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째날

Delorain에 반하다(2019.4.6)

by 박달나무

#Deloraine

#델로라인

#Donovan_Park

#EAGALA


EAGALA는 Equine Assisted Growth and Learning Association의 약자다. 말(馬)을 이용한 교육프램그램을 말하고, EAGALA 스타일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목장의 전 세계 네트워크를 뜻하기도 한다.


EAGALA의 시작은 미국이지만 호주 또한 호스테라피의 선진국이다. EAGALA는 테라피를 포함한 교육전반에 대한 프로그램이다. 말과 함께한다면 사람의 전반적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어린이,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건강을 위해 승마를 하기도 하지만 정신적 성숙 또한 말을 이용한 교육프로그램이 탁월하다는 설명에 동의한다. 그래서 태즈매니아에 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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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즈매니아의 주도(州都) 호바트에 공항이 있고, 하나 더 있다. 제2의 도시 론세스톤에도 공항이 있다. 론세스톤 가까운 곳에 훌륭한 EAGALA 목장 도노번파크가 있어서 찾아 나섰다. 승용차가 있으니 걱정이 없다. 250km, 왕복 500km 여행을 하고 왔다.


도노번파크 근처 집을 찾아보니 맘에 딱 드는 집이 있어 답사도 겸했다. 주말이라 복덕방을 만날 수 없지만 집을 확인하지 않고 계약을 할 수 없으니 미리 봐두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목장에서 10여 분 떨어진 델로라인 지역에 있는 집이다. 직접 확인해보니 집 주인이 팔려는 것이지 렌트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아뿔싸! 인터넷 사이트를 보니까 내가 오해한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더 좋은 집도 알아두었다. 월요일에 협상하고 계약해서 다음 주에는 델로라인에 살 집을 마련할 계획이다. 계획은 늘 어긋나는 법이라 결과가 어떻게 될지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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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로라인은 달력의 화보사진 같다. 글로 옮기면 느낌이 희석될까봐 저어된다. 벌판, 언덕, 초원, 작은 강, 호수, 흰 구름, 캬라반 공원, 소박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알록달록한 집의 연결들이 사진으로만 본 풍광들이다.


델로라인을 오기 전 도로에서도 마찬가지 풍광들이 이어졌다. 맘에 든다. 공기가 확실히 다르다. 공기에 섞여 있는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부럽다. 유유자적 풀을 뜯는 양 떼의 모습이 사람들에게도 나타난다. 물론 피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오히려 피상성에 본질이 들어있는 법이다. 피상의 부정적 개념과 본질로서의 피상성을 구분하는 것이 공부의 최종 목표일 수도 있겠다.


운전하는 내내 경탄을 자아내는 풍광에 아이들은 시큰둥이다. 늘 궁금한 것인데, 무엇이 경탄을 만들까. 아이들은 원래 경탄을 모르는 존재인가. 그렇지 않다. 아이들도 환호하는 일이 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뛰어넘는 ‘차이’가 새로운 인식에서 드러날 때 경탄하게 된다. 아이들은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에 ‘차이’를 느낄 기존 바탕이 별로 없다. 모든 아이가 그런 것은 아니다. ‘기존 바탕’을 구성하는 예민성이 아이이건 어른이건 개인적 문제로 남는다. 즉 아이 자신이 감당해야 할 개인적 책임은 있다. 모든 것이 환경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너른 벌판인지 첩첩산중인지, 스모그로 뿌연 하늘인지 탁 트여서 먼 산도 가까이 보이는 곳인지 알려면 평소 예민함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태즈매니아에서 기대하는 점이 바로 예민함을 되살리는 것. 원래 생명체는 모두 예민함을 지닌다. 살아남아야 하니까 예민하지 않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법. 살아도 사는 게 아니고 살고 죽는 문제를 느낄 필요가 없었다면 예민함도 무뎌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되살리겠다는 의도다. eagala 프로그램은 예민함의 재생에 적합한 프로그램이다.


1952년 런던 스모그 대참사는 끔찍한 일이지만 우리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지 않나 싶다. 태즈매니아에서 단 몇 일 있었을 뿐인데, 우리가 얼마나 나쁜 공기를 마시고 살았는지 알 수 있다. 수많은 질병들이 나쁜 대기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태즈매니아가 회복의 땅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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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노번파크도 맘에 든다. 넓은 초원에 깔끔한 관리가 보통 정성이 아니다. 역시 주말이라 주인이 없는 상태에서 목장 여기저리를 걸었다. 델로라인에 집을 마련하고 도노번파크에 등하교 하듯이 다녀야겠다고 맘 먹었다.


델로라인에서 30분만 북쪽으로 달리면 호주 대륙이 보이는 항구도시 데본포트가 나온다. 이곳에서 멜버른과 정기 페리 여객선이 다닌다. 동쪽으로 30분 달리면 공항이 있는 론세스톤이 나온다. 이래저래 맘에 드는 요인이 많은 델로라인이다. 가까운 날에 데본포트에서 배를 타고 멜버른으로 건너갈 생각이다. 아름다운 도시 멜버른의 다운타운을 아이들과 걸을 생각을 하니 벌써 행복하다. 아이들은 도시건 시골이건 평지건 산이건 걷는다고 하면 싫다고 버틴다. 윽박질러서 데리고 갈 수는 없지만 살살 달래서 걷다 보면 어느새 어른보다 더 잘 걷고, 걷기의 즐거움에도 금방 빠진다. 걸으면 살고 멈추면 죽는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많이 걸으려고 태즈매니아에 왔다. 욕심 같으면 자전거로 태즈매니아 일주해도 되겠다. 거의 평지로만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전거는 돌발적인 일이 많아서(빵꾸가 대표적) 도전하기 쉽지 않다.(잠실-부산 아이들과 열흘 라이딩 한 경험에 비추어보면)


그러니까 나를 찾아오겠다면 시드니나 멜버른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나처럼 호바트로 오지 말고 론세스톤으로 오거나, 멜버른에서 밤새 배를 타고 데본포트로 들어오면 된다는 말씀.... 알았죠~


ps) 델로라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스캔하다가 커다란 창고에서 술을 파는 곳을 발견하고 렌트 하우스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들어가 주인과 얘기를 나눴다. 수제 진을 만드는 작업장이자 판매 가게였다. 손가락으로 진을 찍어 혀에 대보니 향이 "진"하다. 다시 코를 대고 맡아보니 살짝 알콜냄새와 섞인 향이 매혹적이다. 500밀리를 90달러에 샀다. 호주 달러는 대략 800원으로 계산하면 된다. 7만2~3천원이란 얘기다. 집에 가져가 아내와 재회를 기념해서 마시거나 여기서 불면의 밤을 맞을 때 한 잔 하려고 가져왔다. 델로라인은 술 조차 매력 뿜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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