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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Jul 31. 2017

부모가 생각하는 자식의 초상화

"나는 벌레예요"

  진중권 교수가 출연해서 화재가 된 JTBC의 예능 프로그램 <속사정쌀롱>이 있습니다.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나중에 찾아보니 18회랍니다) 아래 사진을 가지고 심리분석을 한다고 호들갑이었습니다. 오른쪽 중국인이 화장을 하고 사진 보정을 통해 왼쪽의 프로필 사진을 SNS에 올렸고, 프로필 사진을 보고 반한 남성이 2600 여 km를 달려와 실물을 확인하고는 실망감에 여자를 폭행했다는 일본 인터넷신문 기사를 인용했습니다.



  패널들은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다르다고 혀를 내둘렀고(혀를 내두르는 연기를 했고) 저는 PD와 방송작가를 한심하다고 욕하면서 보고 있는데, 말 없던 진중권 교수가 나섰습니다. 

사람들은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 사이의 중간 지점에 자신이 있다고 믿거든요.


  라캉의 거울 이론까지 동원하며 프로그램이 바보들의 잔치가 되지 않도록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먹고 살기 어려운 세상에 다들 나름의 발버둥질을 하는 것에 뭐라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내가 매일 만나는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부모가 떠올랐습니다.
  아이들의 부모는 어떤 모습으로 '내 새끼'를 알고 있을까. 아이들의 모습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멀티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아이의 모습은 다면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의 여러 모습 중 한 가지로 파악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가상의 아이 모습을 자기 자식의 모습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매우 흔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고 대부분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주 적절한 표현이 로렌스 데이비드가 짓고 보림이 펴낸 그림책 <변신>입니다. 원제는 <Beetle boy>. 그림책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리 샘슨은 어느 날 다리가 여섯인 딱정벌레로 변합니다.(카프카의 "변신"에서는 주인공 이름이 '그레고리 잠자'. 따라서 카프카의 "변신"을 패러디했지만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자신이 벌레로 변했다고 아무리 말해도 부모는 들은 척도 안 합니다. 보면서도 내 아이가 딱정벌레가 된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림책 <변신>이 황당한 은유가 아닙니다. 우리 부모들의 현주소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 해 지났으니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유아기부터 온갖 발달장애 치료를 받으면서 아들을 키운 엄마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고1 나이에 제게 왔습니다. 아이는 진즉에 발달장애인으로 등록된 상태였습니다. 엄마는 장애인 등록이 병역면제를 위한 조치였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아이는 붙들고 공부시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아이니까 학교식 학습을 시켜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검정고시 패스와 대학 진학을 원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공부를 통한 대학 진학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아이 어머니께 설명했지만 오히려 아이 어머니는 저를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어머니는 장애인 봉사자를 위한 연수 강사로 일하는 분입니다.
  비슷한 예가 또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18살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현실적인 핸디캡을 인정하고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적절한 진로를 고민해보자고 했더니 이해는 한다고 하면서도 불쾌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대학은 꼭 가야 하며 어떻게 공부를 시키냐에 따라 충분히 대학 진학을 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상적 모습을 그려놓고 그것이 현실적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기만입니다. 살면서 매우 흔한 일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기만'은 이런 현상을 폄하하기 위해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아닙니다.) 왜 이런 자기기만이 일어나는가. 자기기만을 생존을 위한 진화의 산물로 보는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가 있지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자기기만은 본인과 자식, 그리고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비극적인 일일 수 있습니다. 다만 자기기만이 부모에게만 추궁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실제로 생존을 위해 기만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면접 때 깔끔하게 씻고 깨끗한 옷을 단정하게 입고 가려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매우 한국적 상황이라고 봅니다. 즉 인간이라면 당연히 보여주는 모습은 아닙니다. 

  부모로서 그려놓은 내 자식의 모습이 현실적 모습과 이상적 모습 사이 어디에 놓여있는지 차분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201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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