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GALA 목장을 방문하다(2019.4.8)
월요일이 됐고, 조지(차량의 전 주인)는 9시가 됐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왜 그럴까.... 조지가 내게 협조하지 않으면 내가 손해가 아니고 조지의 손해다. 내 나이가 몇 갠데 낯선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만난 택시 운전사가 자기 차량을 팔겠다고 해서 앞뒤 사정을 재지 않고 덜컥 현찰을 주고 차를 사겠는가. 확인할 것 다 확인하고 대금을 현찰로 주고, 관련 서류와 키를 넘겨 받았던 것. 더구나 내 경우 아버지가 중고자동차 딜러로 40년을 일하셨기에 어깨 너머로 배운 게 있다. 엔진 성능이나, 차량 외장의 사고 여부도 체크했고, 타이어 상태와 힐 얼라이먼트도 점검했으며 인수 즉시 1년 풀커버 보험에도 가입했다. 차량 대금도 만족스럽고 보험료도 저렴했다.(한국의 보험사는 불합리의 화신이다) 1년 타다가 버리고 귀국해도 아깝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
아이들이랑 맥도널드 햄버거로 늦은 아침을 해결하고 11시에 호바트를 떠나 델로라인으로 향했다. 복덕방 직원과 렌트 하우스 현장에서 2시에 만나기로 했다. 열심히 달려가면 2시쯤 도착할 것이다. 네비게이션 입력 실수로 15분 늦었다. 젊은 여성인 복덕방 직원은 매우 사무적이다. 웃으며 인사하는 것조차 사무적이란 걸 알 수 있다. 비언어적 요소는 말을 뛰어넘으니 전 세계 누구라도 통하는 법이다.
늦었다는 이유로 서둘러 집을 둘러보고, 사진도 설익게 찍었다. 외딴집이라 풍물을 쳐도 아무 상관 없겠다. 북쪽으로 풀이 무성한 끝없는 구릉이 펼쳐지고 남쪽으로 태즈매니아 트레킹 명소라는 그레이트 웨스턴 티어스가 달려나간다.(티어스;tiers가 산맥이란 뜻) 과수원도 있다고 하길래 일별하니 배나무, 사과나무, 모르는 붉은 열매가 달린 나무가 눈에 보였다.
복덕방 사무실에 가서 관련 서류를 쓰거나 제출하라고 하길래 눈치껏 최선을 다해 해결해보려고 애썼다. 중고차 구매 및 등록을 위해 비자증명서와 현재 주소지 증명, 여권, 국제운전면허증을 이미 준비하고 있어서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잔고증명서 제출 요구에서 생겼다. 내 명의 통장의 잔고를 증명해야 월세 납입 능력을 확인한다는 것이다. 필수 서류란다. 생각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한국의 은행계좌 잔고증명을 어떻게 이리로 가져온단 말인가. 하지만 스마트폰 앱으로 간단하게(시간은 좀 걸렸지만) 해결했다. 세계가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싶어서 신기하기도 하면서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의 연결은 돈의 연결이다. 돈이 있다면 온라인 서식지가 마련되지만 돈 없는 세계 시민은 로컬에 묶여서 꼼짝달싹 못 한다. 그게 4차산업혁명의 본질이다. 그 문제로 번지면 글이 끝도 없을 것이고....
서둘러 EAGALA 목장으로 향했다. 네비게이션이 있으니 목적지를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다. 10km 떨어진 곳인데, 10분이면 닿는다. 태즈매니아는 시골은 물론이고 도시조차 교통 체증이 없다. 가장 큰 호바트도 마찬가지. 차로 달리는 맛이 있다. 모든 것이 뉴질랜드와 유사한데(자연환경과 문화제도 모두) 차선이 넓다는 것이 일단 눈에 들어오는 차이다. 사람 사는 태즈매니아 동쪽은 대부분 평지라서 운전하기 편하다.
EAGALA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도노반파크를 운영하는 Jo 선생을 만났다. 무척 반갑게 맞아준다. 목장에 있는 말을 비롯한 다양한 동물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친밀감을 높이려 노력한다. EAGALA는 말(馬) 테라피의 여러 경향성 중 하나로서 말 등에 올라타는 이른바 승마를 하지 않는다. 이갈라(EAGALA)는 “말의 도움을 받는 성장과 학습(Equine Assisted Growth And Learning Association)”을 뜻하는 문장의 약자다. 따라서 도노반파크의 말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등에 사람을 태운 적이 없단다. 이갈라 프로그램은 목요일 오전에만 할 수 있다고.... 론세스톤에 사는 매디 선생님이 오셔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이갈라 프로그램에 우리 아이들이 참가하면서 별도로 승마 훈련도 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Jo 선생은 이갈라 연수를 수료했지만 원래 승마 선수였고 승마 트레이너이기도 하다고 한다. 그러나 주중 대부분은 딸기밭에서 노동을 하고, 승마를 할 수 있는 말은 나중에 가져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목요일엔 이갈라에 참가하고 일요일 오전에 목장에서 할 수 있는 여러 활동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화가 매끄럽지 못했다. Jo 선생이 일요일을 ‘산다이’라고 발음해서가 아니다. 영어 말하기 듣기에 한 번도 집중해서 훈련하지 않았기에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매우 어눌하고 불편한 내 사정 때문이다. 영어를 못하는 내가 문제가 있나?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결국 위 내용처럼 합의를 했고, 중고차를 구입했고, 필요하면 전화를 걸어 용건을 말하고, 마켓에서 물건을 사는데 큰 불편이 없다. 왜냐하면 눈치가 있기 때문이다. 대화에서 눈치가 있다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최선을 다해 집중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을 상대방에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일단 우리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집중하지 않는다. 모국어 구사 상황에서 대화에 집중하지 않는 관성의 연장이기도 하고, 아직 영어 구사가 자신에게 의미로 다가오지 않은 탓이다. 특히 태수는 집중하기는커녕 처음부터 대화 국면을 외면한다. 그러니까 외국어를 공부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루 50개 단어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목동의 영어학원은 매일 50개 단어를 외우게 하고 외울 때까지 집에 보내지 않는다) 대화 파트너에게 집중하는 “태도”가 외국어학습에 있어 중요한 것이다. EAGALA가 영어 익히기에도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여기와서 처음으로 기차를 봤다. 호주에서 화물 운송에 열차의 역할이 크다고 하더라. 생각이 크게 건너뛰어서 한반도와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철도가 연결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