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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규 Feb 27. 2018

제주도의 기억

열흘 간의 제주 여행 with Children

1.

2월은 교육환경이 특별한 관계로 평상시 진행하던 시간표와 다르게 제주도여행을 했다. 16일 갔다가 26일 돌아왔다. 
제주도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이 안돼서 돌아온 후 남기고 싶은 사항을 포스팅하려고 한다.
#일단_급한_일부터
학부모교육 프로그램은 많지만 대상이 엄마인 경우가 전부고 아빠를 염두에 둔 프로그램 운영이 전무하다는 판단으로 가칭 "아빠학교협동조합"을 추진하고 있다.
내가 제주도에 머무는 통에 준비하는 팀의 모임을 지난 23일 제주에서 가졌다. "아빠학교협동조합"의 1차 사업은 연수 및 아빠캠프 프로그램 운영이다.
조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경기남서권역 대안학교 14개교 아빠들 연수 2시간을 "우리"가 고민하기로 했다. 공교육교사, 중등대안학교 설립자, 초등대안학교 대표로서 경험을 쌓은 내가 연수강사로 나간다. 주제는 "대안학교 아빠로 산다는 것" 날짜는 3월19일 장소는 과천 어디(?)다.
근래에 꿈꾼 일 중의 하나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형식으로 즉석 다중교육상담하는 것이다. 연수 2시간 중 30분 이상을 교육 즉문즉설을 하려고 한다.
*일단 내가 생각하는 핵심은 '아빠'로서 어떻게 자식을 잘 서포트할 것인지를 말하지 않는 것이다. '아빠' 자신이나 앞가림 잘하고 마음따숩게 살기를 바란다는 흐름을 가져갈 예정이다.


아빠학교협동조합 발기인들


2.

아이들과 여행한 열흘의 제주도. 그중엔 두 번의 외도가 있었다. 하나는 함영기 선생님(서울시교육연수원 연구관)이 18년 동안 이끌었던 교컴(교실밖교사커뮤니티)의 연수에 참가하느라 1박2일 전주를 다녀온 것과, 제주시 화북일동에서 아빠학교협동조합 설립을 위한 회의에 밤샘 참가한 일이다.
#교컴연수
주제는 "인성교육을 넘어 시민성교육으로"였다. 1박2일을 연수행사에 참가하면서 한 가지 만족과 한 가지 아쉬움을 남겼다.
#만족
연수참가자 면면을 보니 어쩜 김석 선생님 다음으로 나이가 많을 수도 있겠다.(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현실....) 후배님들의 영민함과 성실성, 헌신성, 꼼꼼함에 만족감을 느낀다. 그건 동시에 안도감이다. 공부도 열심히 하는 선생님들이 헌신적 실천을 한 사례들을 들으면서 마음 든든했다. 내가 저 나이와 경력 때 어땠지 생각해보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고맙고도 고맙다.
#아쉬움
인성교육은 개인적 측면을 강조한 것이고 시민성교육은 공동체사회를 부각한 교육컨텐츠를 말하는 것이라고 큰틀에서 이해하고 합의하는 듯 하다. 둘 다 함께 해야하지만 근래 교육당국이 강조하는 인성교육은 개인적 차원에 머무는 '착한 사람되기' 성격이 강해서 오해와 왜곡의 소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인성교육을 말할 때 자연스럽게 인권교육이 겹쳐지지만 정부가 제시하는 기준은 인권을 고민하지 않는 인성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인성교육의 기본은 인권감수성을 제고하는 것이라면 인권의 올바른 이해가 첫걸음이라는 의견도 공감된다.
모두 반론이 없는 "좋은" 얘기다.
그런데 말이다..... 이게 좀 뒷맛이 쓰다. 대부분 현장에서 인성/인권/시민성이 바닥인 것은 합의하는 바다. 그래서 '인성을 넘어 시민성'이 강화돼야 한다는 것인데, 무엇이 인성과 시민성이 바닥으로 떨어지도록 했는지 언급했어야 한다. 내내 졸지 않고 열심히 들었는데 원인에 대해 지적하고 토론하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안타깝게도 첫 순서인 권재원 선생님 강의는 늦게 도착한 바람에 듣지 못했다)
원인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이게 다 명박이, 근혜 때문이야"라고 말하면 안된다. 어떤 나쁜놈이 있어서 현실을 이렇게 망가뜨렸다는 인식은 오류다. 결론을 하나로 수렴하지 않아도 치열한 토론이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 싶었다.


교컴은 교사커뮤니티를 줄인 말이다


3.

제주도에 머물던 지난 19일 김어준의 파파이스 86회를 들었다. 충격 먹었다.
김진향이라고.... 북한학을 전공한 학자라는데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비서관(차관보급)으로 일했고, 2008년부터 4년 동안 개성공단에서 머물며 기업지원부장으로 근무했다고. 그래서 북한의 민낯을 계속 보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김진향이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인다. 청와대, 외무부, 통일부, 국정원에서 북한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분단체계가 근본적으로 인식의 왜곡을 가져온다고 한다. 뭐 그 정도야 어색하지 않다. 나도 안다.
그런데 이건 넘 충격이다.
"여러분, 이건 좀 헷갈릴 겁니다. 석탄 1킬로그램이 100원이라고 합시다. 이걸 노동자가 일을 해서 연탄을 만들면, 석탄 1킬로그램으로 만든 연탄은 100원이 아닌 200원, 300원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북한에서는 노동력을 투입한 연탄이 원재료 석탄값보다 더 낮아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설명하지 않는다.
뭐지? 이건!
어떤 논리가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겠는가.
다른 출연자와 얘기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김진향이 말한 북한의 전혀 생소한 경제논리로 머리가 무거웠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냐구.....
"억지"로 이해한 것은,
우리는 원재료 A가 노동력에 의해 가공품 B로 바뀌면 "A+부가가치=B"라고 생각한다. 즉 노동력이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그리고 부가가치는 (+)가격으로 현실화된다. 너무나 당연히.
그런데 북한에서 부가가치가 (-)가격으로 현실화된다는 것이니까.....
노동자의 노동력이 상품을 매개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가치로 작동하는 것이지 않은가. 공동체에서 멤버의 노동이 내가 물품을 더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작용하는 것이지 않은가. 결국 북한에서 노동을 임노동으로 보지 않는 것이지 않은가. 
내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제대로 충격을 먹었다. 국가계획경제는 내 상상의 세계 너머에 있는 신세계인 듯. 중요한 점은 세상이 내가 아는 논리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한 6년 전 젊은 경제학자 홍기빈이 "돈이 중심이 아닌 경제시스템도 있습니다"를 들은 이후 가장 큰 충격을 먹었다.
*김진향의 이야기는 파파이스 86회 44분 경에 들을 수 있다.


일반적인 부가가치의 개념


4.

현 시기 아이들의 문제를 두 가지로 압축하면,
첫째, 부끄러움이 없다(적다).
둘째, 자기기만에 능숙하다(쉽다).
내가 보기에는 당연히 부끄러울 짓을 태연하게 저지르고 나서 "뭐 그럴 수밖에 없었잖아!"하고 자기합리화를 한다.
부끄러움도 학습이 필요하다. 염치의 자각이 본능은 아니다. 
정리하면 부끄러움에 대한 교육은 부족한데,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자기기만(self-deception)은 무의식적으로 학습된 것이다.
결국 부모와 가정교육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앞으로 계속 진행될 고민거리다.


배경은 산방산


5.

지난 19일 거문오름에 다녀왔다. 거문오름과 주변의 5개 용암동굴을 묶어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록했단다. 만장굴은 규모가 대단하고 용천동굴 등 나머지 동굴은 용암동굴과 석회동굴 양쪽의 성격을 다 가지고 있어서 세계적으로 희귀하다고.... 동굴은 만장굴만 일반공개하고 있다.
거문오름은 인터넷 사전신청이 아니면 방문 불가다. 정오 시간에 출발하는 순서를 예약해서 11시 반에 아이들과 방문하니,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4D 영화를 20분 정도 상영한다. 덕분에 한라산 오백 장군 전설을 알게됐고, 23일 한라산 영실코스로 병풍바위에 올랐을 때 도움이 됐다.
정오팀 일행은 열 댓명 정도. 우리를 이끌고 2시간 반동안 함께 걷고 설명해준 안은정 해설사님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분이다.
제주방언, 오름의 유래, 오름이 민둥산인 이유, 화산의 지형적 특성, 제주에 해안가에서 용천수가 솟는 이유, 거문오름의 지리적 특성, 송이(스코리아;자갈 모양의 화산재)의 지질학적 역할 등에 대해 쉽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잘 설명해주셨다.
해설사와 동행만큼 좋은 현장교육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은정 해설사 선생님이 특히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제주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듣는 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4.3의 아픔도, 이를 극복한 제주사람들의 당당함도, 제주의 문화와 자연환경을 사랑하는 극진한 마음도 모두 내게 전달됐다.
누구든 거문오름과 동백동산에서 안은정 해설사를 만나면 행운인 줄 알아야 한다.


안은정 해설사와 함께


6.

서귀포 안덕에 있는 군산에 올랐다. 군산오름이라고도 하고 군뫼오름이라고도 한다. 지역민들은 그냥 '군산'이라고 부른다고.
춘천 강원대부고 김현진 선생님의 강추에 의해 검색해서 찾아갔다. 과연 김샘 말씀대로 360도 파노라마가 장관이다. 북으로 한라산과 주변 오름들이 선명하고, 남으로는 가파도 마라도가 수면에 얇게 칠해놓은 듯 살짝 솟아 있다. 동쪽 가까이 송악산과 산방산도 선명하고, 서쪽으로 서귀포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특별한 경관이다.
이곳 군산에 일본군들이 제주민을 동원해서 암석을 뚫고 판 인공동굴이 여러 개 있다. 아래와 같은 안내판이 있다.

진지동굴 구축배경  
진지동굴은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제주도에 들어온 일본군에 의해 우리나라 민간인을 강제 동원하여 만들어졌다. 일본군 정예병력 7400여 명을 제주도에 주둔시키면서 해안기지와 비행장, 작전수행을 위한 도로, 각종 군사시설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만들어진 것이 진지동굴이다. 미국 폭격기에 대비하여 일본군들은 이 진지동굴들을 군수 물자와 보급품 등을 숨기고 일본군의 대피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여기 진지동굴들은 일제의 잔재물로, 우리에겐 가슴 아픈 역사의 상처가 남아있는 현장으로 근대 전쟁 문화유산이기도 한 진지동굴을 평화교육의 장으로 보존 활용하고자 한다.

원폭에 의해 갑자기 태평양전쟁이 종식되지 않았다면 일제는 태평양전쟁 수행 중 무너진 남양군도 전선을 제주도로 후퇴시키고 미군과 맞서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심산이었다. 5만의 일본군이 제주로 들어왔다. 제주민을 강제로 동원해서 오름과 절벽에 곳곳 진지동굴을 팠다. 절벽에 뚫은 동굴에는 폭탄과 배를 숨기고, 오름에 만든 동굴에는 물자와 군인을 숨겨서 엄청난 전쟁을 제주도에서 벌리겠다는 계획이고 실제 진행하는 중이었다. 
일본 땅을 놔두고 왜 한반도와 제주도에서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벌이는가. 청일전쟁은 어땠는가. 이들은 경복궁을 시작으로 조선 전국토에서 전투를 벌였고, 청일전쟁은 실제로 조일전쟁의 성격이었다. 당시 일본군에 희생된 조선농민군의 규모는 수십 만명이었다. 
왜 중국이 오늘날 제주도 부동산 구입에 혈안인가. 한 세기 전 갑오년에 일본은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무작정 인천을 통해 한양으로 파병하였다. 이제 반대로 중국이 자국민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겠다며 미일 동맹군에 대항하며 제주를 전선으로 삼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이런 흐름에서 강정해군기지를 막으려는 제주주민의 노력은 너무나 당연하다. 곳곳에 "평화의 섬 제주"라는 간판을 걸어놓았는데, 70년 만에 전쟁을 상정한 군사시설을 제주에 들인다는 것을 받아들일 자는 전쟁미치광이 밖에는 없는 것이다.


7.

제주에 머물던 어느날 자다가 눈이 떠졌다. 쉽게 다시 잠들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안철수가 떠오른다.
그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지 못한다. 왜 정치를 하고 왜 지금의 모습을 보이는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TV에 등장할지 가늠이 어렵다.
그런데 내가 안철수라면 지금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상상놀이에 빠졌다.
상상의 결과부터 말하자면 안철수가 2017년 대선에 새누리당 후보로 나선다는 것이다.
만약 내 상상대로 안철수가 새누리당 대선 후보라면 압도적으로 당선될 것으로 본다.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부정과 개표부정에 따른 정권의 정당성 시비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다. 박근혜도 동시에 개표부정 시비를 털어버릴 수 있다.
박근혜가 죽었다 깨나도 절대 김무성에게 배턴을 넘겨줄리 만무하다. 차기가 김무성 대통령이라는 것은 박근혜의 감방행을 말하는 것이리라.
92년 대선의 복사판이 될 것이다. 내가 안철수라면 그런 생각을 할 것이란 말이다. 그건 청와대도 할 수 있고, 소설가 김한길도 할 수 있고, 김기춘도 상상하지 않겠는가.
이미 일간신문 만평에 국민의당이 DJP연합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90년 삼당합당으로 가는 중간 단계일 뿐이라는 상상이다. 
안철수나 김한길을 비롯한 통민당에서 탈당한 의원들, 구 동교동계 일부 인사들이 하나 같이 정권교체를 위해 탈당해서 제3정당을 창당한다고 강조했다. 정권교체는 커녕 당장 4월 총선에서 몇 석 건지지 못하거나 건지더라도 호남 자민련에 불과할 것이란 예상은 불을 보듯 뻔한 건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90년 1월 삼당합당 발표가 전격적으로 있던 날 나는 전교조 서울 동북부지회 사무실에 있었다. 난 정치판을 읽지 못하는 27살 어린 교사였다. 그날 선배 선생님들이 충격 받고 어쩔 줄 몰라하던 표정이 기억에 선명하다. 아마도 다음해 소련 공산당 몰락 뉴스보다 더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충격적이지만 "걔들"은 그렇게 움직인다. 총선 이후 국민의당이 새누리당과 합당 선언을 하면서 90년 삼당합당을 재현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겠지만 청와대는 신의 한수라며 회심의 미소를 짓지 않을까 상상하며 다시 잠들었다.

(2016년 2월 16일~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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