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머니즘

"誅"의 새로운 인식

by 박달나무


#봉화에서50일
#7월20일
#수학을죽여살려

1.
무청이가 맥을 못춘다. 딱히 아픈 건 아닌데,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더니 샤워 후에 책상에 앉아있는 모습이 힘들어 보여서 방에서 쉬라고 하니 정오 넘은 시간에도 자고 있다. 근래에 없던 모습인데.....
아침에 마당에 나가보니 마당 수도를 틀어서 물이 대문 밖으로 흘러나간 자국이 선명했다. 많은 양은 아닌 걸 보니 꼭지를 틀고 1분 후 쯤 잠근 듯하다.
부엌 살림도구도 누군가 만진 흔적이 있다. 물컵을 과도하게 가지런히 정리한 걸 보니 무청이 짓이 분명한데 본인은 간밤 일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고.....
내가 먼저 잠드는 일은 거의 없는데, 간혹 내가 먼저 잠들면 무청이가 움직인 흔적이 아침에 발견된다. 신기한 일이다.
어쨌든 10시간 정도 잤더니 간만에 몸이 개운하다. 무엇이든 해치울 것 같은 기분이라서......
좀 불안하다. 이제는 의욕이 샘솟는 게 반갑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2.
최근에 사고실험하는 내용은 과거에 만났던 아이들을 자폐 스펙트럼의 관점에서(그들이 자폐 스펙트럼 범주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면서)재해석하는 것이다. 약간의 기록도 있지만 아이이름 ○○○라고 떠올리면 그 아이와 지냈던 일들이 매우 선명하게 떠오른다. 두 명 정도를 제외하고 자폐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울며 떼쓰고, 자기 고집대로 행동하는 과잉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이 의학적인 정의로서 자폐든 아니든(의학적 정의 또한 모호하다. 그래서 스펙트럼이란 표현을 쓴다) 일단 자폐의 증상을 보인다고 가정하고 다음 단계 사고를 이어간다는 거다.
이게 무척 실용적이다. 자폐로서 본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아이에게 패널티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아이의 변화에 대해 조급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적하며 벌을 주는 일이 전혀 없고, 아예 아이의 변화가능성을 매우 낮게 잡으면서 "증진"의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3.
아이들의 행동은 '보여주기 쇼'라고 믿고 있다.(과거에도 그렇고 현재도 마찬가지) 어떤 경우라도 혼이 빠져 자의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행동하는 일은 없다(좀비 상태가 되는 일은 현실에서 없다). 자기가 자기 행동을 보고 실시간으로 느낀다는 말이다. 조현병(과거 정신분열이라고 불렀던)을 가졌든 명백한 자폐인 경우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자의식이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할 때도 개입한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니까 잔소리가 가능하고 아이에게 감동감화를 주려고 말을 길게 했다. 언어를 통한 소통이 어느 정도는 이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이 상태가 어떻든 스킨십을 늘리고 말하려고 하지 말고 최대한 아이의 말을 듣고, 아이도 말이 없다면 물끄러미 바라보고, 아이가 사고를 쳐도 뒷감당만 하면 어떨까. 이런 상상의 핵심은 언어 소통을 최대한 줄인다는 것이다.

4.
최근에 아이들에게 말을 많이 줄였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았다.
그만 일어나/ 밥 먹자/ 샤워하는 게 좋겠다/ 그만 잘 시간이야
이 말 이외에 거의 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예외가 있다면 도형그리기를 통한 사고력수학 수업을 할 때다. 도형 스케치 방법을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감정을 뺀 목소리로 천천히 차분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아이들도 차분해지고 수업 흐름을 순순히 따른다.

5.
“벨 주” 자가 있다. 誅. 말씀 언 변이 뜻을 나타내고 붉은 주(朱)는 음을 나타내는 형성문자다. 칼로 벤다거나 고통을 준다는 뜻으로 쓰인다. 言이 한자에서는 직접적 고통을 가한다는 뜻이 있다. 誅求(주구), 誅罰(주벌), 誅殺(주살), 誅滅(주멸) 등에서 쓴다. 하나 같이 무시무시한 말이다. 말이 그만큼 위험한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말로 인한 고통에 오랫동안 노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른(교사)으로서 말을 줄일 필요가 있다. 말을 줄이면 아이들이 훨씬 편안해 한다. 신기하지만 그렇다.

6.
이건 <보스 보이>를 읽고 나서 깨달은 것이다. 전부터 계속 생각했다. 그러나 그걸 확신할 수 있는 계기가 없었는데, 자폐아 로완을 치료하는 과정을 보여준 <호스 보이>가 내 생각에 신뢰를 줬다. <호스 보이>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읽는 과정에서 책 속 문자를 읽는 것과 내 경험이 되살아나서 재조립되는 전혀 다른 투 트랙이 동시에 진행됐다고나 할까.

7.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심한 자폐 경우는 어떨까. <호스 보이>가 전하는 메시지는 두 가지다. 몸 전체를 쓰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가능한 상하로 진동하는 운동이 좋다)과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로완은 말을 탔고, 몽골에 가서 굿을 했다.
승마에 의한 상하 운동은 뇌의 가소성을 높인다. 흔히 말하는 투병 중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신체의 가소성에 의한 것이다. 뇌졸중 환자가 전신 마비가 됐다가 기적적으로 몸을 쓸 수 있는 건 파괴된 뇌의 신경계가 담당한 역할을 뇌의 다른 부위에서 떠맡아서 원활히 작동한다는 것이다.(파괴된 신경계가 되살아난 것이 아니라) 우리 어머니는 망가진 심장 내 관상동맥 역할을 심근 조직이 혈관으로 변신하면서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8.
승마는 자폐아의 뇌 가소성을 높인다. 승마 인스트럭터가 이런 메카니즘을 이해해야 한다. 적합한 인스트럭터를 알고 있으니 필요한 분에게 소개할 수 있다.

9.
무당, 샤머니즘, 굿.... 이걸.... 내가....
받아들이는 중이다. (완전하지는 않다)
어릴 때 굿당에서 굿하는 걸 많이 받다. 한번은 무당이 무아지경 상태에서 내게 칼을 던지는 바람에 기절초풍한 적이 있다. 물론 칼이 내 몸에 닿았다고 해서 사고가 생기진 않았을 거다. 굿을 할 때 쓰는 칼은 찌르거나 벨 수 있는 기능이 없다.(칼날이 흐물거린다)
일단은 깊은 신뢰와 간절한 기도 수준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10.
무청이는 점심 시간에 일어나서 밥 잘 먹고 생생해졌다. 내일 귀가해서 다행이다. 냉장고에 식재료가 똑 떨어졌기 때문이다. 다음 주 봉화 복귀할 때 잔뜩 장을 봐서 올 거다. 맛난 걸로 말이다.(아이들은 보통 가정에서 흔히 먹는 한식을 가장 좋아한다)
이제 두 주일을 더 보내면 봉화를 떠나 아이들과 여행길에 오른다. 비용 문제로 나라 밖으로 가지는 못하고 국내 여행으로 돌아다닐 예정이다. 초대하면 당연히 간다^^

11.
아.... 징징이와 공부한 수학내용을 소개한다. 수학에 대한 의견을 풀려고 했는데, 다음 일기로 넘긴다.
아래 그림은 모든 다각형의 외각의 합은 언제나 360도라는 법칙을 이용한 문젠데(중1과정), 성인반에서 수업할 때 카이스트 박사 출신 한분만 풀고 다른 네 분은 해결하지 못했다. 알고 보면 단순하지만 아이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주 복잡한 사고과정이 필요하다. 복잡하지만 아이들이 하나하나 밟아나가도록 충분히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징징이는 우여곡절 끝에 정답을 말하고, 정답이 도출된 과정을 잘 설명하고 수업을 마쳤다. 그 과정에서 그림처럼 작도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그리는 도중에 깨달음에 닿기 때문이다.

outer_angle_law_1.jpg



outer_angle_law_2.jpg 삼각형이 7개니까 a~g까지 일곱 개 각을 포함한 21개의 각의 합은 180˚×7=1260˚외각 두 세트는 720˚1260˚-720˚=540˚답은 540˚ 되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