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사디야

스페인카미노데산티아고 열넷째날

by 박달나무

#스페인카미노데산티아고


#열넷째날(2019.11.3)


1.


“바람불어 좋은 날이란 영화가 있었지”


오늘 걷는 내내 바람이 심해서 그냥 툭 던지듯이 말했다. 왜 바람은 항상 맞바람이지? 뒷바람은 기억에 없다. 뒷바람이면 걷기에 얼마나 편하겠는가. 그런 공짜도움은 인생에 없는 팔자다. 심한 바람으로 앞으로 전진이 어렵다.


무료한 걷기의 연속이라 금방 반응이 온다. “바람불어 좋은 날이 영화예요? 어떤 영환데요?”


“그냥 그런 영화가 있어. 너희는 이해하기도 어려운 옛날 영화지”


까리온을 벗어나 시골길에 들어서니 메세나 지형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냥 끝없는 밭이다. 밭이 지평선을 보여준다. 밭 가운데로 까미노가 나있다. 그렇게 4시간을 걸었다. 중간에 두번 10분 정도 쉬었다. 4시간 내내 맞바람을 맞느라 고개를 숙이고 몸을 앞으로 밀며 걸었다. 어른들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꾸준히 걸으니까 마법처럼 마을이 나타났다. 길이 이어지다가 살짝 내리막이 생기면서 마을이 아래에 있기 때문에 걷는 입장에서는 갑자기 ‘짠’하고 마을이 보이는 거다.


작년에도 지루한 긴 길을 걷다가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만난 마을이 반가워 바로 알베르게에 들어갔다. 오늘도 마찬가지. 그래서 칼사디야 공립 알베르게에서 묵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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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시도 안 돼서 숙소에 들어왔기 때문에 자판기에서 컵라면(중국제)과 전자렌지용 파에야를 꺼내서 점심을 해결한 후에 시간이 많았다. 숙소에 들어오니 비가 살짝 내려서 바깥 활동도 어렵다. 아이들은 놀아달라는 사인을 계속 보낸다. 그래서 얘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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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페인에서 대우자동차 누비라 봤다. 어제. 스페인에 한국 자동차 많이 봤지? 너희 대우자동차 알아? 모른다고.... 모르는 게 당연해. 사라진 자동차 회사니까. 그런데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대우 누비라를 보니까 신기했어. 차는 아주 깨끗해서 금방 뽑은 새 차 같아 보였어. 관리를 잘 했나봐. 너희 집 자동차는 어느 회사 제품이야?”


“저희는 그랜전데....”


“저희는 소울....”


“그건 자동차 모델 이름이고 제조회사가 어딘지 알아?”


“몰라요”


“그랜저는 현대자동차, 소울은 기아자동차야. 그런데 두 회사가 사실은 같은 회사야. 그래서 현대기아자동차라고 부르기도 하지. 기아가 망해서 현대가 인수한 거야. 사람들은 현기차라고 줄여서 말하기도 해”


“현대가 좋아요, 기아가 좋아요?”


“스페인에 어떤 나라 자동차가 제일 많은 지 알아? 바로 일본차야. 일본은 아주 큰 자동차 회사가 여럿이야. 자동차 강국이지. 원래는 미국이 가장 많은 자동차를 생산했는데 이제는 일본에 뒤쳐졌어. 일본 자동차는 한국에도 많아. 하지만 한국에 전혀 들어오지 않은 일본 자동차 회사가 있어. 바로 미쓰비시 자동차야. 미쓰비시 회사는 우리가 식민지 시절 한국 사람을 강제로 데려가서 일을 시키고 제대로 월급을 주지 않아서 미움을 엄청 받는 회사야. 어쨌든 일본에서 가장 큰 회사야. 한국으로 치면 삼성과 같아. 미쓰비시 자동차는 한국에 직접 자동차를 팔지 않지만 사실상 옛날부터 한국 사람에게 차를 판 거라고 볼 수 있어”


“미쓰비시 자동차가 좋은 차예요?”


“좋다 나쁘다를 떠나 큰 규모의 회사야. 기아자동차는 처음에 자전거를 만들던 회산데 오토바이를 만들었다가 승용차도 만들어 팔았어. 그게 50년 전이야. 참 오래 된 얘기네. 하지만 꼭 알아야 하는 얘기야. 기아자동차가 만든 브리사 모델은 일본 마즈다 자동차 모델을 그대로 들여와서 생산한 거야. 스페인에도 갈매기 날개 모양의 마즈다 마크를 단 차가 아주 많아. 그러다가 1975년 그러니까 45년 전에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 승용차가 만들어지게 돼. 그게 현대자동차의 포니야. 포니가 무슨 뜻이지?”


“조롱말이잖아요”


“맞아. 그런데 한국의 최초 고유 모델 포니의 엔진은 미쓰비시 자동차 엔진이야. 자동차의 엔진 다음으로 중요한 동력전달장치도 미쓰비시 자동차에서 생산한 제품을 가져와서 조립했어. 현대자동차는 이태리 디자이너에게 의뢰하고 모양을 결정해서 껍데기만 만들고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 엔진과 기어 박스를 가져와서 포니를 만든 거야. 포니는 엄청 많이 팔렸어. 나중엔 수출도 많이 했지. 포니가 팔리면 팔릴수록 미쓰비시 자동차만 신나는 일이었지. 그후로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 모델을 가져와서 신차라고 광고를 많이 했어. 그랜저와 소나타도 미쓰비시 자동차 모델을 그대로 들여온 거야. 그러니까 사실상 옛날의 현대자동차는 땅 짚고 헤엄치는 격으로 자동차 장사를 한 거지”


“그랜저가 일본차예요? 어휴 몰랐어요”


“지금은 현대자동차가 고유 모델을 개발할 정도로 성장했어. 하지만 아직도 완벽하지 않아. 문제는 지금부터 하는 얘기야. 최초의 한국 모델 승용차 포니 가격이 300만원이었어. 45년 전에 말이야. 그 당시 학교 선생님 첫 봉급이 3만원이었어. 그러니까 처음 선생님으로 나간 사람의 100개월 치 월급이 포니 가격이니까 지금으로 따지면 2억 원이 넘는 가격이야. 왜 이렇게 비쌌냐하면, 바로 전 국민을 향해 사기를 친 거야. 가격 책정을 자기 맘대로 한 거지. 포니 수출 가격은 70만원 이었어. 국내에서 파는 가격의 3분의 1이었지. 사실상 현대자동차를 성공시킨 건 우리나라 국민 전체야. 우리 국민이 터무니 없는 가격으로 자동차를 사주고 속아주니까 세계적으로 큰 회사가 된 거야”


“옛날에 월급이 3만원이었어요?”


“그건 물가가 달랐으니 지금 3만원하고는 다르지. 지금은 우리 셋이 한 끼 식사를 해도 5만원을 쓰기도 하잖아. 그래서 서로 가치가 다른 3만원이야. 49년 전에 사람답게 살게 해달라고 자신 몸에 불을 붙여 죽은 사람이 있어. 일주일 후면 그 분이 돌아가신 날이야. 이름이 전태일인데 당시 23살에 불과했어. 대략 전태일이 죽은지 50년이라고 하자. 당시에 초보 옷만들기 보조는 월급이 3천원이었어”


“예?????”


“50년이 지나서 지금은 한달 내내 일하는 초보 보조는 150만원을 받아. 그럼 몇 배가 된 거지? 500배 커진 거야. 어때 월급 3천원이 150만원이 됐으니 어마어마하게 오른 거지! 이게 모두 속임수에 가까워. 50년 전 서울의 집값은 100만원이 안 됐어. 50만원에도 웬만한 집을 한 채 살 수 있었지. 50년이 지난 지금 서울 평균 집 값은 8억이야. 너희들이 사는 집은 10억은 할 거야. 선생님 아파트 값은 5억이야. 그냥 선생님 집값을 기준으로 하고 50년 전 집값을 크게 잡고 100만원이라고 할 때 몇 배가 오른 거지? 바로 500배야”


“우리집이 10억? 와 비싼데요....”


“이게 바로 ‘거위가 아프지 않게 털을 뽑기’라고 부르는 물가인상으로 노동자 속이기 정책이야. 내가 붙인 이름이 아니고 유명한 루이14세라는 위세가 대단한 프랑스 왕 밑에서 제2인자였던 콜베른이 한 말이야. 50년 전 전태일이 사람답게 살자고 분신자살을 하던 때, 전태일은 하루에 2시간을 걸어서 출근했어. 퇴근도 2시간이 걸렸지. 매일 우리가 걷는 거리를 전태일은 출퇴근을 위해 걸어다녔어. 왜 그랬을까..... 차비를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했던 거야. 그만큼 월급이 적었고, 밥이고 라면이고 배부르게 먹기 어려웠어. 무엇보다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12시간을 넘어 14시간, 심지어 16시간을 꼬박 일하는 경우도 있었어. 16시간을 일하면 집에 갈 수가 없었어. 일하던 자리에서 그대로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곧바로 일해야 16시간을 일할 수 있어. 그건 사람이 산다고 할 수 없었지. 지금도 16시간을 일하는 노동자가 있어. 선생님 가까운 친척이라 잘 알고 있지. 그건 사람을 기계로 생각하는 거잖아. 기계가 망가지면 교체하듯이 노동자가 건강을 해치면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고 잘라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어. 월급을 올려주는 것보다 진짜 중요한 건 이런 차별을 없애는 거잖아. 사람은 누구나 귀하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래서 차별이 없어지거나 최소한 조금씩 줄어들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한 거야. 월급을 올려준 다음 물가, 가장 중요한 집값과 땅값을 올려버리면 50년 전 3000원의 월급으로 버스도 맘껏 타지 못했던 것과 다를 게 없는 거지. 선생님은 그런 세상이 바뀌어서 사람들을 귀하게 생각하고 대접해주기를 바라고 있어. 그런데 왜 50년 동안 차별 문제에 변화가 없었을까?”


“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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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욕심을 채우는 게 좋은 사람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이지. 욕심 대신 욕망이라고 말하기도 해.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건 우리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가르친 거야. 크게 틀린 말은 아니야. 욕심이 있어야 무엇이든 이루려고 노력한다고 할 수 있어. 다만 욕심이니 욕망이니 하는 말들을 잘못 아는 거야. 오해하거나 착각하게 된 거지. 가족에게 친구에게 옆 집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려는 욕심과 욕망이어야 하는데, 남들보다 더 비싸고 좋은 물건을 가지는 게 욕망이라고 착각하게 만든 거야. 정부가 그랬고, 기업이 그랬고, TV가 그랬어. 비싸지만 남들보다 먼저 더 많이 가지라고 부채질하면 기업은 물건을 더 잘 팔 수 있으니까 좋은 거지. 덕분인지 때문인지 너희도 남들은 없지만 나에게만 있는 물건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잖아. 그게 지나쳐서 남들에게 결례를 범해도 언제나 떳떳하잖아. 선생님이 그런 점을 늘 잔소리 하는 건 내 맘대로 욕심을 부리는 걸 부끄러워 하지 않으면 세상은 총 없는 전쟁에 불과하기 때문이야. 까미노 곳곳에 보이는 “PAZ”가 바로 피스, 평화야. 우리의 나라 한국은 이제 잘 사는 나라가 분명해. 선생님도 물론 한국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하지만 더이상 권력을 가진 사람이 국민을 속이면 안돼. 아직 옛날 생각만 하면서 여전히 속이는 사람들이 있어. 아주 많아. 고쳐야 할 점이지”


4.


나는 어쩔 수 없다. 이런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꼭 해야 한다. 아이들이 자신 입장에서 정도껏 알아들으면 된다. 전혀 알아듣지 못해도 해야한다. 세월호를 생각해 봐라. 앞으로 50년 후에 뭐라고 할 것인가. 난 50년 후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이다. 이대로 간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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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프랑스 사람과 저녁을 먹는 부엌에 같이 있었다. 아이들이 마켓에서 쇼핑하도록 허용했더니 인스턴트 음식을 많이 사왔다. 죽 늘어놓고 먹었지만 결국 많이 남겼다. 내가 미리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이라고 경고했지만 부득불 먹을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시하가 하도 게걸스럽게 먹어서 옆에서 웃는 프랑스 아저씨에게 “돼지가 불어로 뭐죠?” 물었다. “꾸숑”이라고 가르쳐준다. 꾸숑? 어디서 많이 듣던 단언데.... 예전 드라마에서 이휘향이 어떤 남자 출연자에게 ‘꾸숑’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내가 시하는 쁘띠꾸숑, 태호에게는 마른꾸숑이라고 부르며 부드럽게 야단쳤다.


“사실은 너희도 다 먹을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 그래서 화가 나. 진짜로 먹을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먹다보니 너무 많았다-가 아니잖아. 그냥 테이블 가득 올리는 게 좋았던 거잖아. 내가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양이라고 알려줬는데도 비웃듯이 샀잖아. 반성하고 고쳐야 할 점이야”


아이들은 작은 목소리로 “아닌데 아닌데”를 연발했지만 자신은 없었다. 욕심의 조절이 아슬아슬하다. 이성적 조절이 가능할지 아닌지 좀더 지켜봐야한다. 선택의 자유를 주면 너무 흥분한다.


비슷한 상황이 한두번이 아니다. 예상하지만 가르치려고 계속 자율권을 줬다. 아주 조금씩 눈치를 보는 정도의 진전은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둘 다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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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태극기를 배낭 뒤에 크게 붙이고 걷는 한국 대학생 둘을 만났다. 기회가 있다면 이것저것 묻고 싶었지만 어색한 일이라 그러지 못했다. 내가 걱정하는 지점이 있어서 그렇다. 내 정서와 20대 청년의 정서는 너무 크게 빗나가고 있다. 바로 두 아이의 가까운 미래다. 내가 걱정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 걱정 수위를 내리기로 했다. 살 수가 없다.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 숨 막혀 죽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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