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날 경남 남해군 삼동면 남해편백자연휴양림
이왕 온 해운대이니 바다에서 좀 놀아볼까 싶어 아침 일찍 식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오래된 콘도의 장점은 로얄석을 먼저 선점했다는 것. 콘도에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해운대 백사장 한 복판이다. 우리 아이들은 물만 보면 환장을 한다. 모든 아이들이 그런가. 대부분 아이들은 물을 좋아하더라. 아주 일부만 물을 무서워하는데, 천천히 적응시키면 예외 없이 물을 좋아하게 된다.(내 경험 안에서는 그렇다)
문제는 있다. 바닷물에 젖은 옷과 모래투성이 몸을 방치할 순 없는 노릇이다. 보호자로서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를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몇 번 속았기 때문에 아이들 바지 주머니를 뒤집도록 했다. 주머니 안에 모래가 한가득이다. 바다에서 놀다 보면 어느새 모래가 주머니로 들어간다. 예전에 이걸 모르고 그냥 세탁기에 빨래 돌렸다가 큰 낭패를 본 적이 있다.(아마도 2013년 10월의 천리포 해수욕장으로 기억한다)
어찌 보면 교육을 한마디로 정의하자고 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덟 글자만으로 다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언제나 여건이 나쁘고 준비는 부족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하도록 아이들을 부추기고, 그러기 위해서 뒤에서 쫓는 게 아니라 선생이 먼저 퍼스트 펭귄이 돼서 물에 빠져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선생이 먼저 물에 빠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뒤따라 물에 뛰어들지 않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려운 얘기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그리고 나 자신이 말처럼 못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을 하고 있다.
해운대에서 하루를 지내고 남해편백자연휴양림으로 떠난다. 운전하면서 그제야 남해 곁에 전남의 여수가 있지 생각했다. 막연히 부산에서 남해가 그리 멀지 않다고 짐작했는데 착각이었다. 꽤 멀다. 160km.....
유명한 멸치쌈밥집을 지난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들을 먹이고 싶지만 1인당 15000원 정도라서 지출 범위를 넘는다. 해산물을 전혀 먹지 않(겠다고 버티)는 아이도 있어서 전쟁 같은 밥상 앞에 앉고 싶지 않다는 심리도 작용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오늘 아침 자연산 전복으로 쑨 전복죽을, 그것도 내장을 같이 끓여 푸르딩딩한 색깔의 전복죽을 싹싹 다 먹었다. 해녀로 보이는 80 노인네가 해운대 관광지에 좌판을 깔고 팔았다는 전복을 한 마리 5천 원에 4마리를 샀다. 한 마리가 주먹 두 개를 붙여놓은 크기다. 활발하게 살아 있는 놈이다. 4마리로 죽을 쑤니 그릇마다 전복 살이 열 조각도 넘는다. 여전히 덕풍계곡 참기름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고.....
남해편백자연휴양림은 말 그대로 편백나무 천지다. 일부러 편백으로 식목을 한 것일 게다. 주유천하 두 번째 숙소가 편백집이었고, 집 안 전체에 편백향이 퍼져 있었다. 무엇보다 편백나무를 보면 지난 8월 일본에서 생활이 떠오른다. 우리가 머문 숙소는 산으로 둘러싸였는데 온통 편백나무였다. 히로시마 남쪽의 암국성(岩國城) 해설사 말에 따르면 일본 성은 편백나무로 지었다고.... 지금도 30년 된 편백나무는 10미터에 삼백만 원(삼십만 엔)에 팔린단다. 편백은 특유의 냄새 때문에 벌레를 타지 않고 똑바로 자라서 건축재로 사용하기 좋다.
이곳에서도 신불산처럼 아름다운 구속의 시간이길 바란다. 무엇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편백숲에서 산책하고 숨 쉬고 땅 파고(우리 아이들은 나뭇가지로 땅 파는 걸 좋아한다. 10월엔 삽과 간단한 공구를 준비할 것이다) 아웅다웅하고 밥 먹고 자면 된다. 오늘은 일단 도착했다. 오는 길에 삼천포 중앙시장에서 사 온 꽃게로 찌개를 끓여서 성찬을 차렸다. 물론 동행하는 송 선생님이 부엌일을 전담한다. 지난 주말 송 선생님이 잠깐 서울 집에 다녀오는 동안 내가 한 고생은 적지 않았다. 일본에서도 보름을 혼자 감당해보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고행이었다. 눈 뜨면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징징거리는데 마땅한 재료와 메뉴가 없을 때 보통 낭패가 아니었다.
게 다리를 일일이 가위로 잘라서 해산물 경험이 없는 아이들에게 게살을 먹이는 송 선생님의 모습에서 숭고함이 느껴진다. 공부 공동체로 이름 난 고미숙 선생의 말처럼 공부는 함께 밥 먹는 거다. 하루 세 끼, 많게는 3년을 먹은 녀석도 있고, 짧게는 반년을 먹었다.
눈에 띄는 건 아이들의 체격이다. 처음 만났을 때와 전혀 다른 몸이 됐다. 어쨌든 변했다. 몸만 변하는 건 없다. 체격의 변화가 아닌 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역시나 변화를 겪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알아보는 것, 앞으로 변화의 방향과 기울기를 예측하는 것이 교사가 할 일이다. 그러니까 예측을 할 수 있지만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란 말. (2017.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