리 속에 있을수록 자신이 없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사라지고, 사라지다 보니 오리만 남았다. 밤 연습이 끝난 새벽, 체리는 무리를 떠났다.



다시 오리 무리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이상향에서 낙오하고 보니 달리 살 수 있는 방법이 막연했다. 체리에서 체리를 빼고 나면 역시 오리만 남는 것이다. 떠날 때는 가벼웠던 날갯짓이 돌아갈 때는 무거웠다. 살이 빠진 것은 갈매기처럼 날씬해진 것이 아니라 영양실조 상태의 오리를 의미할 뿐이었고, 찢어진 날개근육은 회복이 더뎠다.


자주 쉬었다. 나무 위보다는 수면에 앉아서 쉬는 것이 편안했다. 물 위에 떠 있을 때 눈을 감으면 높은 하늘에서 바람을 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보통의 오리들에게 물 위가 하늘이었다는 사실이 미묘하게 우울했다. 한편으로는 오리 무리로 돌아가면 그들과 함께 헤엄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도 들었다. 그 희망은 쓸쓸했지만, 일단 희망은 희망이었다.


좀 더 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수면이 편안해 이 냇가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짜지 않은 수초와 다슬기로 오랜만에 포식했다. 수면에 보름달이 떴다. 물결 따라 잔잔하게 부서지긴 했지만, 체리가 꿈꾸던 달이었다. 달 표면은 무르고 부드러웠다. 체리는 달빛을 부수며 한참을 헤엄쳤다.


“오, 멋진 춤인 걸.”

물가에서 체리를 지켜보던 고양이가 말했다. 체리는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자기답지 않은 모습을 들켰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고양이는 눈치가 빨랐다.

“뭘 부끄러워 해? 슬픈 도시를 비추는, 춤추는 작은 별빛 같았는걸.”


체리는 자존감이 낮아졌던 터라 평소보다 조금 더 경계했다. 고양이는 낯선 동물이었다. 아니, 하늘을 날거나 풀숲에서 자는 일밖에 안 했으니, 고양이가 아니라 토끼나 사슴을 봤어도 거리를 뒀을 것이다.


고양이는 체리의 경계를 풀기 위해 과장되게 웃어가며 자기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고양이는 도시에서 살았다. 인간 몰래 생선 가게를 털고 다니다 보니 눈치가 빨라지고 다른 동물의 심리를 잃는 것에 능했다. 고양이는 바다로 가는 중이었다. 뒷골목에서 생선 가게나 털다가 우는 일도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그러자 생선들을 직접 잡아보고 싶어졌다고 했다.


“거미로 줄을 쳐서 물고기 잡는 게 내 꿈 아니겠냐. 으하하하.”

“나 사실 바다에서 오는 길이야.”


체리는 고양이의 천진난만함이 좋았다. 자신이 떠나온 바다로 누군가 꿈을 찾아 간다는 사실도 좋았다. 자신은 높이 날지 못했지만 고양이가 물고기를 잡는 것은 불가능 한 일도 아닐 것 같았다. 체리는 바다를 설명해줬다. 비록 갈매기들보다 더 높이 날지 못했지만 그 어떤 오리도 닿지 못한 곳까지 날아본 것은 사실이었다. 그 높이에서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는 바다를 본 적 없는 고양이에게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었지만 눈을 반짝이는 고양이를 보면 설명을 멈출 수 없었다.


체리가 갈매기로 태어난다면 바다의 끝까지 날아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고양이가 체리의 목을 물었다. 자기 이야기에 취해 체리가 고양이와의 거리가 좁혀진 것을 몰랐던 것이다. 보통의 오리였다면 잠영을 하거나 물 위를 달려 도망쳤겠지만, 체리는 물 위가 익숙하지 않았다. 점점 숨이 막혀 왔다. 온몸을 흔들며 저항했지만 고양이는 태연했다. 침착하게 체리를 땅으로 끌고 와 목울대에 더 세게 물어뜯었다.


체리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고양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체리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완전히 깜깜해지면 생이 끝날 것을 예감했다. 이것은 오리의 끝인가, 체리의 끝인가. 이런 죽음이라면 차라리 바다 위에서 죽는 것이 나을 뻔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멀리서 풍경 하나가 다가왔다. 오리 새끼들이 장어 대가리를 물고 양쪽으로 끌어당기는 장면이었다. 체리는 어이가 없었다. 왜 지금 그 장어 대가리가 먹고 싶은데,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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