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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열대>가 아닌 <슬픈십(10)대>

스무 이틀 충남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수목원 생태교육관

by 박달나무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을 떠나서 주유천하의 마지막 숙소인 천리포수목원으로 향한다. 천리포수목원을 알게 된 것은 이십 년 전이다. 1979년 한국에 귀화하면서 민병갈 이름을 얻은 칼 F. 밀러(1921~2002)는 미국 해군 대위로 해방 직후 한국에 온다. 천리포에 땅을 마련하고 좋아하는 목련을 심기 시작하면서 수목원으로 가꿔나갔다. 1953년 아예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은행 직원이 된 칼 밀러는 2002년 세상을 뜨기까지 독신이면서 천리포를 떠난 적이 없었다(1979년 이후) 2000년에는 국제수목학회가 선정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 개인이 평생을 바쳐 조성한 사설 수목원이 이렇게 멋지다. 사설이라면 용인 백암면에 있는 한택식물원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이름부터 수목원(arboretum)과 식물원(botanical garden)으로 차이가 나고, 한택주 대표의 땀으로 평생 일군 한택식물원은 계획적인 조경의 멋이 빛나지만 민병갈의 천리포수목원은 해안을 따라 조성된 자연스러운 땅 모양과 식생한 것 같지 않게 자연스러운 생태를 이룬 나무와 풀의 편안한 아름다움이 있다. 특히 천리포수목원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종의 목련을 보유하고 있다. 목련이라 해서 4월에 방문하면 낭패다. 5월 초에서 중순 사이에 천리포수목원 목련꽃은 만개한다. 천리포수목원의 다양한 목련꽃잔치를 보려면 어린이날 이후에 방문해야 한다.

우리는 천리포수목원에서 2박을 하고 주유천하 프로젝트를 마감한다. 아이들이 장기간 여행에도 탈이 나거나 지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주유천하 프로젝트는 대성공이다. 물론 성공이냐 아니냐의 잣대가 필요 없는 프로젝트였다. 아이들이 열도 나고 몸살도 나서 어느 날에는 우리 모두 꼼짝없이 병간호를 했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Doing의 관광이 아니고 Being의 머묾을 위해 우리가 교실을 떠난 것이기 때문이다. 일기예보는 오늘 밤부터 비가 내린다고 하지만 그 또한 프로젝트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천리포수목원 안에 숙박시설을 운영한다. 다른 수목원이나 식물원에는 없는 운영방식이다. 일부러 숙박시설로 집을 지은 것이 아니라 민병갈 원장이 수목원을 확장하면서 하나하나 마련한 집을 숙박시설로 쓰는 것이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한국식 건물이 십여 채 있다. 수목원 울타리 안에서 잘 수 있는 것이라 머무는 이의 감흥은 특별한 법이다. 다만 숙박료가 무척 비싸다. 크기에 따라 1박에 30~100만 원 사이라고 알고 있다. 성수기에는 수목원 재단 후원자에게만 기회를 주기 때문에 일반인은 이용하기 쉽지 않다.

우리는 수목원 재단에서 운영하는 생태교육관을 이용한다. 2인실, 4인실, 10인실 등이 운영되는데 가격이 싸고 공동취사장과 공동샤워장이 훌륭하다. 방에도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다. 생태교육관은 수목원 울타리에서 살짝 떨어져 있다. 물론 숙박하는 이는 수목원에 무료로 출입할 수 있다.

미리 4인실을 예약하고 왔는데, 우리 일행을 본 직원이 한눈에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10인실을 쓰는 게 좋겠다고 권한다. 예산 부족이라고 얘기하니까 파격적으로 할인을 해주겠단다. 가능한 예산을 먼저 말하라고 했다. 2박에 5만 원을 추가로 지불할 수 있다고 하니까 잠깐 망설이다가 그렇게 해주겠노라고 허락한다. 20만 원 추가 비용인데 5만 원만 내라는 것이다. (이거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마침 생태교육관을 이용하는 손님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선심 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부탁했더니 세탁기도 사용하게 해줬다. 세제와 세탁물 건조대도 따로 마련해준다. 고맙다. 이게 다 비수기 평일에 움직일 수 있는 우리의 조건 덕분이다.

공동취사장은 워낙 넓고 완벽한 부엌 시설을 갖췄다. 한편에 식탁도 마련되어 조리해서 먹고 뒷설거지까지 끼니 해결을 원스톱으로 진행할 수 있다. 송 선생님이 밥을 짓고 간단한 반찬을 마련해서 저녁 식사를 재빨리 마쳤다. 여행을 다니니까 밥을 엄청 먹는다. 일본을 포함해서 6주 동안 눈으로 얼추 봐도 아이들 키가 컸다. 간식과 음료수 없이 밥 위주로 먹고 움직이니까 쌀 소비가 학교에 있을 때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오늘 저녁밥을 마지막으로 쌀이 떨어졌다. 송 선생님이 차로 20분 떨어진 마트에 다녀오는 사이 설거지를 했다.

한 녀석(A)이 설거지를 시작하려는데 먹기 시작한다. 다른 아이들은 식사가 끝나고 모두 방으로 올라갈 때 먹겠다고 한 것이다. 사연은 이랬다.

오전에 차 안에서 A가 뒤에 앉은 녀석을 주먹으로 때리는 것을 룸미러로 목격했다. 즉각 멈추라고 했고 도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하냐고 추궁했다. A는 입을 꼭 다물고 말하지 않았다. 맞은 녀석이 사정을 설명하겠다고 했지만 말하지 못하게 막았다. A에게 직접 듣겠다고 했다. 서너 차례 때렸지만 분노에 찬 주먹은 아니었다. 일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정도의 다툼이다. 이런 경우는 피해자와 가해자 구분이나 최초 폭력 유발자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 선생의 추궁은 좁은 차 안에서 굳이 몸을 돌려 뒷자리 친구를 때리겠다는 행위에 대한 경고의 의미였다.

하지만 A는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시작이구나 싶었다. 늘 자기 명분이 미약할 때나 명백히 자기에게 유책사유가 있을 때 A는 묵비권을 행사한다. ‘내가 아무 말 안 하는 것은 내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니 그리 알고 넘어갑시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러 번 있었던 일이다.

계속 상황설명을 하라고 추궁하다가 대답하지 않으면 점심을 주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예상대로 A는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왜 점심을 먹지 말라는 거야”

“점심을 먹으려면 네가 B를 때린 이유를 설명하라니까”

“점심 먹을 거야”

“그러니까 설명을 하라고”

“난 점심 먹고 싶어”

“그럼 설명을 해”

나와 A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내 요구에 응하지 않아 페널티를 부과하면 아이는 징징거리며 십 분 이상 운다. 그리고 내 요구는 듣지 못한 것처럼 자기 요구사항만 반복해서 읊어댄다.

점심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었다. A가 점심을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뱉은 말이 있으니 먼저 점심을 먹으라는 소리도 안 했다. 아이는 편의점이나 다른 군것질 파는 부스를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녔다. 불러서 다시 말했다.

“네가 아까 상황을 설명하면 점심을 지금이라도 제공할게.” 이런 식으로. 하지만 A는 울기만 한다. 표정을 보니 배고프지 않구나 판단했다. 중간에 먹은 사과나 사탕이 있어 허기진 건 아니라고 보고 차에 태웠다. 천리포수목원이 워낙 멀어서 마음이 바쁜 것이다. A는 차 안에서 또 울었다. 물론 평상시대로 내게 비난의 욕을 계속했다. 그래도 오늘은 강도가 약하고 금방 끝냈다. 조용히 이동했다.

저녁을 먹을 시간에 A에게 다시 요구했다.

“아까 주먹질한 것에 대해 선생님께 설명을 해야 저녁을 줄 수 있어”

A는 울상이 돼서 징징거리고 울었다. 징징거릴 때는 발음을 뭉개서 말하기 때문에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같이 살다 보니 대강 무슨 얘긴 줄 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알아들을 수 있는 최소한도로 발음을 뭉개는 것이었다. 의도적으로 말이다.

1층 공동취사장으로 내려갔다. 뒤따라오는 A가 내게 확인한다.

“지금이라도 말하면 저녁을 줄 건 가요?”

“물론이지. 네가 설명만 하면 저녁을 줄게. 끝까지 고집 피우면 저녁도 못 먹을 줄 알아”

“내가 말해도 때리지 않을 건가요?”

“야! 선생님이 언제 널 때린 적 있어. 이게 정말 누굴 모함하고 있어”

“아까 휴게소에서도 날 배로 밀어 넘어뜨렸잖아요”

“그건 도망가는 널 잡으러 뛰어간 건데 갑자기 네가 멈추는 바람에 추돌사고가 난 거지 그게 왜 널 배로 민 거냐”

“어쨌든 날 넘어뜨렸잖아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아까 상황을 설명이나 해라”

A는 공동취사장 식탁에 말없이 앉아만 있다. 답답한 내가 자꾸 재촉했다.

“배고프지 않아? 빨리 그때 상황을 말하고 저녁 먹자”

그래도 A는 무표정하게 앉아만 있다. 나는 말 꾸러미가 부족한 아이가 7시간 전 상황을 설명할 마땅한 재주가 없어서 입 속에서만 말이 맴돌고 정작 소리 내서 설명하려 하니까 어쩔 줄 몰라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A가 아무 말도 안 할 것이라 예상했다.

“오늘 네가 엄청 좋아하는 스모크 소시지가 있네. 이거 안 먹을 거야? 먹고 싶지 않아? 배고프지 않아? 빨리 설명하고 맛있는 소시지와 밥 먹자”

오히려 안달이 난 건 내 쪽이다. 이런 시간 흐름과 공간 이동 속에서 시좌를 높여 드론에서 내려다보듯이 조감하는 이는 A였다.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A는 나와 치킨 게임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아이가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A를 포기하고 식탁을 정리하려고 했다.

“A야. 분명히 네가 식사를 거부한 거야. 내가 어려운 요구를 한 것이라 보지 않는다. 너는 네 행동에 책임져야 돼. 그러기 위해 당시 상황을 설명하라고 한 것인데, 네가 거부했으니 나도 식사를 제공할 수는 없다.”

이렇게 말하고 그릇을 모으려는 순간, A가 분명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말할게요.”

“(뭐야 이 분위기 반전은....) 좋아. 이제라도 말해봐라.”

그런데 A가 명료한 발음으로 정확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다. 더듬거나 주저하는 바도 없다. 마치 미리 말하려고 원고를 써놓고 외운 듯하다. 나는 이미 B에게 어떤 상황이었는지 들어 알고 있었다. A는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게 설명했다.

“B와 게임을 하고 있었고, B가 해줘야 하는 역할이 있는데 하지 않겠다고 해서 제가 화가 난 것이고요. 그래서 때렸어요. 그러니까 이제 밥을 먹어도 되는 거죠”

순간 당했다는 깨우침이 일었다. 치킨 게임에서 졌다는 판단이 비로소 들었다. 어후, 이거 뭐지. A가 이렇게 영악한 친구였나. 이번 게임으로 A는 나를 30분 이상 독점했다. 내 속을 충분히 긁었고, 밥을 가능한 굶기지 않으려는 의중을 알고 쥐락펴락했다.

“A야. 인생 그렇게 살지 말자.”

혼잣말처럼 말했지만 A도 들었다. 설거지하면서 개수대에서 머리를 숙이고 괴로워하는 나를 보고 눈치 빠른 A는 평소와 다르게 찍소리 없이 밥을 먹고, 조용히 빈 그릇을 설거지 진행 중인 개수대 안에 넣고 문도 살살 닫고 숙소로 올라갔다. 이미 게임에서 이긴 자의 아량과 배려로 느껴졌다.

‘언젠가 복수를 해주지....’

진짜로 쪼잔한 복수심이 불타올랐다. 곧 혼자 깔깔 웃으며 ‘나 지금 뭔 생각을 하는 거니’하며 반성 모드에 돌입.

지난 일 년 동안 A에 대해서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기억력은 비상하지만 개념과 개념을 잇는 응용력이 또래보다 약하고, 특히 어휘력 부족으로 사고력의 원재료가 고갈된 아이로 오해했던 것이다. 엊그제 해운대 콘도 조식 뷔페장 앞에 쓰여있는 ‘국내산 김치’ 표기를 보고 “국내산은 어디 있는 산이예요?”하고 물었던 A가 아니었던가. 정말로 이마에 “하산(下山) 가능” 딱지를 붙여주고 싶다. 한편으로 안도가 되었던 것이다.

A가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아니다. 압권은 따로 있다. 오늘 계 타는 날인 줄....

학교의 수업에 참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업 진행을 심각하게 방해한다는 담임교사의 평가에 두 달 전에 내게 온 1학년 막내가 있다. 한글을 겨우 읽을 순 있는데 쓰는 것은 강력하게 거부하고, 두 달 스케이팅 레슨을 받았다는 아이가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에 데려가 보니 일어서지도 못하고, 아무리 고쳐 잡으라고 일일이 손가락을 옮겨줘도 리코더 계이름 ‘시’ 운지를 하고는 일주일 내내 ‘도’라고 우기는 아이였다. 최선을 다해 괴성을 지르고 먹을 것은 자기가 독점하지 않으면 엉엉 울어버리는 대책 없는 아이였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그랬다. 다른 아이보다 늦게 말문이 트였기 때문에 오랜 시간 언어치료를 받았다고 들어서 이 아이가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학습 상황에 끌고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오후에 아이의 엄마가 톡으로 동영상 클립을 하나 보내온 것이다. 작년 12월 상황이라면서 한자능력시험 8급에 도전하며 공부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아니.... 이건 충격과 공포! 해상도가 떨어져서 흐릿한 화면이긴 한데 내 곁에 있는 막내가 아니고 마치 체격이 좀 작은 중학생이 기말고사를 앞두고 공부하는 모습이다. 쓰고 답지를 보며 교정하고 다시 쓰고, 다시 교정을 반복한다. 충분히 몰입하고 있었다. 연출로는 나올 수 없는 모습이다. 연습할 때 완벽했고 정작 시험에서 긴장한 탓에 한 두 문제를 틀렸는데 무난히 합격했다는 것이다. 뭥미? 초등학교 입학 전인데 기본 한자 50글자를 읽고 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도록 반복적인 드릴을 했다는 것이고, 심지어 교재를 통해 혼자 공부하는 걸 즐거워했다고.

아무리 봐도 서번트 신드롬 영역은 아니고, 이 아이가 내게 보인 ‘문자를 매개로 한 학습’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 건 뭘까. 위에 소개한 A의 반전은 반전 축에도 끼지 못한다. 내 마음에 그렇다. 한 가지 알리바이가 떠오르지만 별로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아이들은 신비로운 존재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이에 대해 모를 수도 있지만, A처럼 오랜 시간 오해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마도 인간에 대한 원형을 아이들은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레비스트로가 아마존에 들어간 것처럼 아이들과 살다 보니 (내 자식에게서도 알 수 없었던) 그곳에 찾아 헤매던 무지개 실존을 확인한다.

아마 프레네(프랑스 혁신 교육자/프레네 교육 창시자/1896~1966)도 나와 같은 깨달음이 겹쳐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언행은 어른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2017.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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