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백종원)
슈퍼스타K 이후로 오디션 프로그램이 범람했다. 우승자는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내 옆에 앉아 있는 그 애보다 더, 좀 더 비싼 내가 되어야 하는 ‘교실 이데아’를 살아온 우리에게 승자 독식은 익숙한 논리였다. 그러나 익숙함과 패배자의 고통은 별개였다. 고통은 만성이 된 월요일 아침처럼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대는 백종원을 호명했다.
그는 자취생들에게 현실적인 요리 방법을 가르쳐줬고, 자영업자들에게 음식과 장사 노하우를 공개했다. 각종 관찰 예능들이 연예인들의 부의 전시장으로 전락했을 때, 그는 절박한 사람들의 기도처럼 나타난 것이다. 그는 2015년 [마이리틀텔레비전]에 출연한 이후, 한결 같이 ‘음식’의 길을 걸었다. 혹자는 자기 사업을 위해 이미지 메이킹 한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지만, 대중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그의 행보에서 진정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신뢰할 만한 어른’이었다.
현대인의 절대다수가 불안했고, 불안해서 권위에 기대고 싶었다. 그러나 기댈 만한 어른은 보이지 않는다. 부모님을 비롯한 친인척의 부에 기댈 수 있다면 축하하고, 부럽다. 그렇지 못한 우리는 대체로 일상화 된 경쟁 속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 해야 했다. 청년들은 대부분 누구에게도 지지 받지 못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보면 부모님은 지원군이 아니라 심리적 채권자에 가까워졌다. ‘N포 세대’를 시발했던 신입 중년들은 국가 지원 정책에서도 소외되었다. 비슷한 종류의 불안들은 쉽게 공유되었지만, 공감은 체념의 무게만 키웠다.
나이가 들수록 불안은 더 깊어졌다. 나도 내 나이가 처음인데, 세상은 내게 내 나이가 해야 하는 것들을 당연하게 해내기를 바랐다. 농경시대에는 1년 주기가 고정되어 있어 사는 대로 살아도 되었다. 나이는 경험 레벨을 의미했다. 살아갈수록 삶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어린 세대가 기댈 품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급격히 변화하기 때문에 사는 대로 살다가는 금세 뒤쳐졌다. 나이는 변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 시대를 따라잡는 일은 영원한 숙제로 남는다. 삶은 한 올도 단순해지지 않는다. 불안은 나이불문 항구적이다. 이럴 때, 백종원이 나타났다. 푸근한 이웃 아저씨의 얼굴로 ‘설탕을 더 넣어 보세유.’하며, 옆에서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말란다.
물론, 해결책을 제시하는 어른은 많다. 서점에만 가도 경제 성장기의 감나라 대추나라 출신들의 일해라 절해라 하는 오지랖들이 넘쳐났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서 진정성이 우려져 나오거나 독자들에게 맞는 소통 방식을 갖춘 이는 드물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냉소 받은 것은 독자가 보기에 큰 굴곡 없는 작가의 삶에서 진정성이 묻어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맛컬럼니스트 황교익이 대중의 과도한 공격을 받는 것은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듯한 태도 때문이었다. 다름이 인정되지 않는 견고함에서 풍기는 권위주의의 기미가 거슬렸던 것이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그들의 우월성이 남았다. 진짜 내 편은 아니었다.
백종원은 내 편 같았다. 그는 그의 게임 닉네임 그대로 ‘밥장사’로 살았다. 유명해진 이후 조명된 그의 과거에 밥장사가 그득했다. 삶으로 획득한 전문성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떤 음식을 마주해도 자판기처럼 공시적․통시적 설명을 내놓았다. 그 정도 전문성에, 1400여개 프렌차이즈 업소를 거느린 사람이라면 권위를 풍길 법도 하지만 그는 무골호인 같았다. 상대보다 높은 사람이 아니라 먼저 해본 사람으로 스스로를 낮췄다. [골목식당]에서는 가르쳐야 할 자영업자에게서 그보다 나은 점을 발견하면 인정하고 배우려 들었다. 꼬장꼬장하게 구는 자영업자를 설득할 때도 권위로 누르지 않고, 실력으로 납득시켰다.
백종원의 해결책은 입에서 즉각 체험할 수 있었다. 특히 [푸드트럭]과 [골목식당]에서 보여준 모습은 우리가 간절해 하는 멘토 그 자체였다. 출연자가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든, 출연자가 그의 말에 따를 경우 개과천선 수준의 일취월장을 이끌어냈다. 말만 하는 게 아니라 감이 필요할 때 감을 놔주고, 배가 필요할 때 배를 놔줌으로써 출연자가 실제로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과잉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늘 ‘할 수 있어야’ 해서 대체로 ‘할 수 없는’ 좌절을 맛보고 있다. 미션1을 할 수 있게 된 순간, 미션2, 미션3, 미션4가 끊임없이 주어져서 성취감은 간이역처럼 짧게 스쳐 지나갔다. 승자 독식 구조에서 평범한 노력가들에게는 성취의 보상도 시시했다. 그래서 우리는 체념에 익숙해진다. ‘열심히 해도 꿈을 이룰 수 없다’는 9할의 상식이다. 그럼에도 꼰대들은 ‘네 꿈을 펼쳐라’라고, 개굴개굴 개구리다.
백종원이 내게 해준 것은 없다. 그러나 높이 날려고 노력했던 갈매기가 바닥에서 아등바등할 때 진지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모습에서 내 만성 불안도 위로 받는 기분이 들었다. 백종원이야말로 난도(難度) 높은 경쟁 사회 속 연꽃 같은 교익(敎益)*이다. 인생 선배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이 모범 시민을 나는 좋아하고 존경할 수밖에 없다.
나도 백종원이 필요한데, 내 학생들은 나를 백종원 보듯이 본다. 내가 뭐라고, 학생들이 신뢰의 눈빛을 걸어올 땐 사기 치는 기분까지 든다. 내 인생에 백종원만큼의 진정성과 전문성이 배어 있을까? 글쎄. 나이 마흔이면 진정성과 전문성에 대해 당당해질 수 있을지 알았는데, 아직은 멀었다. 나도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이 먹어가고 있는 가를 되돌아보지만 여전히 내게도 백종원이 필요하다.
* 교익(敎益) : 불교 부처의 가르침에서 얻는 공덕과 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