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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규 Sep 21. 2018

자폐아 치유보고서

아버지 루퍼트 아이잭슨과 아들 로완의 경우

호스보이(The Horse Boy)를 소개합니다.
루퍼스 아이잭슨이 지었고, 2010년 이미지박스에서 출판했지만 현재는 절판이고 출판사도 폐업 상태입니다. 루퍼트 아이잭슨은 2009년 부산영화제에 다큐분야에서 The Horse Boy를 출품하고 화제가 됐습니다. 다큐 영화 이후 책으로도 출판한 책이 소개하는 이 책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저는 자폐 아동의 상황이 호전된 유일한 예로 루퍼트 아이잭슨의 아들 로완 경우만 알고 있습니다. 다른 예는 확실한 정보가 없어서 믿을 만하지 않습니다. 루퍼트 아이잭슨이 자폐 아들 로완과 함께 진행한 “실험”은 관심을 가질 만 합니다.
저도 초등2학년 자폐 소년과 일 년을 살면서(학생과 선생의 관계로) 말(horse)이 자폐 아동에게 특별하게 행동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아래 로완에게 보인 베치(말 이름)의 태도와 거의 유사합니다. 아이도 말 앞에서 보이는 행동은 평상시와 많이 달랐습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부터 그랬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호스보이> 책을 알았고, 읽으면서 등에 전율이 흐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른바 EAP(말 매개 심리치유)에 대해 더욱 집착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호스보이>는 신청(아래 전화번호 문자로)하시는 분께 복사제본한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연말이나 내년 초에 루퍼트 아이잭슨을 한국에 초대해서 이야기 나누는 행사를 갖고 싶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관련한 분들이 텍사스로 아이잭슨을 만나러 가도 좋다고 봅니다. 저는 함께 고민하는 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저는 박준규입니다. 010-2301-2398/junkyup@hanmail.net 언제든 연락주세요.     


32쪽 두번 째 줄부터~

치료시간이 끝나자 나는 머리를 식힐 겸 로완을 데리고 산보를 나갔다. 낯익은 오솔길을 따라 종종걸음을 치는 그의 뒤에서 나는 어슬렁어슬렁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로완이 예기치 않게 전에 가본 적이 없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나무 사이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놀라서 그를 쫓았다. 로완은 숲을 벗어나 우리의 땅과 이웃인 스태퍼드의 목초지의 분기점인, 터부룩한 풀들이 난 좁다란 지대로 달려갔다. 로완은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달려갔다.

로완은 철조망을 통과해 다른 쪽에서 풀을 뜯고 있던 다섯 마리의 말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그러더니 킥킥 웃으면서 땅 위에 벌렁 누워버렸다. 그것도 우두머리 암말 바로 앞에서. 베치라고 불리는 커다란 단거리 경주마였다. 나는 얼어붙었다. 로완이든 나든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조금만 움직여도 말이 놀라서 로완이 발굽에 짓이겨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 암말을 알았다. 그 말은 탈 때는 조용했지만 다른 말들에 대해서는 심술궂기로 유명했다. 그 말은 의문의 여지가 없이 다른 말들의 두목이었다. 성가시게 구는 사람한테는 발굽을 사용하고 풋내기 기수는 바로 헛간으로 보내버리는 짓을 주저하지 않을 유형의 말이었다.

그 말은 숨을 내쉬면서 다른 네 마리의 말들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자기 발치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이 낯선 작은 인간의 등장에 놀라야 할지 말아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때 그 말이 꼬물거리고 있는 로완의 부드러운 몸 위로 머리를 낮췄다. 로완은 말발굽에 너무 가까이, 너무 위험하게 노출된 상태였다. 말이 고개를 낮추고 그를 핥았다. 말 나름의 복종의 표현이었다.

나는 말이 놀라지 않도록 서서히 접근해 가면서 내가 놀라운 것을 목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이 자기 앞의 땅에 누워 있는 아이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말을 훈련시켜봤지만 그러한 일은 본 적이 없었다. 나의 아들은 말과 직접적인 끈이 닿아 있는 것이었다.

눈물이 나왔다. 그 습한 6월의 어느 날, 그러려고 한 게 아니었음에도 소리 없이 눈물이 흘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저 아이에게는 말의 유전자가 있구나, 하지만 저 아이는 자폐아다. 나는 그것을 저 아이와 함께 나눌 수 없겠구나. 저 아이에게 말을 타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도 없고, 이 기쁨을 나눌 수도 없겠구나.”

부모가 얼마나 틀릴 수 있는지 생각하면 놀라울 뿐이다. (중략)


41쪽 아래서 두번 째 줄부터

그의 강박관념, 정서적인 무절제와 대소변을 못 가리는 버릇(세 살이 된 그는 그의 부모,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때로는 전문가들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아직 완전히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은 더 나빠진 게 아니라면 전과 마찬가지로 나쁜 상태였다. 그런데 내가 집에 오기를 기다리면서 그가 매일 입에 담았던 하나의 단어가 있었다. “말(horse)"이라는 단어였다.

그래서 나는 그날 저녁, 9월을 향해 가는 빛 속으로 로완을 데리고 나갔다. 다시 한 번 숲에서 산책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곧장 나무들 사이를 지나 스태퍼드의 방목장으로 향했다. 로완은 울타리를 통과하자마자 그 구렁말, 말들의 대장인 베치를 향해 곧장 뛰어갔다. 6주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내가 미처 제지하기도 전에 그는 말의 발굽 앞에 몸을 던졌다.

다시 한 번 기적이 일어났다. 말이 고개를 숙였다. 자발적인 경의에서였다. 말은 전처럼 내 자폐아 아들한테 자진해서 복종하며 그를 핥았다.

말이 그를 향해 코를 킁킁거리자 로완이 좋아했다.    

 


414쪽 에필로그          

텍사스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런던에 도착하자 거의 즉시, 로완은 강박 관념적인 행동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에 걸친 울화가 이어졌다. 우리를 오스틴으로 태워다 줄 비행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런던에서 세 번째 날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내 부모님의 집과 가까운 번잡한 중심도로를 걷고 있었다. 로완이 팔을 내두르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퇴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거리에 서서 그가 팔을 내두르며 머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날 저녁, 크리스틴과 나는 로완을 데리고 부모님 집을 나서서 런던 북부의 중앙에 있는 햄스테드 히스로 갔다. 한때는 노상강도들과 매춘부들과 목동들과 사슴들의 서식지였던 그곳은 이제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아직도 기적적으로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었다. 나는 자연으로 데리고 가면 퇴행이 멈출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로완을 그리로 데려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로완이 기차 유리창 밖으로 지나가는 런던의 지붕들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했다.

우리는 거대한 떡갈나무 밑을 걸었다. 로완은 나를 앞질러 뛰어갔다. 로완은 그 앞에서 뛰어가는 검정색과 흰색이 뒤섞인 까치들을 쫓아갔다. 회색 다람쥐 한 마리가 후다닥 나무로 올라가더니 가지 위에서 그를 향해 무슨 소린가를 내자 로완은 깔깔 웃었다. 갑자기 그가 크게 웃으면서 나를 향해 달려왔다.

“간지럼 태울 시간!”

로완이 다시 분명하게 말을 하는 걸 듣자 안도감이 들었다.

“작은 생쥐 간지럼, 아니면.”

그가 내 말을 자르며 말했다.

“이따 만 하게 큰 코끼리, 들소, 코뿔소, 푸른 고래 간지럼!”

큰소리로 웃으며 머리로 내 배를 들이받았다. 나는 그렇게 하면서 내가 느끼는 두려움을 쫓아버리려고 했다.

우리는 저녁이 될 때까지 산책을 하면서 새도 보고, 거대한 런던 분지 위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도 바라보았다. 자연 속으로 들어오자 그는 다시 한번 침착해졌다. 하지만 나는 이게 얼마나 오래갈 것인지 못내 궁금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영원히 그랬다. 고스테(몽골 북부 타이가 숲 속의 샤면; 로완은 울란바토르부터 고스테가 있는 곳까지 일주일을 차와 말을 타고 가서 샤먼에게 20분 동안 치료를 받고 왔다. 그 여정을 기록한 것이 The Horse Boy 책과 다큐 영화다)의 여름 캠프로부터 산을 내려온 지 일주일 후, 런던에서 있었던 그 마지막 사건이 우리가 본 마지막 장애 행동이었다. 로완의 대소변 가리기는 나빠지지 않았다. 우리가 미국에 돌아갔을 때쯤 로완은 스스로 화장실에 다녔다. 그로부터 곧, 크리스틴(로완 엄마)이나 나는 더 이상 그 문제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지난 3년 동안 로완의 어깨에 이무기처럼 앉아 있던 악마들인 울화와 활동 과다의 불안은 우리가 텍사스로 돌와온 지 한 달쯤 되자 완전히 그를 떠났다.

우리는 완전히 달라진 아이와 함께 돌아왔다.

크리스틴과 나는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어쩌면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자폐증 전문가인 사이먼 배런 코헨 박사와 상담을 하기 위해 캠브리지 대학을 찾아갔다. 나는 그가 주장하는 모든 이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그는 자폐증의 확산이 다수의 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환경오염의 결과가 아니라 자폐증이라고 진단하는 경우가 늘어나서 생긴 결과라고 생각했다. 크리스틴은 심리학 교수의 특성을 발휘하여, 만약 진단이 늘어나서 그런 것이라면 전에 자폐적이라고 생각되었을지 모르는 다른 형태의 정신 상태에 대한 진단이 감소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따졌다. 그들은 서로 의견이 달랐다. 하지만 배런 코헨 박사가 말한 것 중에 남는 것이 있었다.

“자폐증이 치료할 필요가 있는 것이냐에 대한 논란이 앞으로 점점 많아질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것은 개성의 한 유형에 더 가까울지 모르니까요.”

돌아오자 로완의 학력 상태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다. 그는 다섯 살인데 일곱 살 수준의 책을 읽고 있었다. 석 달이 지나자 그는 여덟 살 수준의 책을 읽었고 밤에는 책을 읽다가 혼자 자기 시작했다.

나는 로완이 투무와 나누었던 것 같은 관계가 일회적인 것이 아닐지 걱정했다. 하지만 미국에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나지 않았을 때, 한 친구가 우리와 같이 말을 타려고 그녀의 어린 의붓아들 개빈을 데리고 왔다. 로완과 개빈은 금세 친구가 되었다. 몇 주 후, 이웃 아이들 중 절반이 말을 타려고 몰려왔다. 몽골에서 돌아온 지 몇 달 후, 로완이 여섯 번째 생일을 맞았을 때쯤에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져 떠들썩한 아이들을 위한 정식 생일파티-그의 첫 생일파티였다-를 해줘야 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이 로완의 친구라고 생각했다. 거기 모인 아이 중 한 아이만이 자폐 증상을 갖고 있었다. 로완의 생활은 이제 여느 아이와 똑같아졌다.

내가 걱정하는 또 다른 문제는 말을 타는 것이었다. 우리가 베치를 같이 타는 황금기도 몇 년에 지나지 않고, 로완의 몸이 너무 커져 더 이상 편안하게 나와 말을 탈 수 없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내 안에 오랫동안 도사리고 있었다. 여섯 살이 될 때쯤, 그의 몸은 그 정도로 커져 있었다.

우리가 처음에 집에 오자 베치는 늘 그랬던 것처럼 고분고분하게 로완을 맞았다. 우리는 전에 그랬듯이, 우리 집 주변에 있는 들과 초원과 피칸 나무 숲에서 말을 같이 탔다. 하지만 돌아온 지 몇 주 후부터 나는 마지막 몇 백 미터를 남기고 먼저 말에서 내려 헛간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고 말에 타지 않기 시작했다. 대신 나는 고삐를 쥐지 않고 베치에게 로완을 태운 채 내 옆에서 걸으라고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내고 걸어갔다.

로완은 처음에는 그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

“아빠, 타!”

“뭐라고? 뭐라고?”

나는 늙고 미친 영국 대령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안 들리는 척하면서 장난을 쳤다. 그리고 말 위에 앉아 있는 그에게 간지럼을 태웠다. 로완은 깔깔거렸다. 베치는 내 아들과 나 사이에서 귀를 앞뒤로 쫑긋거리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헛간에 돌아왔을 때, 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고삐를 잡아당기고 ‘워’라고 말해봐.”

로완이 놀라서 그렇게 했다.

“워.”

베치가 걸음을 뚝 멈췄다.

다음 날 우리는 그 연습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에 왼쪽으로 몸을 피하며 말했다.

“아빠 쪽으로 고삐를 당겨라!”

로완은 당황한 것 같았다.

내가 다시 말했다.

“아빠 쪽으로 고삐를 당겨라!”

로완이 그렇게 하자 베치는 양처럼 순하게 나를 향해 돌아섰다.

다음 날, 우리는 두 가지를 다시 연습했다. 나는 이번에는 다른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도 주문했다.

그렇게 나는 날마다 5분 이내에서 로완이 혼자 말을 타도록 했다. 시간을 그렇게 제한한 것은 그가 싫증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한 달쯤 되자 로완은 자신 있게 베치를 세우고 방향을 바꿀 정도가 되었다. 나는 점점 더 거리를 많이 뒀다.

어느 날 베치가 풀을 뜯으려고 고개를 숙일 때 내가 소리쳤다.

“고삐를 당기고 발을 차봐!”

로완이 내 말대로 했다. 말이 순순히 따랐다. 때마침 테리 아저씨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로완이 혼자서 말을 타네요! 로완, 가엾은 베치를 언제쯤 평화롭게 놔둘 거니?”

그날 저녁 늦게,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스태퍼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줬다. 그가 건배를 하면서 말했다.

“루퍼트, 내 생각에 얼마 안 있으면 당신은 불평할 게 아무것도 없겠어요.”

나는 내 이웃이자 친구인 친절한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가 만약 그의 말과 땅에 접근하는 걸 허락해주지 않았다면 내 아들은 결코 이렇게 멀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었다.

이때쯤 나는 다른 말을 구입했다. 클루라는 이름의 텍사스 경주마였다. 베치에게 가해지는 부담도 좀 덜어주고(그 말도 아이들을 잘 대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한편으로는 다시 승마를 하기 위해서 구입한 것이었다. 뛰어오를 수 있는 말을 갖고 싶었다. 시간이 허락하면 자폐증이나 아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혼자서 말을 타보고 싶었다. 내가 처음에 클루를 타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자, 로완은 클루를 타지 않으려 했다. 그는 베치한테 헌신적이었다. 하지만 1~2주가 지나자 그도 새 말을 타기 시작했다. 매일 조금씩 더 그랬다. 크리스틴이나 내가 옆에서 산책을 하는 동안 로완은 새 말을 탔다.

나는 로완을 위한 치료의 일부로서만 말을 타던 것에서 이제는 벗어나 있었다. 나는 전혀 새로운 방향을 찾아냈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조마(調馬)를 전문으로 가르치던 조마사를 찾아냈다. 조마는 가장 복잡한 형태의 곡마술인데, 말이 사람을 태우고 춤을 추도록 훈련을 시키는 기술이었다. 나는 승마술 중 최고의 비법에 해당하는 그 기술을 늘 갈망해왔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늘 내 능력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몽골에서의 경험이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해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나는 불안감을 밀어내고 훈련을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가장 어려운 형식의 승마-예술 형식으로서의 승마-를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더 깊고 더 복잡한 형태의 승마에 몰두하면서, 내 안에 있는 호스 보이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새해의 첫날, 로완은 한 번에 두 시간 정도까지 혼자서 말을 탔다. 내가 문을 열어줄 때 말을 멈추고 말머리를 돌릴 줄도 알았고, 말이 풀을 뜯어먹으려고 할 때는 몰아칠 줄도 알았다. 또 내가 로완을 위해 들판에 원뿔 표시로 만들어놓은 구불구불한 길로 말을 몰고 가기도 했다. 그는 유목민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말을 타고 있었다.

크리스틴과 나는 낭만적인 삶을 되찾았다. 로완의 삶이 안정되면서 베이비시터들을 고용할 수 있었고, 우리는 밖에 나가 진짜 데이트를 즐기며 저녁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레스토랑에 가서 나의 아름다운 아내와 마주 앉아서 그녀의 짙은 갈색 눈-그녀의 눈은 검은색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짙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 가운데에서는 작은 불빛들이 춤을 췄다-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 자체로 계시였다. 그렇게 해본 지가 너무 오래였다.

새로움에 우리 두 사람은 놀라고 있었다. 그녀가 저녁을 먹으며 말했다.

“루, 우리가 순록 부족한테서 돌아왔을 때, 내가 화를 내고 아프고 우울해했던 거 기억해?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샤먼한테 가서 치료해달라고 했었잖아. 나도 치료가 된 것 같아. 그때 부정적인 모든 것, 부정적으로 살았던 모든 세월이 나한테서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런 것을 부수고 정리하느라고 내가 그랬던 것 같아. 이제는 새로운 창조적 에너지가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기분이야.”

그녀는 그 달부터 자기연민 행위에 관한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몇 달 후 에이전트와 출판사를 찾아냈다. 나는 그녀가 그렇게 만족스러워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우리에 관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모든 부부들이 그러한 것처럼 아직도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로완의 회복은 우리에게 다음에 뭘 할 것인지를 돌아볼 여유를 줬다. 더 이상 우리는 로완과 그의 자폐증만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로완의 회복이 가져다준 선물 중 하나 이리라.

로완은 아직도 자폐적이다. 그의 본질과 많은 재능들이 모두 그것과 연관이 있다. 그를 괴롭혔던 끔찍한 장애들, 즉 육체적. 정신적 자제력의 결여, 신경학적인 폭발, 불안함과 활동 과다 등은 고쳐졌다. 하지만 그는 완치된 게 아니었다. 나도 그가 그렇게 되는 걸 원치 않는다. 자폐증을 떼어낸다는 의미인 그 말은 아주 잘못된 것처럼 보인다. 정상적인 신경계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도 양쪽에 발을 딛고 두 개의 세계 사이에서 헤엄칠 수는 없는 걸까?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한 발은 자신의 모국어와 문화에, 다른 발은 서구에 딛고, 두 개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그것은 풍요로운 위치다. 자신의 세계의 마법을 유지하면서도 우리의 세계에서 수영하는 데 필요한 기술들을 로완이 계속 배울 수 있을까? 실현할 수 있는 꿈이라고 믿는다.

몽골에서 돌아온 후, 나는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을 위한 승마 프로그램을 시작할 부지를 구입하기 위한 비용을 모금했다. 커다란 피칸 나무, 느릅나무, 뽕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워 텍사스에서 가장 더운 날에도 산들바람이 부는, 15 에이커(약 1만 8천 평)에 달하는 눈부신 땅이다. 허물어져가는 낡은 농가 한 채가 그곳에 서 있다. 아이들이 놀고 말을 타고 배우고 행복해할 수 있는 곳이다. 농가가 서 있는 도로의 이름이 “새 길(New Trails)”인 것도 어쩌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https://youtu.be/TaUHFBlO8Yw

(직캠) 말이 아이에게 입을 갖다대고 코로 냄새를 맡는 건 자발적 복종에 해당한다. 둘은 처음 만난 자리였다.

나는 뒷베란다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홍관조 한 마리가 내 주변에서 노래를 한다. 텍사스의 봄비가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숲에서는 새로운 연두색 잎들이 돋아나고 인부들이 옛 농가의 리모델링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 말들과 다른 동물들을 구입하고 직원들을 채용했다. 여러분이 이 책을 구입해 생기는 수익의 일부가 말을 이용한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을 댈 수 없는 가족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될 것이다.

동시에 나는 이메일을 보내고 아프리카에 전화를 걸고 또 받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고스테가 우리에게 얘기했던 것처럼, 이번 여름에 로완을 칼라하리 사막으로 데려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보츠와나 입국을 금지당하고 있기 때문에, 로완의 샤먼 아버지인 베사가 처음으로 보츠와나 밖으로 나와 이웃나라인 나미비아에서 리틀 베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어떠한 치료를 받을까?

로완이 내가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방충망이 달린 베란다 문 앞에 막 나타났다. 그는 친구들을 보고 싶어 한다. 아델리나, 개빈, 아너, 아리엘라, 애니, 베시가 그의 친구들이다(그들 중 아무도 자폐증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보통 토요일 오후에 그들을 만나 베치, 클루, 타즈, 찬고라는 이름의 늙은 검정말을 같이 탄다.

나는 로완에게 방금 이렇게 얘기했다.

“비 때문에 취소해야겠다. 하지만 며칠 후엔 볼 수 있을 거야.”

“지금 보고 싶어요!”

나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말한다.

“로완, 너는 칭얼대다가......”

나는 여기에서 단순히 타이르는 것보다는 우스꽝스러운 말을 하려고 머리를 굴린다.

“칭얼대다가 네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누군가랑 36년 동안 돼지기름 통 속에 거꾸로 앉아 있고 싶은 거니?”

이렇게 말하자 그가 깔깔 웃는다. 그는 장난을 이해하고 나를 재촉한다.

“아니면.....?”

“아니면 착하고 조용하게 있다가 다음번에 친구들을 만나 달나라에 가서 자전거를 타고 싶니?”

로완이 깔깔깔 웃는다. 로완은 동물원 기차놀이를 하려고 가버린다. 하지만 금세 돌아온다.

“아빠.!”

나는 고개를 든다. 로완이 얼굴에 짓궂은 웃음을 띠고 방충망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다.

“달나라에 가서 자전거를 타고 싶어요!”

같은 해 4월이었다. 어느 날 밤, 우리는 말을 타러 갔다. 나는 걷고 로완은 베치의 넓은 갈색 등에 똑바로 앉아 있었다. 나는 보조를 맞추지 않고 뒤에서 따라갔다.

마구간에서 나올 때 내가 말했다.

“헤이, 로완. 아빠가 문을 열어줄 테니 고삐를 잡아당겨 베치를 세워.”

로완은 시키는 대로 내 뒤로 말을 몰고 와, 내가 몸을 구부려 사슬을 다시 묶을 수 있게 했다.

“이제는 말을 타고 가라. ‘베치 가자’라고 말하고 배를 차라.”

로완이 베치의 옆구리를 차며 말했다.

“베치, 가자.”

베치가 완만한 속도로 뛰어갔다. 나의 아들은 균형을 잡고 앉아 있었다. 나한테서 멀어지며.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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