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공주] 패러디
엄지 왕자가 돌아왔다. 가출 반 년 만이었다. 본래 내 것이었기에 반갑기도 했지만 다시 번거로워질 것을 생각하니 귀찮았다. 이미 앉아서 소변보는 방식과 팬티 안의 여유에 익숙해졌다. 수영장이나 대중목욕탕을 갈 수 없었지만 본래도 썩 좋아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도 예의상 반가운 척했다.
녀석이 엄지 왕자인 이유는 19년 전, 마지막 여자 친구가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 성기를 보고 엄지만 하다고 놀렸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도 나도 쭉 그렇게 불렀다. 혹시라도 오해할까봐 부언하자면 일종의 반어법이었다. 그리고 엄지 왕자가 명명된 날은 한파주의보가 떨어졌었다. 정말이다. 그녀는 내 뭐가 좋으냐고 물었을 때 항상 ‘엄지 왕자지!’라고 대답했었다.
1년 전 어느 날 아침, 녀석이 사라져 버렸다. 45년 동안 함께한 녀석의 가출은 당황스럽고 난감했다. 전날 밤에도 두부집 효녀와 보름 만에 회포를 풀었기에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녀석이 뇌에 남긴 메시지를 확인하고 보니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 이러려고 태어났나, 자괴감 들어.
녀석은 장기도 아닌 주제에 뇌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10대 때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벌떡대서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흔을 앞두고 보니 녀석의 고집도 예전 같지 않고 좀 물러졌다. 그래도 녀석이 마음만 먹으면 뇌는 녀석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녀석의 가출 요지는 오줌만 눌 것 같으면 자신의 존재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18년 넘게 제기능을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이니 자아의 신화를 찾아 떠나는 산티아고의 심정으로 나를 떠난다고 했다.
돌아온 탕아는 뻔뻔했다. 미안하다거나 그동안 어찌 지냈느냐는 인사도 없이 제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그러고는 역시 집 떠나면 고생이라며 흰소리를 하다가 밤새 1년간의 무용담을 지껄였다. 팬티로 싸맨 다음 추리닝으로 덮고 이불로 녀석을 묻어버렸지만 녀석은 뇌에 직접 이야기를 새겼기 때문에 나는 밤새 시답잖은 수다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은 어젯밤에 들은 녀석의 무용담을 간추린 이야기이다. 지금 녀석은 축 늘어져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녀석의 가출 결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여자 친구가 없을 때도 한창 때는 주5회 이상 녀석을 위로하곤 했다. 버스 안 소소한 진동에도 녀석이 잔뜩 성을 낼 만큼 분노조절장애를 겪던 때였다. 그러나 삼십대 중반 이후로는 욕구 자체가 희박해졌다. 위로의 시간이 주1회가 안 될 때도 있었고, 최근에는 전립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건강 체조 개념으로 녀석을 위로했다. 녀석은 점점 외로워졌고,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녀석은 나를 떠났지만, 팬티 밖 세상과 대면한 경험이 적어 어찌할 줄 몰랐다. 기껏해야 노상방뇨 할 때 잠깐씩 본 벽면이나 전봇대가 녀석이 아는 세상의 전부였다. 녀석은 가장 친숙한 변기를 통해 하수처리장까지 갔다. 악취가 심하긴 했지만 팬티 안에서 맡던 것과 같은 계열의 냄새여서 역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도 익숙했다. 온몸을 감싸는 질감이 썩 나쁘지도 않았다. 아니, 뜨뜻미지근한 무언가에 쌓여 있는 상태가 은근히 좋았다.
하수처리장을 빠져 나왔을 때는 새벽이었다. 시원한 바람을 쐬고 보니 몸을 좀 씻고 싶어져 주위를 배회하다가 인근 저수지까지 갔다. 거긴 내 산책 코스이기도 했다. 집에서 도보로 왕복 한 시간 반 정도 거리니 그리 먼 곳도 아니었다. 여름에는 연꽃이 저수지 절반을 뒤덮었지만 교통이 불편해 찾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곳에서 몸을 씻는 동안 녀석은 잔뜩 부풀어 올랐다. 새벽에 커지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역시 맑은 공기를 쐬니까 다르다며 흡족해 있는데 두꺼비가 녀석을 덥석 껴안았다. 단단해진 몸에 도취되어 있다가 두꺼비의 접근을 몰랐던 것이다.
“이 녀석, 우리 사위 삼으면 되겠구먼. 우리 막둥이 시집만 보내면 내가 한이 없지, 암.”
두꺼비는 녀석을 입에 물고 저수지 한가운데로 헤엄쳐 갔다. 녀석은 몸부림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인간의 뇌까지 지배한 몸이 두꺼비에게 장가가야 하다니! 차라리 팬티 안에서 썩어 문드러지는 게 나았다. 두꺼비는 녀석이 도망치지 못하게 연잎 위에 올려다 놓았다.
“잠깐만 기다려라. 네 신붓감 데려오마. 허허허.”
그러고는 사라졌다. 놀라고, 찬물에 샤워까지 했으면 다시 오그라들어야 할 텐데, 두꺼비 독 때문인지 부풀어 오른 해면체는 도통 풀리지 않았다. 그러자 점점 음양합일은 자연의 이치니 이를 따르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두꺼비와의 신방을 상상하면 역겨우면서도 스톡홀롬증후군처럼 어차피 살과 살이 맞댈 일은 똑같은 거 아니냐며 설득력을 더해갔다. 마음의 양가성 사이에서 쥐어짜듯 훌쩍이고 있는데 붕어가 말을 걸어 왔다.
“너도 두꺼비 영감이 데려왔지?”
“응. 근데, 너도라니?”
“그만하면 병이지. 자기 딸 혼자 늙어 죽을 것 같으니까 눈에 보이는 건 닥치는 대로 데려와 시집보내려고 하거든. 그런데 두꺼비 아가씨는 시집갈 생각이 없거든. 노처녀라서 이제는 자기도 포기한 듯해. 그래서 그냥 다 잡아먹어버리지. 내 친구도 그렇게 먹혔어.”
“난 어쩌지?”
“난 두꺼비가 싫으니까.”
붕어가 다른 말은 듣지도 않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녀석이 물속을 보니 붕어가 연잎 줄기를 갉아먹고 있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줄기는 금방 끊겼다. 연잎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붕어가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
“어제까지 비가 많이 와서 수문을 개방 중이야. 그래서 서쪽으로 움직일 텐데, 너무 걱정하지는 마. 중간에 갈대숲이 있으니까 거기서 땅으로 내려가면 돼.”
붕어는 녀석이 고맙다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물속으로 사라졌다.
붕어 말대로 연잎은 서쪽으로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했다. 두꺼비가 따라 올 것 같아 걱정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저수지는 잠잠했다. 수문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긴장이 풀리자 녀석은 급격히 오그라들었다.
졸음이 몰려와서 잠시 눈을 감았을 뿐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하늘을 날고 있었다. 풍뎅이가 집어 간 것이었다.
“으악!”
“으악!”
녀석의 비명에 풍뎅이도 덩달아 비명을 질렀다. 자칫 녀석을 떨어트릴 뻔했다. 풍뎅이의 날갯짓 소리 때문에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말하는 똥이네.”
“내가?”
“아냐?”
“아니지.”
“그럼 뭐야?”
“그러게.”
“그러게라니?”
“그러게가 그러게지.”
“말하는 이상한 똥이네. 그럼 쓸모없겠군.”
풍뎅이는 나는 중에 녀석을 놓고 저 혼자 날아 가버렸다. 녀석에게는 고공이었지만 기껏해야 2-3미터 높이였다. 녀석은 비명을 끝맺기도 전에 바닥에 떨어졌다. 풀잎에 떨어져 생각보다 충격은 없었다.
충격은 마음에 남았다. ‘쓸모없다’가 아로새겨졌다. 팬티 속에서도 늘 품고 있던 의문이었다. 자신의 존재 가치는 배뇨가 아니라 생식에 있었다. 이름조차 생식기였다. 그것은 암수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핵심 성분이었다. 쓸모를 찾아 가출했더니 노처녀 두꺼비의 먹이가 될 뻔했고, 풍뎅이는 똥이 아니라는 이유로 녀석을 버렸다. 녀석은 똥보다 못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똥은 꽤 쓸모 있었다. 똥은 자연 순환의 한 축으로서 누군가의 먹이이자 대지의 영양분이 되었다. 그러나 녀석은 자연 순환은커녕 종의 연속성을 절단내버렸다. 어쩌면 풍뎅이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녀석은 전에 없이 시들해졌다. 몸이 한겨울처럼 오그라들었다.
가을밤은 추웠다. 기분만이 아니라 실제로 녀석은 더 이상 오그라들 수 없을 만큼 오그라들었다. 녀석이 야생의 바람을 이토록 오래 맞아본 적은 없었다. 그루터기에서 바람을 피했다. 근처에서 이삭을 줍던 들쥐 할머니가 녀석을 발견했다.
“이렇게 귀여운 건 처음 보는구나.”
들쥐 할머니는 녀석을 자기 땅굴로 데려가 따뜻한 차를 내눴다. 녀석이 어떻게 차를 마실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녀석은 그날 마신 차가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있었다고 했다. 들쥐 할머니는 녀석을 손주처럼 보살피고자 했고, 녀석은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는 기분이 좋아서 그곳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팬티 속도 어둡기는 매한가지여서 땅속은 고향처럼 편안했다.
그런데 사실 들쥐 할머니는 지하 세계의 유명한 포주였다. 오그라든 녀석을 살 찌워 비싼 값에 팔아넘길 생각이었다. 녀석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제비 덕분이었다. 남쪽으로 가다가 날개를 다쳐 이곳에 처박혀 버렸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목숨은 생각보다 질겨 아직 죽지 않았을 뿐이었다. 다만 오랫동안 누워만 있다 보니 개미들이 날라주는 소식으로 지하세계 일을 잘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녀석은 들쥐 할머니 몰래 제비를 간호했다. 들쥐 할머니의 곳간은 넉넉해서 제비 한 마리가 먹을 식량이 없어져도 표시 나지 않았다. 제비로부터 민감한 정보를 얻는 것도 필요했지만 무엇보다도 쓸모가 생겼다는 것이 기분 좋았다.
며칠 후 녀석은 이웃 두더지에게 지명 당했다. 표면적으로는 이웃끼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가진 티타임이었지만 사실은 상품 소개 시간이었던 것이다. 녀석은 제비로부터 더 자세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두더지는 유명한 변태였다. 눈에 보이는 게 없어서 암수도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여름/가을에 너무 힘을 뺀 탓에 지병이 도져 지금은 요양 중이라고 했다. 겨우내 체력을 회복하고 나면 봄에는 녀석이 팔려 나갈 게 확실했다.
두더지의 지명 덕분에 녀석은 다른 손님에게 팔려가지 않고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녀석은 모든 것을 모른 척하고 손자 노릇에 충실했다. 녀석이 손자인 동안 들쥐는 자상한 할머니가 되어줬다. 녀석은 어쩌면 팔려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야. 곧 팔려가. 두더지는 요즘 팔굽혀 펴기를 100개씩이나 한 대.”
“하지만 나는 그때보다 더 작아졌는걸?”
커지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이었을 것이다. 녀석은 엄지가 아니라 중지만큼 가늘어졌다. 하도 작아지기만 해도 의도적으로 몸을 키워보려고 했지만 몸은 다시 부풀어 오르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밥을 더 먹고 운동까지 해도 소용없었다.
“그렇다고 바뀌지 않아. 두더지는 변태라니까. 한 번 찍은 건 안 놓치는 욕심쟁이라고. 이젠 네가 어떻든 상관없어진 거야.”
탈출하는 수밖에 없었다.
땅속은 땅밖보다 일찍 봄을 맞았다. 작은 온기 하나와 빗방울 하나에도 씨앗들이 난리법석을 피우며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제법 시끌시끌했다. 한 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흥분으로 땅 전체가 설렘으로 부풀었다. 더군다나 들쥐 할머니는 부모 잃은 들쥐들을 거두어서 새로운 투자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녀석과 건강을 회복한 제비는 지렁이(두더지를 싫어했다)의 도움으로 무른 땅을 골라 쉽게 땅 위로 탈출했다.
녀석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두더지의 노리개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다음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제비가 주위를 한 바퀴 날고 돌아오는 동안 생각해봐도 녀석은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난 잘 모르겠는데. 넌 가고 싶은 대로 가.”
“봄 따라 움직이는 게 제비고, 지금은 봄이니 나는 여기서 살면 돼. 그리고 우리 제비는 조상 대대로 부러진 다리를 고쳐준 은혜도 잊지 않고 갚아 왔어. 하물며 너는 다 죽어가던 나를 살려줬잖아.”
녀석은 한참을 생각했다. 제비와 지내는 것도 괜찮았지만 민폐였다. 제비도 제 짝을 찾을 것이고 이번 겨울에는 꼭 남쪽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제비가 이룰 식구들 사이에 끼어 있기는 면구스러웠다. 그때 실바람에서 왠지 박하향이 나는 것 같았다. 담배를 피우고 녀석을 만진 적 없는데, 녀석은 그 냄새를 기억했나 보았다. 나는 멘솔류를 주로 피웠다.
“나 다시 돌아갈래.”
녀석은 한 달을 헤맸다고 했다. 팬티 안에만 틀어 박혀 있었기에 이 시기의 소리를 더듬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녀석은 어쩌면 나보다 똑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나를 잊지 않고 찾아와 준 게 고맙기도 했다.
나는 녀석에게 녀석의 가출 이유를 제거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알다시피 나는 연애시장에서 유통기한이 지났고, 돈으로 여자를 살 생각도 없었다. 녀석은 괜찮다고 했다. 그냥 있을 곳에 마땅히 있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으니 죽을 때까지 오줌만 뿌려도 상관없다고 했다. 나는 녀석의 귀환 기념으로 서서 오줌을 잔뜩 싸줬다. 변기물이 허벅지까지 튀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녀석의 여독이 풀리는 대로 두부집 효녀와 회포를 풀 것이다. 아니, 우리가 싱싱하던 그 시절, 우리의 푸른 하늘이었던 소라 누나를 만나는 게 더 의미가 있으려나. 혹시라도 녀석이 두더지의 PTSD를 극복하지 못하고 기운을 내지 못한다면…… 굉장히 섭섭해지고 우울해지는 것을 보니 나는 녀석을 바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좋든 싫든, 우리는 하나다.
확실히 녀석은 나보다 더 일찍 늙어버렸다. 젊은 날, 왜 우리는 더 뜨겁지 못 했나 아쉬움이 남는다. 내 엄지 왕자의 시절로, 나 다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