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방법

전인미답의 길을 걷다

by 박달나무

#봉화에서50일
#7월27일
#마지막방법
#홋카이도여행

1.
차량이 없고, 날씨 탓에 밖에 나갈 수가 없다. 아이들도 싫어하고 나도 나갈 엄두가 안 난다. 몇 날 몇 일을 실내에서만 지낸다는 건 부작용이 많다. 모든 상상의 활동을 8월8일 이후로 미룬다. 그날은 검정고시 응시일이다. 하지만 그건 핑계다. 천렵을 간다거나 계곡에 발이라도 담근다거나, 가까운 명호천에서 래프팅을 한다고 해도 검정고시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검정고시 문제가 워낙 쉽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게는 검정고시 응시요령의 노하우가 있다. 누구라도 검정고시에 합격시키는 일은 시원한 아이스커피 마시기와 같다.
아이들의 학(습)력은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일단 검정고시 합격에 불안함이 없으니 긴장감도 없다.
아이들은 학습활동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공부를 멀리하는 건(구체적인 표현은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며 기억하는 활동") 시대적 현상으로 생각하고 늘 고민하며 관찰하는 테마다.

2.
아이들 부모들이 검정고시 이후 장기 여행을 부탁했다. 내 사정상 열흘 정도만 가능하다.
급하게 알아보고, 예약하고, 코스 설계한 것이 9일 간의 홋카이도 여행~ 모든 것이 비싸다. 여행 극성수기이라서 겨우 렌트카를 잡았다.
차 없이 넓은 홋카이도를 다닐 수 없는 법이다. (홋카이도는 남한 면적의 80%)
패키지는 성인 위주의 취향으로 설계돼서 우리 아이들에게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개성 때문에 다른 일행과 함께 다니는 건 내게 고통을 주는 일이다. 아이들도 패키지 여행은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패키지는 비용도 상당히 비싸다.
8월 항공편은 거의 두 배 가격이다. 호텔이나 에어비앤비로 방 구하기도 '허걱'소리가 나온다.
여행 중 3박4일은 하코다테 근처 오누마 국립공원 가까이 있는 Paard Musée 목장(大沼流山牧場)에 머물 예정이다. 아주 넓은 초원에 게스트하우스를 따로 운영한다.
홋카이도 여행을 선택한 것은 이 목장에 가려는 의도가 가장 크다. '말과 함께 하는 심리적 치유(Equine Assisted Psychotherapy)'를 이해하고 시도하는 목장이기 때문이다.

3.
EAP를 한국에서 진행하는 목장을 만들겠다고 알아보고, 찾아가고, 세미나를 열고 하는 활동을 한 게 2년 전부터다. 돈이 한 푼도 없는 사람이 진행하기엔 높은 벽이 있었다.
그러던 중 EAP와 접목하려고 구상했던 어린이 전용 인도어클라이밍센터가 전북 완주군에 지난 5월에 문을 열었다. 군비와 국비를 동원했다는 것. 보도를 확인하는 순간 앗! 소리가 절로 났다. 미국 업체의 노하우를 그대로 가져온 것인데, 누군가 완주군을 설득했다고 하니 기쁜 일이면서도 내 게으름과 무능을 탓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과 완주군 고산면에 있는 놀토피아에 가야겠다.

4.
오랫동안 아이들의 부도덕한 언행에 끌탕을 하면서 고쳐보려고 했다. 잘 안 된다. 물론 아이들은 나름 성장해서 제 나이에 맞는 자리에서 잘 살고 있다. 다만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불만과 부족함과 열등감이 있었다. 내가 시도하지 않은 방법은 단 한 가지.
이제 마지막 남은 방법을 사용할 때가 됐다. 그건 아이들의 부도덕을 부정하는 것이다. '부도덕'이란 말에 평가가 들어있다. 그리고 평가자는 기성세대인 '나(선생)' 또는 부모들이다. 평가자로서 나를 지워버리는 것이 마지막 방법이다. 평가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평가의 과정(결국 교육과정)에서 벗어나서 고유의 자기 빛깔을 되찾을 것이다. 원래 아이들은 죄가 없다. 도덕도 부도덕도 아니고, 천재도 둔재도 아니고, 비장애도 장애도 아니다.
그런데 인간이라면 판단 기준을 가진다. 그게 음식에 대한 호불호이든 철학적 견해이든 숙명적으로 입장과 견해를 가진다. 입장과 견해에서 벗어날 재간이 없다. 그래서 아이를 비인간과 만나게 하는 것이 마지막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는 인간이 '교육'하려고 하지 말자. 아이가 비인간과 만난다는 것은 자연 속에 있다는 것이고, 숲에 들어간다는 것이고, 동물과 만난다는 것이고, 영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비인간은 우리 아이들을 평가하려고 하지 않는다.

5.
남은 여생은 전인미답의 새로운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실현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전인미답이라고 하면 안 된다. 나에겐 시도하지 않은 마지막 방법이지만 이건 오래된 미래라고 해야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