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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믿음의 세련된 표현

스무 하루 경남 남해군 삼동면 국립남해편백자연휴양림

by 박달나무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의 편백은 상당한 조림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불과 한 달 전, 일본 시마네 현에서 아름드리 편백숲을 곁에 두고 생활했기에 낯설지 않은 풍광이다. 편백은 한국에서 흔한 나무는 아니다. 사우나에서 히노끼 탕으로 편백을 만나고, 베갯속으로 편백 칩을 많이 쓴다. 편백숲은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고, 편백향이 항균작용을 하며 비염이나 천식에 효과가 좋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아이들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하루 종일 편백숲에서 머물렀다. 이틀 정도 숲 속에 있다고 편백나무 삼림욕의 온갖 효과를 몸에 받아들였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런 패턴 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마치 하나의 법칙을 발견한 듯 유레카를 속으로 외쳤다. 생각의 흐름은 이런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큰 약점은, 관리자 역할의 교사 입장에서 서술하는 것이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청결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불결한 모습은 몇 가지 원인을 진단할 수 있다. 원인에 대한 이해가 아이들 불결한 행위를 따뜻한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일단 불결한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흙먼지 뒤집어쓰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음식물이 옷에 묻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세수하고 샤워하는 일상을 빼먹어도 불편하지 않다. 양치를 안 하고 넘어간다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첨단 의학의 치료법인 줄 모르면서도 파낸 코딱지는 구강을 통해 제 몸으로 돌려보낸다. 음식물이 어디에 있었든 어떤 상태에 있었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먹는다. 손톱은 물론 발톱이나 주변의 굳은살을 먹어서 제거한다. 자기감정을 노정하기 위해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입에 무는 것이 어렵지 않다. 몸에 향기가 나든 악취가 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특성을 길게 드러낼 수가 없다. 늘 곁에 있는 돌봄 교사가 바로 즉각 개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가 순간적으로 입에 무언가를 넣는 걸 모두 막을 수 없다. 그동안 만났던 아이 중 한 녀석은 겨울철이면 얼음이나 눈을 먹었다. 문제는 그게 길에 고였던 빗물이 얼은 것이나 내린 후 오래도록 쌓여 있던 눈이라 속 터지는 일이었다. 스케이트 날에 의해 깎인 얼음가루도 입에 넣고 스키장의 인공눈도 목마르다며 퍼먹었던 것이다. 나는 그 녀석이 장염에 걸리거나 어떤 식이든 배탈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번도 배가 아픈 적이 없었다.

또 다른 녀석은 밖에서 놀다가 모래든 진흙이든 자기 손에 묻은 흙먼지를 혀로 핥아 닦아냈다. 너무 어이가 없어 왜 그러는지 추궁도 했지만 본인도 대답하지 못한다. 나는 이 아이가 분명 세균성 감염으로 약을 먹는 일이 있을 걸로 예상했지만 한 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개한 두 녀석은 매우 독특한 경우였고, 꼬랑내 진동하는 신발을 입에 문 녀석도, 파낸 코딱지를 먹는 녀석도, 땅에 떨어진 과자를 지나치지 못하는 녀석도, 새로 입은 티셔츠를 한 시간 안에 걸레로 만드는 녀석도 배앓이나 세균성 감염으로 약을 먹은 경우가 전혀 없었다.

숲에서 뛰어놀고 냇가에서 첨벙 대는 아이들을 보다가 머릿속에 있는 전수 조사를 상상실험으로 진행했는데 아무도 불결을 원인으로 병원신세는 물론 약물치료를 받은 경우가 없는 것이다. 신기하기도 하면서 당황스럽기도 하다. A원인이 B결과를 낳는 것이 당연하다는 세상의 이치에 따라 지저분한 음식이나 도시의 흙먼지가 입에 들어가면 탈이 나야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아무도 예외 없이 무탈하다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10년 전 심한 몸살과 근육통으로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결국 열흘 입원했는데 A형 간염을 방치해서 간(肝) 상태가 목숨을 위협하는 정도로 나빠졌다는 진단이었다.

의사 왈, 어려서 귀하게 크셨나 봐요. 나, 네? 무슨 말씀이신지.... 의사, A형 간염은 어려서 흙장난하다가 대부분 바이러스 감염이 되고 항체가 생겨서 평생 발병하지 않거든요. 나, 아.... 예~ 저는 흙수저라 흙과 매우 친했거든요. 뭐 이런 대화가 있었다.

귀하게 흙 만지지 않고 자란 건 아니지만 어린 내게 청결은 갈등을 허용하지 않는 절대적 덕목이었다. 아무리 추운 날에도 밖에서 들어오면 찬물에 손발을 씻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 번 땅에 떨어진 음식은 그 무엇이라도 먹는 일이 없었다. 음식물을 옷 앞자락에 흘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었다. 음식을 손을 써서 먹는다면 아버지 잔소리 이전에 형의 물리적 응징이 있었을 것이다. 흙에는 파상풍균이 있을 수 있고, 냇물에는 수인성 전염병균을 의심해야 하고 천장에서 뛰어다니는 쥐에 패스트 균이 있을까 걱정했다. 그런 자세가 과학적이라고 믿었고 과학은 의심 여지가 없는 성역이었다.

그러한 환경과 믿음이 나를 구성했다. 나라는 존재는 레고 조립품과 같다. 레고 시티 부속으로 조립했는지, 레고 프렌즈 부속을 썼는지, 레고 키마 주제로 만들었는지에 따라 다른 사람으로 완성됐을 것이다.

그런데 교사 라벨을 두른 내가 만나는 아이는 레고 스타워즈 세트로 조립한 존재였다. 내 과학과 아이들의 과학은 다른 우주를 배경으로 한단 말인가. 원인 A를 투입했을 때 결과 B가 도출될 것이라 굳게 믿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결과 B는 꽁무니도 안 보이고 결과 C, 결과 D가 나와서 당황스럽다.

생각의 소재를 좁혀서 불결과 배탈의 관계에 국한한다면, 건강한 아이들은 무엇을 먹든지 탈이 나지 않는 인체로 세팅된 것이 분명하다. 나의 걱정은 속된 말로 ‘오버’였다. 흙먼지 묻은 손을 혀로 핥아도, 신고 있던 운동화를 입에 물어도, 길섶에 쌓였던 눈을 퍼먹어도 끄덕하지 않는 몸을 신(神)이 줬다. 따라서 험하게 어린 시절을 보내는 것이 평생 건강에 유리하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은 얼마나 오해 투성인가. 그래도 아이들 책임지는 입장에서 불결의 문제는 날 괴롭히는 가장 큰 요인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불결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다. 언젠가 의도적인 불결한 일상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2017.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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