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카미노데산티아고 스물두번째날
#스물두번째날(2019.11.11)
1.
네델란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기록을 찾아보니 비야르멘테로 지날 때 만났다. 열흘만이다. 당시 할아버지는 까미노를 반대로 걷고 있었다.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해서 산티아고까지 갔다가, 다시 거꾸로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당시에 그렇게 이해했다) 내가 언빌리버블을 외치며 2000km를 걷는 거냐고 물었더니 씨익 웃으며 “그 이상!” 말했던 그 할아버지. 오늘 저녁 겨우 도착한 몰리나세카 한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더라. 왜 다시 산티아고로 걷는지 자세히 물어보지 못했다. 서로 영어가 짧다.
암스테르담부터 걸은 건 확실하다. 가끔 어마어마한 장거리를 걷는 유럽인들을 만난다. 유럽 사람들은 복귀 날짜를 정하지 않고 걸어도 된다. 우리처럼 비행기 타는 날이 정해진 것이 아니고 유레일로 아무 때나 돌아가면 되니까.
이태리 사람에게 물었었다. 옛날에 로마부터 산티아고까지 걸었다는데 지금도 가능한 길이 있냐고. 가능하단다. 다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거라고 대답한다. 내가 알프스를 넘기 때문이냐고 되물으니까(포에니전쟁을 염두에 둔 질문) 잠잘 곳이 없어서 텐트를 지고 다녀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장거리 걷기, 6개월 이상 걸리는 걷기여행이 어린이에게 가능할까. 우리 아이들 걷는 걸 보면 충분히 가능하다. 아이들은 걷기가 힘든 것이 아니라 스토리의 부족으로 힘들어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즉흥적이고 신선한 스토리를 찾는다. 따라서 한국에서 전국 곳곳 시군구 지역을 돌면 1년도 모자랄 것이다. 리터러시 능력 개발을 위해 한국에서 전국 답사여행은 상상할만하다.
호주나 스페인은 테라피(therapy) 성격으로 방문한 것인데, 목적을 이미 달성했다. 이제 리터러시를 염두에 둔 여행으로 바뀌었다.
2.
하룻동안 다양한 성격의 길을 걸었다.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눈길도 걷고 마른 포장도로도 걷고 돌투성이길도 걸었다. 눈을 뭉쳐 장난하다가 걷고, 길고양이와 놀다가 걷고, 지들끼리 대본 쓰고 연기하면서 걷는다. 걷는 속도는 매우 느리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른들의 걷기 속도가 너무 빠르다. 아침에 출발할 때 도착지를 정해놓고 걷더라. 과연 정해진 마을을 향해 오로지 “도착”을 생각하며 걷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걷는 거다.
3.
5시 반에 몰리나세카에 들어갔다. 메세타 고원을 통과했다. 이제 한줄 지평선은 볼 수 없다. 몰리나세카는 폰페라다 가까운 곳에 있는 꽤 큰 마을이다. 이곳을 오기 위해 상당히 긴 내리막길을 걸었다. 내리막이라고 쉬운 건 아니더라. 알베르게를 찾았으나 두 마을 모두 겨울영업을 하지 않아서 부득이 몰리나세카까지 온 것. 고원지대에서 내려오는 길은 한국의 지형과 흡사하다. 산들은 늙어서 둥글둥글하고 사방이 바위와 깨진 돌멩이들이다. 북한산 걷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저기 흑요석이 흔하더니 없던 지붕 모양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지붕은 구운 기와였는데 이제는 거의 돌지붕이다. 흑요석을 얇게 떼어내는 석판으로 지붕을 얹어서 마치 물고기 비늘처럼 보인다. 지역이 달라지니 날씨도 확 바뀌고 집과 성당의 지붕이 까만 돌로 바뀐다.
4.
아침에 출발하고 1시간 정도 지나서 만하린(Manjarín)을 지나간다. 지명은 있는데 마을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 채 집이 있을 뿐이다. 카페로 보이는 곳이 있어서 들어갔더니 그냥 천막을 둘러놓았을뿐이다. 초라하고 허름하고 어두운 분위기.... 할아버지와 청년 둘이 지내는데 보아하니 “나는 자연인이다” 수준으로 살고 있다. 전기도 없어 보였다. 고양이와 큰 개 한 마리를 키우며 극도로 내핍 생활을 한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약간의 기부를 하고 나왔다.
바깥에 온갖 장식물이 있는데 세계 주요 도시와 국가의 거리가 표시됐다. 서울은 거의 1만km란다. “1만km나 멀어”도 있겠지만, “1만km 밖에 안되나”일 수도 있다. 지구는 별로 크지 않다. 멕시코 9천km인데 옛 스페인 사람들은 배로 이동하고 정복하지 않았던가.
아이들도 100km를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행의 가장 큰 변화가 거리감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