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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규 Apr 28. 2018

왜 천 개의 고원에 침을 뱉는가

우리 아이들에 대한 관찰이 없다

로알드 달(Roald Dahl)은 좋아하는 동화작가다. 살아있다면 재작년에 100살이었다. 수많은 작품이 한국에도 번역돼 있지만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가 내게 있어 베스트 of 베스트 작품이다. 
그런데 로알드 달의 할아버지는 1820년 생이고, 아버지는 1863년 생이다. 내 기억으로 프로이트가 1853년 생, 슈타이너가 1861년 생이다. 내게 많은 영향과 영감을 준 작가가 100년 전에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슈타이너와 동시대 사람이라는 것은 시사점이 있다. 
로알드 달 작품에 나는 여전히 열광하고 있고, 여전히 프로이트는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슈타이너가 창시한 발도로프 학교도 전 세계에서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있다. 서양의 100년 전, 150년 전이 복사열 마냥 매개체도 없이 21세기 한국사회에 전달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도 있다. 로알드 달 아버지는 고향인 노르웨이를 떠나 웨일스에서 사업 성공으로 큰 부자가 됐지만 1920년 폐렴으로 사망했다. 별다른 치료도 해보지 못하고 죽었다. 아버지 죽기 한 달 전 로알드 달의 누나는 일곱 살에 맹장염으로 죽었다. 페니실린이 발명된 2차 세계대전 이후라면 죽지 않을 병이었다. 로알드 달의 아버지 사업이 번창한 것은 증기선과 관련 있다. 당시에 내연기관을 쓰는 선박은 없었다. 모두 석탄을 태워서 물을 끓이는 증기기관만 사용하는 선박이었다. 
어떤 이의 삶은 그 이가 살았던 시대의 환경과 한 몸이다. 디젤엔진을 쓰는 선박이 주종이라면 로알드 달의 아버지가 큰 부자가 아닐 수 있었다. 항생제가 있었다면 로알드 달이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로알드 달이 천재적 스토리텔러로 성장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살아있다면 102살인 로알드 달이 내게 미치는 영향은 현재형이지만 로알드 달을 구성하는 역사적 환경과 나를 구성하는 역사적 환경은 매우 다르다. 이런 간극은 큰 혼란을 준다.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면서 야기하는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나에게 전달되는 정보를 잘 구분하는 것이 인문학 공부의 핵심이다. 이는 마치 만선으로 돌아온 어부가 가장 먼저 그물코를 정리하는 것과 똑같다. 다음 출어를 보장하는 것은 그물코의 정리에 달렸기 때문이다.
슈타이너는 당대의 천재였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시대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슈타이너의 광범위한 연구는 대단한 업적이다. 하지만 슈타이너의 말씀과 주장을 100년이 지난 현재 그대로 가져온다는 건 지혜롭지 않은 것이다. 18세기에 태어나 19세기 중반 세상을 뜬 헤겔의 사상을 이해하는 건 중요한 공부이겠지만, 헤겔의 주장을 21세기에 그대로 드러내는 건 어리석다.
즉석에서 나만의 창작 이모티콘이나 아바타 이미지를 제작해서 유통하고, 지구 어디에서나 얼굴 보면서 통화할 수 있는 21세기 문명 환경을 고려하고, 그에 따라 달라진 언어소통을 하는 지금 바로 여기의 사람들을 관찰하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 청소년에 대한 것은 더욱더 비현실적이다. 비고츠키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는 '역사적인 아이'를 내다버리고 '영원한 아이'만 마주하고 있다. '영원한 아이'는 만들어진 개념일 뿐이다. 
서구의 개념에 우리의 현실을 구기고 잘라내서 억지로 꿰맞추는 게 한국의 지식인이고 학자다. 우리 사회의 불통은 여기서 비롯된다. 

천 개의 고원에 천 번 침을 뱉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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