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고도를 기다리며)
40대 후반 나이에 취미 하나 없이 사나 했는데 '도시어부2'를 통해 낚시라는 설레는 취미를 갖게 돼 고맙다. - 예능인 이수근의 인터뷰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나는 취미가 없었다. 그러려니 무시하고 있었지만 역시, 사는 게 재미없다.
돈은 쓸 만큼 썼다. 쓰고, 써도 통장 잔고는 불어났다. 내가 왜 돈을 버는지 모르겠다며 그림 액자를 사고, 건담 프라모델을 사도 잔고는 끄떡없었다. 써 봐야 평생소원이 누룽지 수준이어서 내가 한 달에 쓰는 돈은 월세 포함 100만 원이 안 되었다. 취미만 없는 게 아니라 취향도 없어 물욕이 적었다. 술, 담배, 게임도 안 하고, 여자도 없으니 나는 치킨 먹는 스님이었다.
어렸을 때는 취미가 있었다. 초등학생 때는 우표를 모았다. 버섯 시리즈를 사려고 아침 7시 30분부터 우체국에 줄을 설 정도로 열성을 다했다. 3년쯤 모으다가 새 우표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시들해졌다. 중학생 때는 PC게임 ‘삼국지4’와 ‘대항해 시대2’에 몰입했다가 고등학생 때는 책을 읽었다. 그 이후로 내 취미를 독서라고 여겨왔다. 수집하듯 책을 사서 인터넷 서점 최상위 등급을 오래 유지하기도 했다.
김훈, 박민규, 하루키를 동시대에 접할 수 있음에 감사했지만 이제는 수집하지 않았다. 책은 쌓이면 짐이 되었다. 집이 비좁아졌고, 이사가 힘들어졌다. 도서관에서 빌려 봤다. 그나마도 수업 때문에 읽어야 할 책들을 읽었다. 혹은 시간을 때우는 방법을 독서밖에 몰라 여가를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절반의 의무감으로 읽었다. 작년에 50권 남짓 읽었으니 규모로는 취미로 손색없겠지만, 책을 펼칠 때 한 점 설렘도 없었다. 뒤늦게 안 김훈의 신간도 읽다 말았다.
규모면에서는 자전거도 취미로 볼 만하다. 봄, 가을에는 한 달에 650km 안팎을 탔다. 이 역시도 먹은 치킨을 연소하기 위한 용도이거나 책상 앞에 앉아 있지 않아도 생산적인 활동을 한다는 내적 명분으로 작동할 뿐, 설렘은 없다. 3만 원에도 팔지 못할 고물 자전거에 일반 추리닝을 입고 탔다. 추진력도 약하고 공기저항도 잘 받아 운동 효율은 좋았다.
일상은 기능만 남고 감정은 퇴락했다. 어쭙잖은 무소유 정신과 88만원 세대의 문을 연 취준생 시절의 PTSD가 콜라보 되어, 기능성 인간이 되기를 강제하는 사회 압력에 쉽게 복종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기능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이 듦이란, 좋아하는 것쯤은 얼마든지 손절할 수 있는 융통성을 일컫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것들과 멀어지는 현상은 비단 내 문제만은 아니다. 남성은 33세 이후로는 새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한다. 자물쇠 효과 때문이다. 투자비용 대비 효용 가치도 낮고, 새 것을 접하는 것 자체가 귀찮다. 나는 조금 심한 편이다. 아직도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듣고 있다. 내 스마트폰 안에 최신곡은 2014년 서태지 9집이다. 그나마도 8, 9집은 거의 듣지 않는다. 스무 살의 나는 6집을 사려고 대학 1교시 수업 마치자마자 음반 가게로 뛰어갔지만 마흔 살의 나는 서태지의 10집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대신 GD나 아이유를 잠시 들었다. 물론 가사를 외우지도 못하고 코인 노래방에서 불러본 적 없다.
부먹과 찍먹의 싸움, 민트 초코와 파인애플 피자 논란에 참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나는 이런들 어떠하지도 저런들 어떠하지도 않았다. 취향이 무난한 것이 아니라 취향을 모르는 탓이다. 맛있는 게 먹고 싶을 때 치킨을 시켰다. 치킨을 먹고 나면 치킨을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배가 불러도 맛있는 것에 대한 기갈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서 살이 쪘다. 완결된 드라마도 폭식했다. 재미있다 싶으면 밤을 새워 끝장내버렸다.
좋아했던 것에 대한 감정은 무뎌지고, 새로운 것들은 쉽게 좋아지지 않다보니, 세상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로 채워졌다. 세상과의 친밀도가 점점 떨어졌다. 세상의 태도를 무시할 배짱은 생겼지만 그래봤자 내 손해다. 내 선택지는 더 싫은 것과 덜 싫은 것으로 제한된다. 다행히 덜 싫은 것들을 선택할 수 있어 스트레스는 없지만 재미도 없어졌다. 삶이 꾸역꾸역 시간을 먹는 식사를 닮아간다. 삶의 진부화는 속도의 문제일 뿐, 다음은 당신 차례다.
좋아하는 것을 가진 사람의 힘은 ‘도시어부’의 이경규와 이덕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이경규는 촬영 시간이 길어지는 것에 질색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제작진의 사전 답사에 동행하고, PD가 촬영을 끝내자고 하면 1시간만 더 하자고 조른다. 이만하면 도시어부에 이경규가 출연하는 게 아니라 이경규가 낚시하는 데 방송국에서 촬영 온 수준이다. 한 번은 현역 야구 선수들이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촬영이 끝날 무렵, 운동선수들도 피로를 숨기지 못하는데, 예순이 넘은 이경규와 칠순을 앞둔 이덕화는 씽씽했다. 낚싯대를 잡은 이경규와 이덕화는 다음날도 활기찼다.
그들에 비하면 내가 더 노인 같다. 나는 동태눈만 끔벅대지만 이경규는 미끼를 끼울 때 아이의 눈빛을 회복한다. 그런 순진무구한 즐거움이 부럽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거대한 활력을 바라는 게 아니라 죽기 전에 먹고 싶은 떡볶이 같은 소소한 취향만이라도. 떡볶이조차 없는 일상은 고도만 기다리는 것 같다. 순무대신 치킨을 먹는다. 고도 비만이 나를 기다리는 듯하다.
에스트라공 : 이 지랄은 이제 더는 못하겠다.
블라디미르 : 다들 하는 소리지.
에스트라공 : 우리 헤어지는 게 어떨까?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블라디미르 : 내일 목이나 매자. (사이) 고도가 안 오면 말이야.
에스트라공 : 만일 온다면?
블라디미르 : 그럼 살게 되는 거지.
(중략)
블라디미르 :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 : 가자.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고도가 ‘wating me’ 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