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링턴 산에 오르다(2019.4.7)
왜 그랬는지 잊었지만(담임이 숙제로 시킨 건 아닌데) 초등 5학년 때 세계 각국 수도외우기 열풍이 불었다. 교실의 대부분 아이들이 사회과부도 뒤쪽에 있는 국가 및 수도 일람표를 열심히 외었다. 나는 외우기 작업에 특출한 면이 있었는데, 나름 비결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각 나라의 수도 표시를 유심히 들여다 보고는 밑도끝도 없는 상상의 여행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네팔 수도가 카트만두라고 했을 때, 네팔의 위치를 확인하고 (아하, 중국과 인도 사이에 끼어있는 나라구나) 카트만두를 찾아내서는 "만두를 카트에 실어나를 정도로 만두를 엄청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헬싱키는 헬리콥터 타고 싱싱 날아다니는 곳이었고, 마다가스카르의 안타나나리보는 수많은 안테나가 휘날리는 곳으로 상상했다. 한마디로 어이없고 근본 없는 개꿈인 셈이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어쨌든 이런 방법을 썼기 때문에 지명을 부르면 세계지도에서 누가 빨리 찾아내는가 하는 게임에도 경쟁우위를 보였다. 머리속에 지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습적으로 볼 때 쓸데없는 짓이 맞다. 하지만 120개국(내 기억에 당시 사회과부도에 120개국이었다)의 수도를 외우겠다고 집에서나 교실에서나 사회과부도와 지도를 끼고 한달 정도(한달 후에 더이상 외울 수도가 없었다) 내 자신을 닥달하던 경험은 나름 도움되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쓸데없는 짓은 뒤집을 수없는 사실이다.
각설하고,
웰링턴 때문에 떠오른 어린 시절 기억이었다. 이곳 호바트에 웰링턴山이 있다.
'웰링턴은 뉴질랜드 수도인데, 왜 태즈매니아 주도(州都)에 웰링턴산이 있지?' 그냥 그렇게 잠깐 생각했었는데, 오늘 드디어 웰링턴산에 오르기로 했다.
어, 산이 장난이 아닌데..... 우리 아이들이 처음 트레킹으로 오르기에는 넘 높다. 한쪽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접근 불가능하기에 한라산이 떠올랐다. 하지만 한라산과 달리 수십만 년 전 남극대륙과 분리되면서 잘린 흔적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수년 전의 나는 함께 한 어린 친구들과 원족을 가면 눈에 보이는 지질학적 현상에 대해 침을 튀기면서 설명을 해댔다. 나름 살아있는 현장학습이라고 생각하고 혼자서 뿌듯해 하다가 설명을 듣지 않거나 들었어도 금방 잊어버리는 아이들에게 섭섭함과, 심지어는 분노도 느끼곤 했었다.
참으로 어이없고 근본 없는 개꿈을 꾸었던 거다.
그런 예전의 부족한 자신을 반성하며 말없이 걸었다. 아니나다를까 아이들은 강하게 거부했다. 걷기 싫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런 일을 예상하고 아예 외국으로 나온 건데 '지들이 안 따라오고 배기나' 하는 마음으로 역시 입 꾹 다물고 천천히 앞장서서 걸었다. 예언은 맞았다. 징징거리며 따라오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바람처럼 가볍게 걷는다. 표정도 바뀌고, 매우 원만한 아이가 된다. 힘들다는 말은 쏙 들어갔다.
일단 오르고 내리는 왕복에 2시간을 썼다. 초입은 매우 평탄한 길이다. 1시간은 산장카페에서 음료 사마시며(처음으로 직접 주문하도록 해봤다. 엄청 부끄러워 한다. 원래 뻔뻔함이 하늘을 찌르는 녀석인데....) 노닥거렸다.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 모두 백인 가족들이다. 일요일이라서 온가족 나들이를 웰링턴 산행으로 잡은 집들이 많다. 들리는 소리는 쏼라쏼라~ 아이들은 낯설지만 신기하고 신선한 환경이다. 외부의 자극에 신경쓸 일이 없었는데, 여기서는 자기도 모르게 주변을 살피게 된다.
앞으로 어머어마하게 걸을 텐데, 과연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지금까지 아이들은 모두 똑같았다. 그래서 내가 자신을 보이는 거다. 걸으면 살고 멈추면 죽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