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를 좇는 길

by 하루오

꿈을 좇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꿈을 포기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다. 서른일곱 살, 이제는 공무원 시험을 포기할 때도 되었다. 무능을 증명하고 인정하는 데 11년이 걸렸으면 게으른 셈이다.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의 기억을 적립한 친구들과 달리 나는 기억이랄 것도 없었다. 고시원과 독서실 사이는 텅 비어 있었다. 대신 자기혐오와 죄책감이 그득했다. 열심히 인생을 소모했구나, 하면서도 끝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운동은 핑계였다. 자전거를 탔다. 대구 안심교에서 금호강변으로 뻗은 자전거 도로를 따라 하양교를 지나 영천교까지 다녀오는 50km 코스였다. 아침 10시에 집을 나서 영천교 옆 중국집에서 짬뽕 한 그릇 먹고 오면 3시 조금 넘었다. 그 시간 동안은 머리를 비울 수 있었다.


자전거는 페달을 굴린 만큼 앞으로 나아갔다. 평일 그 시간에는 사람도 거의 없어 브레이크를 예비하지 않은 채 전속력을 낼 수 있었다. 노력만큼 속력이 보상되는 시시한 정직함이 든든했다. 허벅지가 당기는 만큼 시원하고 개운했다.


하양 부근이었다. 오전부터 햇볕이 내리 꽂혀 아스팔트길이 익어가고 있었다. 소실점 조금 앞에서 개나 고양이만 한 검은 물체 하나가 다가왔다. 좀 둔해 보인다 싶었는데, 다 큰 고양이만 한 거북이였다. 금호강 주변은 상류로 갈수록 수풀이 꽤 넉넉해 뱀, 꿩, 황조롱이, 고라니를 심심찮게 봤지만 거북이는 처음이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왔다. 가까이에서 본 거북이는 모래로 빗은 형상처럼 표면이 메말라 있었다.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었다.


작년에 만난 그 거북이. 지금 어디까지 갔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봐, 학생.”

중년 남성의 중저음이었다.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이봐, 학생.”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스마트 폰 화면 속 거북이가 눈을 끔벅거리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네? 네.”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굳이 존대까지 해야 했나 싶은 건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일 뿐, 당시에는 이상하지 않았다. 거북이가 말을 하는 상황 자체에 압도되어 있었다.

“혹시 물 좀 줄 수 있겠나?”


배낭에서 2리터 들이 생수통을 꺼냈다. 2/3가량 채워져 있었는데, 피로 푸는 데 좋다고 해서 매실액을 타 다녔다. 거북이가 마시게 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한 쪽 손바닥을 오무려 물을 따라서 거북이 입에 갖다 댔다. 거북이는 입 주변도 등딱지처럼 갈라져 있었다. 물을 씹어 뜯듯이 마셨다. 흘리는 게 반이었다. 거북이의 치악력이 사람 손가락도 자를 수 있다는 것을 어디에서 본 것 같아 바싹 긴장했다. 물통의 물이 1/3쯤 남았을 때 거북이는 입을 떼며 트림을 길게 뱉었다.


“물맛이 왜 이런가?”

“매실액을 타서…….”

“등에도 좀 부어주겠나? 뜨거워 죽겠구먼.”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거북이는 그러든가 말든가 어린왕자처럼 자기 말만 했다.

“저쪽에서 오는 길이라면 토끼를 보았는가?”

나는 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토끼를 본 적도 없거니와 있다손 치더라도 버려진 고양이나 개에게 잡아 먹혔을 것이다.

“하아…… 빌어먹을 놈, 대체 어디까지 달려간 게야.”

거북이가 먼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혼잣말을 흘렸다.

“왜 그러시죠?”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거북이는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망할 놈, 시합이 끝나질 않잖아! 젠장. 아, 자네에게 화낸 게 아니니 오해 말게. 물은 고마웠네. 그럼 바빠서 이만.”


거북이는 단호하고 또박또박하게 말하고는 발을 놀렸다. 눈으로 비켜 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 앞을 터줬다. 발이 허우적대다가 우연히 걸린 지면을 짚어 내는 것처럼 서투른 모양새로 조금씩 전진했다. 나는 인사를 붙이는 대신 오른쪽으로 조금만 틀면 강물이 시원할 텐데 왜 저러나 생각했다.


페달을 서너 번 밟다가 뒤돌아봤다. 거북이는 물을 흘린 자리에서 몇 발작 이동했을 뿐이다. 자전거 도로의 소실점은 끝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없었다. 햇볕이 아무 것도 없는 것조차 태워버릴 기세로 타올랐고 거북이는 그쪽을 향해 기약 없이 걸을 것이다.


나는 거북이에게서 일직선으로 멀어져 갔다. 이쪽의 소실점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페달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