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째날

호바트의 명소 살라망카(2019.4.5)

by 박달나무

#살라망카

#호바트의명소

#과일이.....

#그리고가을


살라망카는 호바트(태즈매니아의 州都)의 제일 명소다. 방파제가 디귿자 모양으로 있고, 하얀 요트가 있고, 레스토랑, 카페, 패션, 잡화 등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곳인데, 핵심은 공원에 있다. 잔디는 골프장 홀컵의 그린 같고, 군데 군데 100살은 족히 넘었을 상수리나무가 버티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나뭇잎과 함께 도토리가 많이 떨어져 있다. 아하 여기는 가을이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도토리.... 서양 것이라 그런지 씨알이 굵다. 아, 과일 야채 마켓에서 산 사과와 천도복숭아 맛이 환상이다. 태즈매니아는 농장이 주 산업이고, 생산하는 과일의 질이 뛰어나다는 얘기는 듣긴 했다. 태즈매니아에 오시면 사과를 먹어보시라. 얼음 박힌 부사만이 최고의 사과인 줄 알았는데, 세상은 넓고 사과는 다양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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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망카 지역은 그닥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이곳 사람들 인구를 생각하면 매우 큰 규모다. 건물들은 낡았다. 19세기 건물을 그대로 쓰는 곳이 많다. 호주에 처음 발을 디딘 영국인들에게 본토 대륙은 엄두가 나지 않고 태즈매니아가 날씨도 좋고(영국인에게는 특히 더 그랬겠지) 접근하기도 좋았을 게다.


살라망카를 아이들과 한 바퀴 돌았다. 점심도 먹고, 마차도 타고, 걷기도 하고, 배경 좋은 곳에서는 사진도 찍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깨우지 않았더니 하루 일과가 찌그러지는 느낌이다. 내 느낌은 내 경험의 소산이라 느낌을 고집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여기는 저녁이면 모든 활동이 멈추고 불끄고 자는 분위기라 아침을 늦게 시작하면 하루가 짧아지는 결과를 낳는다. 내일부터는 일찍 깨우기로 마음 먹었고..... 그러려면 일찍 재워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낮 시간에 몸을 힘들게 만들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이제 자동차도 생겼으니 우리가 몸을 쓰면서 매일 매일 일상을 구성할 동네로 옮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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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문제는 어제 우려곡절 끝에 차량 등록을 위한 서류를 완벽하게 만들었는데, 약속한 조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금요일이라 오늘을 넘기면 월요일에나 다시 태즈매니아 차량 등록 사무실에 찾아가야 하고, 다음 주에는 호바트를 떠나려고 하는데 다시 계획이 틀어지고, 머리가 복잡해진다. 전화를 받지 않으니 혹시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고, 그럴 수록 마음은 무거워진다.


드디어 조지가 전화를 받았다. 자신은 멀리 나왔고(조지는 택시 운전사) 오후 4시에 내가 있는 유스호스텔로 오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이미 오전에 숙소를 호바트 중심가에 있는 유스호스텔(호바트 센트럴 YHA)로 옮겼다. 인터넷 예약을 하려고 보니 방이 없다고 나오길래 어제 밤에 일부러 걸어서 유스호스텔에 들러 직접 예약을 해두었다. 3박으로. 거주지 증명서를 받을 목적이 컸다. 호텔은 비싸니까 유스호스텔을 선택했지만 워낙 중심가에 있으니(살라망카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에어비앤비 가격과 비슷하다.


그러나 조지는 4시에 오지 않았다. 5시까지 기다리다가 내가 직접 "태즈매니아 서비스"(주 행정 사무소)를 찾아갔다. 뒤늦게 알았지만 관공서는 5시에 문을 닫는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5시 20분. 중고차 사기에 대한 의심 때문에 맘이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여러 정황으로 짐작할 때 조지 없이 명의이전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명의 이전 없이 운전하면(어제 보험은 내 이름으로 들었다) 나중에 팔 수 없는 노릇이다. 저녁 식사 후 조지에게 문자를 했다. "What should i do?" 그랬더니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택시 영업하다가 관공서 업무 시간을 넘겨서 어차피 업무가 불가능하니까 나중에 연락하려고 했단다. 결국 월요일 아침 9시에 만나서 처리하기로 했다. 오늘은 뭘 하며 지냈냐, 차는 운전해봤냐, 차에 문제는 없더냐 등등을 묻는 태도로 봐서 일단 다른 의도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다시 마음의 평화를 찾고....


갑자기 <걱정의 반대말>이란 청소년 소설이 생각난다. 걱정의 반대말이 '안심'일까? 안심, 안도, 칭찬 모두 한자말인데 걱정은 고유어다. 걱정에 해당하는 한자어는 염려일 게다. 고유어인 걱정의 반대말에 해당하는 고유어가 뭐가 있을까? 걱정의 반대말 고유어가 사라진 이유가 있지 않을까? 아, 그 이유를 알고 싶어..... 근데 지금 뭘 생각하는 거야....


나는 이렇게 지금의 현실에서 안드로메다로 떠나는 경우가 있다. 다시 현실에 돌아와서..... 걱정이 마음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걱정을 내려놓으니 피곤도 사라지고 몸이 가뿐해진다. 여기 사람들에 비하면 한국인들은 과도한 걱정덩어리들이다. 오죽하면 걱정인형이 광고에 나올까. 성격이 그런 것이 아니라 걱정에서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있다. 이건 긴 이야기니까 다음으로 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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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등록 문제에 마음이 묶여 있어서 오늘 하루는 살라망카에 다녀오는 것으로 갈음했다. 일정은 단순하지만 아이들의 일상은 언제나 부산하다. 관계의 부산함이다. 둘이 있으니 끊임없이 떠든다. 어찌 저렇게 할 말이 많을까 싶다. 마치 라디오 방송에서 묵음이 들어가서 방송사고가 날 것을 걱정하듯이, 그러나 얘네는 사고를 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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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여 들어보면 아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대화라기 보다는 번갈아 가며 내뱉는 독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미 정해져 있다. 대화는 상대의 이야기에 따라 내 이야기가 즉석에서 정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대화가 지평융합의 견인차라 했다. 일부 미용실 수다나 호프집 만담도 상대방 스토리와 관계 없이 자기 얘기를 적절한 타이밍에 늘어놓는 것이지만, 우리 아이들의 대화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대화가 랩 배틀로 진화하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기존의 대화는 내 얘기와 관계 없이 늘어놓는 상대의 얘기에 기분 상하는 것이 디폴트 값인데, 얘네는 다르다. 상대방의 이야기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내 얘기를 하면 된다.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봉쇄되면서 상처를 입은 경우라고 하겠다. 조심스럽고 아주 중요한 언급이라 다른 판에서 좀더 신중하게 말해보겠다. 어쨌든 아이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