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질 것……. 죽은 겐가.
밤새 냉기에 벼려진 시취 한 가닥이 노인의 코를 찌른다. 쪽방촌의 겨울이 시작된 것이다. 노인은 코를 킁킁대다가 냄새의 반대편 하늘로 고개를 돌린다. 새침하게 흐린 폼이 눈이 올 듯하더니, 새벽하늘이 말겠다. 오늘이야말로 동소문 안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에게 오랜만에 닥친 운수 좋은 날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죽은 날, 노인은 운이 좋았다.
노인은 오줌을 눈 것처럼 몸이 부르르 떨린다. 다 눴다고 생각했는데 질금 흘러나와 속옷을 적시는 오줌 같은 한숨이 노인에게서 새나온다. 시취와 구취가 노인의 코끝에서 뒤섞인다. 산 것의 냄새와 죽은 것의 냄새는 서로를 치열하게 무마하듯 무취에 수렴해간다. 혹은 너무 익숙해진 체취다. 시취를 풍기는 문 앞에 놓인 소주병 두 개를 집어 든다. 200원이면 출발이 좋다.
운수 좋은 날일수록 조심해야 한단다. 그 다음에는 꼭 액운이 낄 테니까. 무자비한 이자까지 얹어서. - 여남은 살이었던 노인은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비오는 날이면 설렁탕에 소주를 마시며 ‘오라질 년…….’을 물안개처럼 피우던 할아버지의 풍경이 인이 박혔기 때문에 인생은 아침이 올 거라고 믿으며 끝없이 걷는 영원하고 스산한 새벽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노인은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전쟁으로 부모를 모두 잃었을 때도 할아버지와 보릿고개를 꾸역꾸역 넘길 때도 난장이가 공이라도 쏘아 올리는 간절함으로 버텼다. 아등바등 원미동까지 내쫓겼을 때도 공장 야근을 밥 먹듯 하며 자식새끼 밥을 먹였다. 여행, 사치를 모르고 꾸역꾸역 살아내 겨우 단칸방 하나 마련했다. 이제 숨 좀 쉬며 사나 싶자 IMF가 터졌다. 자식들은 학자금, 사업자금, 궁색한 이유를 매단 빚으로 노인의 집과 노후를 갉아 먹더니 감감 무소식이 되었다. 누구나 인터넷을 하는 시대에 6.25를 기억하는 중늙은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닥치는 대로 살았을 뿐인데 어느덧 폐지가 인생의 마침표가 되어 있었다. 3년 전과 3일 전이 구분되지 않듯이 3일 후와 3년 후는 이미 폐지뿐일 오래된 미래다. 리어카에 실린 폐지에서 방, 전기, 물, 라면, 연탄, 약이 나온다. 노인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여기’는 폐지로 된 폐지(廢地)이다.
노인은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깐다. 바닥을 보는 한, 사람들이 노인에게서 시선을 회수하면서도 아무 일도 없는 척 시치미 떼는 모습을 목격하지 않아도 된다. 각자의 무표정이 잠시 던지는 거리감은 사소하지만, 사소한 것들은 끊임없이 닥쳐와 노인에게 무덤처럼 쌓인다. 그렇게 노인을 봉인하고 나면,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배지 않을 노인의 풍경을 안심한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노인은 자신이 함부로 싸질러진 똥이라도 된 기분이다. 숙인 고개를 들지 않는다. 바닥에는 10원짜리든, 100원짜리든 동전이라도 떨어져 있다.
도로에 바람이 불지 않는다. 8차선 도로가 양쪽으로 장벽처럼 막힌 탓이다. 정체의 앞뒤가 보이지 않는다. 몇 년째 이 동네 폐지를 주워오지만 오늘 같은 정체는 처음이다.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차는 1분에 서너 걸음도 움직이지 못한다.
노인은 차를 앞지를 때마다 마음의 온도가 0.1도씩 높아지는 기분이다. 그동안은 길 위의 모든 것이 노인을 앞질러 갔다. 차가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추더라도 노인이 앞지른 몇 걸음은 십여 초 이내에 무마되었다. 그들이 어딘가로 가고 있으므로 노인은 그 어딘가에서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노인도 그들처럼 어디론가 제대로 가고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폐지 외에 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반가운 감정도 반갑다.
우측 설렁탕집을 지난다. 늘 이 구간이 고역이었다. 숨을 참는데도 침이 고인다. 2kg는 됨직한 쇠파이프 다섯 개와 폐전선 한 꾸러미까지 주웠으니 설렁탕을 먹어도 괜찮을지도 몰랐다. 혹시라도 정체를 따라 가다가 구역 침범으로 시비가 붙어 이것들을 빼앗기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진다. 설렁탕집에서 멀어지고 나서야 숨을 몰아쉰다.
노인은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편다. 펴봐야 수직을 맞추지 못한 채 수평의 저쪽으로 쓰러질 듯 기울어져 있다. 정체의 끝을 바라본다. 왜 이런 정체가 발생한 것인지, 저기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밥이 되고 약이 되는 것도 아닌 괜한 호기라는 것을 알지만, 이상한 마음이다. 무모한 마음을 충동질한다. 몇 년 만인지, 몇 십 년 만인지, 자꾸 마음이 정체의 끝으로 직진한다. 노인은 허리가 뻐근해지도록 몸을 곧추세운다.
저기, 할아버지.
그것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라는 것을 노인은 모른다. 길거리에서 누군가에게 호명되는 일은 노인에게 드문 일이다. 중년 여성의 목소리에는 적의가 없다.
할아버지.
노인은 긴장을 풀며 슬며시 뒤를 돌아본다. 올림머리를 한 중년 여성이 목장갑을 벗으며 영어 학원에서 나온다.
저희 것 좀 가져가실래요?
학원 문 앞에는 노끈으로 묶인 책이 여섯 묶음이 쌓여 있다. 1,500원이 어림 잡힌다. 박스를 뜯어 평평하게 쌓아 올리는 수고도 덜 수 있고, 책은 부피도 작기 때문에 그 위에 다른 짐을 더 실을 수도 있다. 노인은 주변을 둘러본다. 저 앞에 학원들이 몇 개씩 잇대 있다. 폐지 줍는 코스를 이쪽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한다.
잠깐만요. 안에 이 만큼 더 있는데 내다 드릴 게요.
여자는 노인의 대답을 다 듣지 않고 안으로 들어간다. 노인은 짐을 정리하여 빈 공간을 마련한다. 학원은 폐업하는지 안쪽에 치워진 짐들로 어수선하다. 남편으로 보이는 사내가 양 손에 책 더미를 들고 나온다. 노인이 받아들려고 하자 사내는 됐다며 손을 빼 직접 리어카에 싣는다. 사내가 들어가고 젊은 여자가 또 그만큼을 들고 나온다. 노인은 학원 사람들이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 무게 중심이 뒤로 쏠려 리어카가 기울지경이다. 튼튼한 박스로 리어카의 뒤를 막고, 고무줄로 감는다. 이제는 더 실을 데가 없다.
노인은 리어카 손잡이를 허리 높이로 내리 누른다. 노인의 체중이 겨우 리어카의 수평을 버틴다. 출발할 때 허리가 찌릿하지만, 관성이 생기자 끌 만해진다. 노인은 길을 반대편으로 꺾는다. 일단 고물상으로 가서 지금까지 모은 것을 처분하기로 한다. 뒤에 실린 묵직함이 어깨와 무릎으로 퍼졌다가 허리로 일제히 감겨든다. 신음을 삼킨다. 정체 따위 아무래도 좋다. 오늘 점심은 설렁탕이다.
저 앞 택시에서 강파른 젊은이가 내려 이쪽으로 걸어온다. 그가 낯익다. 그가 지나쳐 갈 때 노인은 잠시 멈춰 고개를 돌린다. 그 순간 탁! 뒤로 쏠린 무게를 견디지 못한 고무줄이 끊기며 노인의 얼굴을 쳤고, 잘 포개 놓았던 짐들이 쏟아져 내린다. 노인은 리어카에서 벗어나 얼굴을 감싼 채 주저앉는다. 노인의 흐리멍덩한 시선의 소실점 속에서 젊은이가 점점 작아진다. 노인은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 오줌을 눈 듯이 몸이 부르르 떨린다. 샅에서 물기가 번진다.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