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세바돈

스페인카미노데산티아고 스물한번째날

by 박달나무

#스페인카미노데산티아고


#스물한번째날(2019.11.10)


#폰세바돈(Foncebadón)


1.


숙소에서 아침으로 라면을 먹고 천천히 출발했다. 불과 5km를 걷고 더이상 걷는 걸 포기했다. 계속 오르막이라 해발이 높아지니 비가 진눈깨비로, 폭설로, 눈보라로 바뀌고 도로에 눈이 쌓였기 때문이다. 눈이 내리는 날씨에도 못 걸을 정도는 아니지만 신발이 젖고 양말이 물구덩이에 빠진 상태가 되니까 걸을 수가 없다. 내 신발이야 매쉬소재라 당연한데, 시하 신발에 문제가 있다. 고어텍스 방수화인데 신발 속에 물이 든다. 밑창 접착면이 불량인 듯. 반면 태호의 양말은 보송보송하다. 정오부터 숙소에 들었다. 눈은 계속 내려서 상당히 쌓였다. 걸을 수 없어서 불편하고 불안하지만 창밖으로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은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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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하가 걸으면서 질문한다.


“고추가 꺾여있지 않고 커져서 앞으로 밀고 나오는 건 왜 그런가요?”


“그런 일이 있구나. 크고 있다는 증거니까 걱정할 거 없다. 남자의 고추는 해면질 조직이라.... 주절주절....”


간단하게 알려줬다. 시하는 은근히 걱정됐나보더라. 자신의 몸에 대해서. 곧 5학년이 되는 나이니까 오줌 마려울 때 발기현상이 있는 게 자연스럽다.


구체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다. 아직 둘 다 이렇다할 성교육을 받지 못했다. 정자 난자 수준에서 알고 있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마천의 궁형이나 트랜스젠더 수술 등에 관심이 있고 아무리 살펴봐도 이성의 몸이나 사랑문제에 관심이 없다.


사람이 기계가 아니라 생후 개월 수에 따라 일어나는 변화가 정해진 것이 아니니 문제되는 건 아니지만 두 아이는 내가 자라면서 겪은 것이나 요즘 아이들의 패턴과 좀 다른 건 맞다. 나도 절대적으로 반대지만 4학년 후반부에 많은 초등 남아들이 포르노에 노출된다. (포르노는 아동 정신을 파괴한다고 생각한다) 초등 저학년 조차 이성 친구를 사귀고 싶어한다.


반면 두 아이들은 진정 이성 친구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보인다). 엄마와 여성을 구별한다. 신체적 특징이 여성이라고 피상적으로 알고 있지만 아이들에게 엄마는 여성이 아니다. 매우 안타깝지만 미소지니의 표현들을 따라하기도 한다. 물어보니 반 친구들이 흔히 쓰는 표현이라고 한다. 태호는 반 아이들의 정서에 대해서 파악하지 못한 듯 보인다. 태호에게 여성은 인지 네트워크에 포착되지 않았다. 젠더의 구별이 불가능한 상태다. 단지 성기의 돌출 여부에 따른 섹스의 구별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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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센딜 멀레이너선의 <결핍의 경제학>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지능이 낮다는 데이터를 소개한다. 이에 대한 해석이 결핍의 경제학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지능이 낮아서 능력이 부족하니까 가난한 것이 아니라, 가난하면 생존에 매달리니까 지능이 발달할 겨를이 없었다는 거다.


결핍의 경제학은 한국의 아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이지만 사회적 요구 사항이 과중해서 과업충족에 급급하다보니 정신적/성적 발달이 일어날 겨를이 없다.


결핍은 돈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시간이 없는 것, 심리적 여유가 없는 것을 포함한다. 아이들의 경우 과업이 과중해서 심리적 여유가 없다. 발달이 지연되거나 왜곡되는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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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빈민가 아이들은 보육 시설에서부터 초등학교, 중학교를 전부 자기들과 같은 계급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공부하게 되며 자기보다 높은 계급에 속한 아이와는 친구가 될 기회는커녕 옷깃을 스칠 인연조차 맺지 못한다. 이는 위쪽 계급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에게 하층 계급이란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밖에 본 적이 없는,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 26~38쪽 <아이들의 계급투쟁> 브래드 미카코, 노수경 역, 사계절, 2019.11.5


브래드 미카코는 영국에 거주하는 일본 여성이다. 아이를 키우는 이주 여성으로서 영국의 탁아소에 보육사로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서술한 책이다. 보수당이 집권한 후 공공복지지출을 줄인 결과 계급의 격차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영국 상황을 말하고 있다.


한국에서 어린이에게 나타나는 계급의 문제는 위에서 말한 심리적 결핍이 심한 아이들과 여유가 있는 아이들의 차이로 드러난다. 부모의 자산소유와 심리적 결핍 유무는 동전의 양면처럼 연동된다. 하지만 예외적인 아이들이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 심리적 결핍에 시달리는 아이가 있다는 말이다. 이 아이들이 훨씬 큰 고통에 빠진다. 계급사회에서 존재와 물적기반의 모순이 주는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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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스페인도 밤이 흔한가 보더라. 밤을 까스타냐(castaña)라고 한다고 알베르게 주인 딸(로 보이는)이 알려준다. 벽난로에 팬을 올려서 구운 밤이 우리 토종밤맛이다. 5개를 까먹었다. 일찍 알베르게에 들어와 시간 여유가 많아서 생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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