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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규 Dec 13. 2017

레비스트로스의 『슬픈열대』처럼

10년을 마무리하는 자부심

  어쨌든 연말 분위기이다. 날이 추워지고 응달진 곳에 녹지 않은 눈이 그대로 있어서 분위기를 강화한다.  내게는 특별한 연말이다. 지난 10년 동안 제도권 밖에서 어린이 청소년과 지낸 세월을 마무리하기 때문....
  삶 자체가 굴레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내 고생은 특별할 것은 없지만 고생의 내용이 좀 독특하다. 처음엔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하나의 커다란 실험을 한 셈이다. 실험 가설은 "어른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들의 행동을 설명하는 통일장 이론이 가능하다"이다.
  뉴튼의 만유인력을 공간의 휘어짐으로 새롭게 해석한 아인슈타인은 거시세계와 미시세계 모두 적용되는 통일장이론을 위해 인생 하반기 미국에서 분투를 했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교실 및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지르고, 미션 수행 국면에서 끝까지 침묵을 지키고, 음식을 먹으면서 식탁 주변을 초토화 시키고, 대소변을 적절하게 가리지 못하고, 리터러시에서 최선을 다해 탈주하고, 어른의 지시와 부탁을 외면하고, 작은 이해 관계에도 전혀 양보할 줄 모르고, 도구를 들어 가까운 친구에게 상처를 남기고, 엄마에게 욕을 하고, 교실에서 바지를 내리고 있고, 스마트폰부터 게임 까지 미디어 중독 증상 등 다종 다양한 반사회적 일탈 양상을 한방에 설명하는 이론이 과연 있을까. 아이들의 부정적 행동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통일장이론을 모색하며 찾았던 거다.
  결국 찾았다. 발견이 가능한 건 아이들과 지난 5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먹고 자고 씻고 여행하고 놀기를 함께 한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마치 레비스트로스가 1930년 대 아마존 밀림의 원시부족과 1~2년을 함께 살았기에 <슬픈 열대>가 가능했던 것과 같다. 질적연구의 결과물을 정리해서 마무리한다면 <슬픈 10대> 정도가 될 듯^^
  핵심은 아이들이 원시적 뇌에 충실하면서 행위의 최우선 조건을 "생존가능성"에 둔다는 것이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큰 쪽으로 자기의 행동을 의사결정한다. 가장 인간적이다. 본능으로서 사회문화적 요인에 앞서는 본질이라고 본다.
  수많은 지적과 손가락질, 경멸을 부르는 행동이 본인은 살아남기 가장 유리한 것이라고 판단한 결과라는 걸 이해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 있었다. 저렇게 어이 없는 짓을 하면서 과연 자신에게 유리한 의사결정이라고 믿는단 말인가? 
  하지만 '어이없음'은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절어 있는 기성세대의 판단일 뿐이다. 아이들 행동은 결과적으로 가장 에너지를 적게 쓰는 유리한 국면을 가져온다.
  레비스트로스가 원시부족과 살고 깨달은 것이 문명과 야만의 구분이 철저히 서구사회의 편견일 뿐이라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이에 대한 정리가 향후 10년의 내 과제가 되었다. 과제를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행복하다. 지난 10년의 충분한 보상이다.

(201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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