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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Feb 04. 2019

중학수학 처음부터 이렇게 배웠더라면

수학독랍연구자 박병하 박사와 함께 하는 공부

1.
//박병하 선생은 86학번이신가요?
아뇨, 87입니다.
87? 6월항쟁이 87년이죠(주변 사람을 바라보며)? 그럼 대학 들어가자마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겠네. 이한열 열사 쓰러지고, 수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잖아요.....
한열이 형이 같은 과 한 해 선배고, 쓰러진 전날 같이 술도 마시고 해서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이쯤되면 박병하 선생이 학부 때 어떻게 지냈을지 안 봐도 유툽이다. 같은 전공(경영학)으로 같은 대학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길이 뻔히 보여 바로 접었다고 한다.
"자네는 미친 게 확실하네. 꼭 정신과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게나."
대학원 지도교수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단다. 그 소리를 뒤로 하고, 말 한마디 못하는 러시아 모크스바로 날아갔다고. 세계적인 대학이지만 외국인에게 진입장벽이 낮고, 학비가 저렴하고 체류비도 적어서 선택했다고.....(박 선생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현대 수학의 선진국이 소련이었다는 게 작용했을 것이다)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이 순수수학을 공부하러 모스크바로 갔다고? 미친 천재가 맞는다고 생각했다.
어학연수에서 박사취득까지 6년 반이 걸렸다고 한다. 거의 공부만 했다고. 1년이 지나고 돈이 떨어져 주2회 주 러시아 외교관 자녀 과외교습을 하느라 빠뜨린 시간 말고는 공부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이 지점에서도 전통적인 천재들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공부하느라 밥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했다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2.
처음부터 지금까지 대학에서 일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단다. 자신은 그저 수학이 좋고, 공부가 좋아서 열심히 공부한 것이고, 앞으로도 생활을 위해 최소한의 벌이 활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공부를 하다가 세상을 떠날 거란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부산교육청에서 영재교육원 연구원으로 일해 달라고 부탁했고, 일 년을 일하다가 나왔다고. 당시로는 모든 잡일을 다하는 사무원에 불과했기 때문에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물러났다고 말한다.
"그동안 뭘 먹고 살았나요?" (질문 참 저렴했다 ㅠ)
최소한 벌고 최소한의 소비를 하며 살았다고. 책을 몇 권 썼고, 불후의 명저 『내 아이와 함께 한 수학일기』를 번역했다. 발간한 책 모두 합쳐 1만 권 이상 팔았지만 6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 것이라 생활비로는 턱 없이 부족했다고....
약간의 강의료도 있지만 여러 해 방학 중 중학생 수학캠프를 운영했다고 한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했고, 모집과 캠프 운용은 학생의 엄마들이 책임졌고, 본인은 수업에 전념했단다. 하루 10시간 수업을 6박7일로 진행했다고. 공부는 최선을 다해 전념하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있다고 말한다. 박병하 선생다운 토로다.
왜냐하면 초중고 수학공부 중 중학수학 내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중학수학이 중요하다는 것은 중학수학에서 처음으로 수학 개념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한국 커리큘럼은 개념이해에 등한하다고.....
자연수부터 시작하고 1이란 무엇인지, 0은 어떤 개념인지를 확실히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정식을 훈련하고 기하에서 공리만을 이용해서 증명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고. 데카르트의 아이디어를 살린 함수의 이해로 넘어가서 2차함수까지 공부하면 중학과정이 끝나는데, 무한과 연속의 개념까지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그러면 고등학교에서 삼각함수나 로그함수가 나와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한다.
하~ 듣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럽다. 1이란 무엇인지.... 이 대목에서는 곧바로 모리타 마사오가 소환됐다. 모리타 말에 의하면 아직 1이란 무엇인지 확실하게 규명한 수학자가 없다고 하던데.... 역시 수학의 세계는 발 담그지 않는 게 마음의 평화를 얻는 길이야.... 뭐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박병하 박사와 미팅-2019.02.02(왼쪽에서 두 번 째가 박병하 박사/맨 왼쪽이 필자)


3.
내 중고등 시절 성적이 나쁜 편은 아닌데, 중1 때 수학기말고사에서 60점을 받고 엄마에게 크게 혼줄이 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엄마가 내게 싫은 소리를 한 유일한 사건일 것이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시는 이런 참사가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도무지 어찌 수학성적을 올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수학이 싫어졌다. 기계적으로 문제를 푸는 수학이 아닌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수학의 논리를 넘어서는 깊은 세계를 알고 싶었다. 아무도 말해주는 이 없었고, 나 또한 지쳤으며, 학력고사는 치러야 하겠고(더구나 이과)해서 호기심 조차 마음에서 지우고 살았다.
초등 교사로 일하며 조기 수포자가 생기지 않도록 나름 고민을 이어갔고, 특히 대안학교에서 중고등학생과 수학수업을 하면서(검정고시 수학문제를 풀어주는 정도) 대안적인 방법으로 수학공부를 설계했더니 지만지(지식을 만드는 지식)출판에서 책 출간을 권유한 적이 있었지만 내 스스로 부족하다 여겨서 응하지 않았다.


4.
4년 전부터 유클리드의 『원론』을 시민과 함께 읽고 있다. 이어서 수학의 6대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알 제브라(알 콰리즈미 저) 방법서설(데카르트 저) 프린키피아(뉴턴 저) 무한분석입문(오일러 저) 산술연구(가우스 저)를 수학공부하는 시민들과 함께 공부하는 게 향후 계획이라고 한다.(이러한 고전은 제대로 된 번역본이 없다고....라틴어 공부와 고대 그리스어 공부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비로소 알았다. 내가 아무 것도 모르며 가까운 곳에 놓인 물건도 형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장애가 있다는 것을. 그렇게 장애는 구성되는 것인데, 구성의 동기가 박병하 선생과 대화다. (*주; 이때 장애는 장애/비장애의 '장애'가 아니고, 스스로 부족을 '알아차림'을 말하는 것이며 부족에 대한 알아차림 자체가 앎의 형식이다)


5.
박병하 선생이 진행한 중학생 방학 중 수학캠프는 2년 전부터 중단됐다고 한다. 진행 주체가 사라졌고(내가 돼지엄마 해볼까요-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빡센 공부과정에 아이들이 적응하기 힘들기 때문일 거라 짐작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다시 캠프가 이어진다면 조건이 있다고 하는데,
① 6박7일 일정 ② 고택을 수업장소로 ③ 자연환경이 좋은 곳 ④ 15~20명 정원 ⑤ 박병하 선생은 수업 이외 신경쓰는 일이 없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
뭐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각 같아선 고베에 있는 우치다 타츠루 선생의 개풍관이 딱이겠지만....)
당장 이번 여름방학 때 16명 정원으로 중1~중2(중1은 좀 어려워 할 것이라고. 하지만 집중할 수 있다면 중1도 함수까지 공부할 수 있다고 본다-내 생각)학생과 수학캠프를 운영할 생각이다. 아빠학교협동조합의 사업으로 진행할 수 있을 듯. 16명은 4명씩 4개조를 짜서 토론배틀 할 때 소외는 학생이 없도록 한 정원이다. 8명씩 2개조로 나눌 수도 있고, 2명씩 짝을 지워도 되고......


6.
아마도 올 8월 초 일 주일 산수 좋은 곳에서 캠프는 진행할 것이다. 정원이 차면 장소 예약을 확정해야하니 "지금부터" 희망자를 모집한다. 적절한 장소를 제공하는 분에게는 비용 면제+알파 혜택을 드린다. 16명으로 마감한다.
손!!!
*주; 캠프에 참가한다고 다음 학기 수학점수가 올라가는 게 아니다. 그런 낮은 목표를 내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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