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청이는 노루와 교감을 했을까
1.
어제 서울에서 봉화로 복귀했다. 8월7일까지 봉화에서 생활하고 서울에 가면 "봉화에서 50일 살기" 프로젝트는 막을 내린다. 마지막 2주가 시작됐다. 생전 처음으로 엄격한 룰을 지키는 시험(검정고시)을 치른다는 부담감과 어마무시한 더위가 걸림돌이다.
검정고시 낮은 난이도와 거실에 에어콘이 있다는 조건이 위안이 된다.
2.
봉화군은 3만 3천 명 인구지만, 면적은 서울의 3배에 이른다. 물론 대부분 산지(山地)고, 춘양목의 산지(産地)답게 청정환경을 자랑한다. 사람들은 그런 곳을 오지라 부른다. 내가 머무는 곳은 안동과 영주가 비슷한 거리에 있는 작은 동네다. 한달 열흘 지냈는데 정이 들었다. 충분히 그럴 만한 매력이 있는 마을이다.
사람들은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하고 한반도가 극동으로 불리는 것이 유럽 중심(그것도 백인남성을 기준으로 한)의 시각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내가 머무는 마을을 오지라고 부르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이곳은 오지가 아니라 내가 사는 마을이다. 그리고 나는 똑같은 한국 사람이고, 나는 소중하다.
3.
말로 의사 표현을 전혀 못하는 20대 중도(重度) 자폐인 청년을 알고 있다. 이 친구가 고등학교 졸업 후 어찌 생활하냐고 엄마에게 물었더니, 집 근처에서 여러 자폐 친구들과 그룹홈을 이루어 지낸다고 한다. 사회복지사 한분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돌본다니, 복지사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겠다.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복지재단에서 지원 받는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중도 자폐 청년이면 집에서 지내거나, 그룹홈에서 생활하거나, 도시에서 떨어진 곳의 복지시설(사실상 수용시설)에서 나이를 먹어가는 게 현실이다. 그게 뭐가 잘못된 것인지 조차 대부분 모른다는 것도 현실이다.
4.
무청이는 지난 제주 생활 중 4월18일에 하루 밤 동안 12시간 실종된 적이 있었다. 오후 6시, 올티스(유기농 차밭)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의 숙소로 혼자 걸어가다가 선흘리 곶자왈로 길을 잘못 들어 다음 날 아침 6시 반에 발견됐다.
그날 밤 갑자기 서리가 내려 올티스 5만 평 차나무 새순들은 몽땅 얼어서 잘라낼 수밖에 없는 냉해를 입었다. 아이는 반바지에 얇은 속건성 반팔 티를 입고 있었다. 아이를 찾아 나선 수백 명의 사람들은 추위와 싸우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선흘리 곶자왈은 유네스코자연유산에 등재된 거문오름 및 화산동굴군의 일부분인 벵뒤굴을 품고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야생 노루의 더없는 천국이다. 곶자왈에는 길은 커녕 사람이 드나드는 흔적 조차 없어서 낮에도 동네 사람이 방향을 잃는 곳이다. 4.3 때 희생된 분이 워낙 많은 숲이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그곳에 아이는 혼자 들어갔고, 밤새도록 12시간을 헤맸다. 그날은 음력 초사흘이었다. 밤에 달이 전혀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동사를 걱정했다. 새벽 5시에 하늘이 훤해지길래 다시 들어가보니 온통 가시나무 또는 가시가 달린 덩굴 투성이다.(종은 달라도 다들 가시를 품고 있더라) 아이는 온몸에 가시에 찔리고 긁히고 살점이 떨어진 상태에서 발견됐다.(신기하게도 얼굴은 단 하나의 스크레치도 없다)
아이는 무표정했다. 별로 춥지 않았다고 했다. 무섭지도 않았다고 했다. 뛰어다니고 때론 누워있기도 했단다. 가만히 앉아있기도 했단다. 붕괴된 벵뒤굴 안으로 떨어진 일도 있었나보더라. 무엇보다 수많은 야생 노루 떼와 가까이 만났다고 했다. 당시엔 한 귀로 흘리던 얘기다. 아이는 너무 목이 탄다고 물 마시고 싶다는 말만 했다.
병원에 다녀오고 마을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오전 11시 쯤 숙소에 돌아왔다. 나는 안도가 밀려오고 밤을 꼬박 새운 탓에 잠이 쏟아져서 자리를 펴고 누웠지만, 무청이는 전혀 아니었다. 상처 때문에 대강 샤워를 하고 나오더니 갑자기 책을 읽고, 영어 문장을 공책에 베끼고, 학습과 관련된 질문을 했다. 질문을 한다기 보다는 질문을 토해냈다고 말하는 게 맞다. 나는 졸려서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달라진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무청이는 사흘을 별로 자지 않았다. 늘 맑은 정신으로 예의 바르게 말하고 행동했다. 눈빛이 달랐다. 분명. 그리고 결정적으로 늘 복용하는 약을 반의 반으로 줄여도 되는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결국 스페인 한달 걷기 때 약통을 버렸고, 지금은 약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숲에서 생환한 직후 같진 않아도 아직까지도 낯빛, 눈빛, 식습관, 투약, 말투, 취침시각, 취침시간 등이 달라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그날 밤, 내 손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칠흑 같던 밤에 무청이가 노루 떼를 만났다고 말한 것에 주목한다. 노루가 사람을 공격하는 짐승은 아니지만, 덩치가 크고 캄캄할 수록 안광이 선명하기 때문에 깊은 밤 숲 속에서 만나면 무서운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무청이는 무섭지 않았다고 했다. 난 한밤 중 혼자서 고갯길을 걷다가 고양이를 만났는데 머리칼이 서더라.
5.
당시 무청이의 행적과 발견됐을 때 모습과, 그후의 극적인 아이의 변화를 다시 반추하는 것은 최근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인간은 자연환경, 특히 동물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제주의 동네 사람들은 비인간의 영역에 4.3 원혼들을 중심에 두려고 했다. 제주식 간이 굿인 넋들이를 하라고 여러 사람들이 조언했지만 실제로 굿에 가까운 이벤트를 하기엔 우리들 스키마 작동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청이는 노루와 어떤 교감을 이루었을까. 무청이가 표현에 약하고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당시 일을 캐물어도 별도 들은 게 없다. 무섭지 않았다는 건 억지로 이해할 수 있다. 공포감도 상당 부분 학습에 의한 것이라고 이해하니까. 하지만 춥지 않았다는 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수색에 나섰던 모든 사람이, 제주 사람까지도 4월 제주의 맹추위에 대해 혀를 내두르며 껴입을 수 있는 모든 걸 이중삼중으로 입고도 힘들어했는데, 반바지 반팔 차림의 아이가 춥지 않았다고 하는 걸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뭔가가 있다. 내가 안다는 범위는 얼마나 좁디 좁은가. 참으로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