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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Oct 12. 2021

생일상 - 엄마는 당신의 그런 식사를 원치 않는다

낮잠에서 깼을 때, 미역국 냄새가 났다. 어느 집에서 미역국을 끓이는 모양이었다. 짭조름한 냄새에 식욕이 동했다. 그러나 미역국을 사먹을 데는 없었다. 인스턴트 미역국도 먹을 만했지만 재료를 아끼지 않은 찐한 국물을 들이키며 큼직한 미역을 우걱우걱 씹어 먹던 기억을 충족시켜줄 정도는 아니었다. 입 안에 기록된 그리움이 위장을 긁어댔다. 그날이 생일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생일은 명절만큼 번거롭다. 태어나고 싶었던 적도 없고, 태어나려 선택한 적도 없고, 태어나기 위해 노력한 적도 없이 엄마의 산통에 무임승차한 주제에 존재의 영광을 독점하고자 하는 작태는 뻔뻔했다. 물론 명분이 무엇이든 타인의 축하와 호의를 받는 일은 즐겁다. 그러나 받은 만큼 돌려주는 일이 귀찮다. 어떤 가격대에서 무슨 선물을 해야 할지 고르는 것부터 골치다. 사실 그다지 축하의 마음도 들지 않는다. 관행을 의무적으로 따를 뿐이었다. 나는 이 지긋지긋한 상부상조를 폐기한 지 20년도 넘었다.


어쩌면 인주부조화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내 생일을 축하하지 않기 때문에 축하를 주고받지 않겠다고 선수 치는 것이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고깝게 보는 것도 사랑받지 못하면 태어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돌려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노랫말에 따르면 생일은 태어난 목적을 확인하는 날이다. 그러나 사랑받기 위해 생일을 넌지시 알리는 것은 지질하고, 은근히 기대하는 것은 구차하다.


한때 생일마다 쇼핑몰에서 보내온 생일 축하 쿠폰이 조롱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다. 돈 몇 천 원에 ‘당신은 소비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듣는다고 생각했다. 막상 요즘은 그들조차 입 닫고 있으니 허전하다. 공허함과 서운함이 복합된 마음 구멍이 미약하게라도 감지되는 것을 보면 사랑받는 것의 원초적 욕구가 내게도 아직 유효한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나이 들수록 작년에 왔던 생일이 죽지도 않고 또 와 애정을 상호 구걸하는 행태는 거추장스럽다.


자취가 오래될수록 이 가련한 인지부조화는 강화되었다. 굳이 궤변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별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축하를 주고받는 것이 감정 낭비라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다. 학생 때야 친구들 사이에서 상호 채무 관계의 연쇄를 통해 우정을 강화했다. 그러나 취준생 때는 박살 난 자존감 때문에 사람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취업해서는 친구들 만나기가 어려워지고, 직장 동료와는 상대가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릴 관계임에도 존재를 기념하는 일은 과해서 피곤했다. 생일을 챙기던 사람들도 안 주고 안 받는 것이 속편해졌다. 나를 위한 선물 정도에서 자신과 타협하거나 그나마도 생략했다.


대상 자체를 사랑하는 주체는 반려견과 부모님뿐이다. 반려견은 주인이 못생기든, 뚱뚱하든, 늙었든, 가난하든 꼬리를 쳐댄다. 부모들은 한술 더 뜬다. 반려견의 사랑은 자신에게 애정과 먹이를 주는 주인의 행위에 대한 반작용이지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이어서 특급이다. 그래서 나도 엄마 생신만큼은 챙긴다. 예전에는 용돈만 드리다가 요즘은 작은 선물을 추가한다. 재난지원금이 남아 창고 정리하는 등산복을 사 드린 적 있었다. 아침 운동하실 때 막 입을 옷이었다. 엄마는 그 싸구려 옷을 ‘아들이 사 준 옷’이라며 아끼셨다. 그게 뭐라고, 내가 뭐라고, 주는 내가 존재 가치를 곱절로 돌려받는 기분이었다. 엄마 때문에 내 생일은 산통과 키워준 채무에 대한 책임인지 엄마를 위한 축하인지는 모르겠다.


늙은 자취생의 생일을 챙기는 것은 더 늙어버린 어미뿐이다. 내가 엄마에게 용돈을 드리는데, 엄마는 내 생일에 밥값을 입금해주셨다. 그날만큼은 맛있는 것을 사 먹으라신다. 내 끼니에 대한 엄마의 진심을 알고 있으므로 억지로라도 맛있는 걸 사 먹으려 한다. 물론, 고작 치킨이었다. 함께 먹을 사람도 없어 퇴근 후나 휴일에 혼자 뜯었다. 생일의 의미가 사라진 지 오래인데, 생일이어야 해서 이날의 치킨은 괜히 칙칙했지만 엄마는 당신이 보내 준 돈으로 내가 ‘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에 흡족해 하셨다.



올해는 생일에 맞춰 생일 음식을 택배로 보내주셨다. 누런 테이프로 이음새를 꽁꽁 싸맨 스티로폼 상자 안에 잡곡밥과 미역국이 있었다. 밥은 락앤락 통에 6-7인분 정도 되었고, 얼린 미역국 두 봉지는 각각 세 번 정도 밥 말아 먹을 정도는 되었다. 쿠킹 호일로 한 마리씩 싼 조기도 세 마리 있었다. 생선은 어렸을 때도 거의 안 먹어 커서도 즐겨 먹지 않는데도,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생선을 못 먹인 것이 마음이 쓰이신 모양이었다. 사과 세 개, 귤 여남은 개, 샤인머스켓 한 송이도 있어 대여섯 끼의 입가심으로 충분했다. 음식 사이를 알밤이 메꿨다. 집 근처에 야생 밤나무 몇 그루가 있는데 거기서 주운 거라고 하셨다.


생일 전날 밤, 냉동실에 넣어둔 밥을 밥솥에 넣고, 얼린 미역국을 상온에 꺼내 두었다. 다음 날 아침, 밥은 따뜻해져 있었고, 내 방에는 짭조름한 냄새가 가득해졌다. 평소 한 끼는 미역국에 밥을 말아 김치 하나면 충분했지만, 이날은 조기도 굽고, 과일도 미리 씻어서 상에 올렸다. 겨우 밥 한 끼, 아무렇게나 먹어도 상관없는 겨우 밥 한 끼, 뭐 이리 번거로워야 하나 하면서도 내 한 끼를 위한 엄마의 수고를 생각했다. 상차림을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보냈다.



엄마는 잘했다고 했다. 밥을 먹는 것이 잘한 것일 수도 있는 멍청한 사랑도 있다. 엄마는 나보다 나를 더 아끼는 사람이다. 아니, 나는 애초에 나를 아끼지 않았다. 아끼는 사람에게 허술한 밥을 먹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자취가 오래되며 나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는 것에 지나치게 익숙해져버렸다. 겨우 밥 한 끼가 아니라 무려 밥 한 끼여야 했다. 최소한 생일만큼은 엄마가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먹어야 했다. 그것이 태어난 사람이 지녀야 할 자신에 대한 예의다, 고 엄마가 말씀하신 듯했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조기 구이는 없어도 괜찮았지만 한 마리를 다 먹었다. 내게 미역국 냄새를 흘린 집에도 나의 미역국 냄새와 조기 구이 냄새가 건너갔으면 좋겠다. 당신만 먹는 게 아니라고. 나도 ‘무려 밥 한 끼’를 하는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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