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소녀] 패러디
삶이란 평균 29201박 29202일의 여행이다. 여행 내내 누군가는 질 수 없는 복불복 게임을 하고, 누군가는 질수밖에 없는 게임을 한다. 함께 하는 여행이 아니라 낙오되지 않기 위한 여행은 고단하다. 사실 이미 낙오된 여행이다.
얇은 시멘트벽과 슬레이트 지붕은 바람을 막을 뿐이었다. 연탄불이 꺼진 방에는 냉기가 똬리를 틀고 노파를 향해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노파는 옆으로 누워 태아처럼 몸을 말았다. 옷을 겹으로 껴입고 솜이불을 뒤집어썼지만 몸이 떨렸다. 가느다란 몸피에서 발산하는 조막만한 체온이 온 안에 고이는 속도보다 냉기가 체온을 빼먹은 속도가 빨랐다. 얼 것 같은 발만 계속 주물렀다. 오늘은 양말 한 켤레도 팔지 못했다. 라면 하나 살 수 없어, 36시간째 공복이었다.
깜깜한 방에 노트북만 환했다. 노파는 모로 누워 노트북을 봤다. 노트북은 복지사가 자기 노트북을 바꾸며 준 구형 모델로, 부팅에만 2분이 걸렸다. 복지사는 체육인 출신의 예능인이 멤버들과 여행을 다니는 예능 프로그램 파일을 잔뜩 넣어줬다. 노파는 그를 가장 좋아했다. 그의 새된 발성은 듣는 이로 하여금 기운을 북돋게 했다. 무엇보다도 웃겼다. 같은 장면을 몇 번을 봐도 웃겼다. 이런 쪽방에 살다보면 웃음은 라면만큼 귀했다.
복지사는 노트북을 팔아봐야 돈 안 되니까 노파가 좋아하는 거나 실컷 보라고 했다. 노파는 뜨끔했다. 이제는 그와 멤버들의 웃음이 없는 텅 빈 어둠을 견딜 자신이 없어졌다. tv가 있었지만, tv 속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저들끼리 즐거워서 보고 있을수록 외롭고 비참해졌다. 그러나 그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큰조카나 아들 같았다. 그가 웃으면 노인도 웃었고, 웃음 속에서 쪽방이 잊혔다.
노파는 폐지를 줍기에도 기력이 딸렸다. 근근이 힘을 쓰다가 올해 초 허리를 다친 후로는 도매상에서 양말을 떼어다 팔았다. 하루하루 지하철역을 바꿔 다녔다. 건널목 옆에 반 평 정도 되는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 양말을 늘어놓았다. 쓰레기뭉치처럼 앉아 있다 보면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한두 개씩 사줬다.
오늘은 대학교 앞에 갔다. 학생들은 잘 사주지 않았지만, 유동인구가 많다보니 다른 동네보다 수입이 괜찮은 편이었다. 다만 오늘은 2학기 기말 시험이 끝나버린 것을 몰랐다. 하나만 팔아도 연탄 한 장이나 라면이라도 샀을 텐데, 단 하나도 팔지 못했다. 오히려 돌풍으로 양말 두 켤레를 잃었다.
불운에는 익숙했다. 그러나 편의점 앞에 옹기종기 모인 학생 몇이 길고양이에게 소시지를 사 주는 모습을 보니 서러웠다. 길고양이는 귀여움을 팔아 배를 채웠다. 노파는 자신이 쭈글쭈글한 할망구가 아니라 성냥팔이 ‘소녀’라도 되었다면, 양말 한두 켤레는 팔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일부러 시선을 돌렸지만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에는 귀를 닫을 수 없어 허기와 서러움은 속수무책이었다.
해가 지기도 전에 자리를 접었다. 마음도 시렸지만, 역대급 한파에 바람까지 강해서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지하철 세 바퀴 반을 돌아 체온을 충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시끄러운 마음자리는 그와 멤버들의 웃음소리로 쓸어내렸다.
그가 봄동에 밥을 비벼 먹었다. 노파는 그의 과장된 몸짓과 표정이 좋았다. 노파가 먹지 못해도 노파가 좋아하는 그가 먹고 좋아하니 노파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침이 고였다. 봄동은 비싸지도 않았다. 세 달만 버티면 먹을 수 있는데, 그 세 달이 조급했다. 이 프로그램은 여행을 다니다 보니 먹는 일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그러려니 했는데 오늘은 참 이상했다.
노파의 큰딸도 봄동 무침에 밥 비벼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죽었다. 연탄가스 때문에 세 딸들이 모두 죽었다. 둘째와 막내는 자는 듯이 죽었고, 큰딸은 노파의 품에서 거품을 물며 껄떡대다 죽었다. 그날 저녁에는 옆집에서 나눠준 물고구마에 김치를 올려 먹었다. 동치미를 담갔더라면 큰딸은 죽지 않았을까, 두고두고 사무쳤다. 그날 이후 노파는 동치미를 먹지 않았다.
노파는 이불 속에서 한손을 뺐다. 고양이 사료가 들려 있었다. 인근 캣맘들의 급양소를 꿰고 있다가 허기를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이렇게 배를 채웠다. 이것은 남한테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았다. 먹을 만했고, 아무튼 살아야 했다. 그러나 편의점 앞에서 사람의 손을 받은 고양이와 저 봄동은 서러웠다. 봄동이 오기까지 세 달, 늘 쉬운 겨울은 아니었지만 이번 겨울은 자신이 없었다.
꼼지락대는 발가락은 땀으로 축축했다. 냉증은 양말을 껴 신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시리다 못해 아팠다. 노파는 고양이 사료를 침으로 천천히 녹이며 손을 뻗어 가방에서 겨울용 등산 양말을 꺼냈다. 원가 2,000원짜리를 자신이 신자니 연탄 네 장이 아쉬웠다. 많이 사면 10% 더 할인해주겠다는 말에 괜한 욕심을 부렸다. 노파는 잠시 망설이다가 양말 포장을 벗겼다. 한파를 버티려면 어쩔 수 없었다. 이불 속에서 몸을 움직여 양말을 신었다.
몸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발을 비빌 때의 마찰열은 간에 기별도 안 갔다. 머리가 시려 털모자도 썼다. 목도리로 입과 코도 가려 눈만 빼꼼했다. 멤버들이 복불복을 했다. 지는 팀은 점심을 굶을 판이었다. 복불복을 볼 때마다 노파는 자기 인생은 까나리 젓 같다고 생각했다. 까나리와 까나리의 까나리 한 삶이었다. 그래서 지금 몸이 으슬으슬했다.
방으로 고양이가 들어왔다. 편의점 앞에 있던 그 고양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았다. 고양이는 이불 속으로 들어오려 했다. 노파는 고양이의 온기가 고마워서 꼭 끌어안으려다가 사료부터 주었다. 고양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예쁘게 웃었다.
“엄마 나 이제 안 아파.”
큰딸이 노파의 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노파는 이제 추위도, 배고픔도, 두려움도 없었다.
“어머님, 오늘은 안 나가셨네요. 전화 좀 받지 그러셨어요.”
복지사는 노파의 신발이 있는 것을 보며 한 톤 높인 활기를 건넸다. 방문 안쪽에서는 복지사가 준 영상이 재생되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열었을 때, 노파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입가에 미소를 띠고 눈을 감은 채였다. 노파의 작은 몸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사망 17일 만이었다.
“나만 아니면 돼!”
복불복에서 면제된 그가 좋다고 환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