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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Aug 01. 2017

당신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합니다

진짜 속마음은 그 반대

  아이들과 동두천 소요산에 다녀왔습니다. 
  소요산은 원효대사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원효가 7세기 선덕여왕 때 소요산 자재암을 창건해서 수행했고, 이곳에 요석공주가 암자 밑 마을에 함께 머무르며 원효를 사모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 불타고 파괴되고, 중건과 보수를 수없이 하며 오늘날에 이른 (기록만) 고찰인 자재암에 관심이 간 것은 사찰 입구에 걸린 현수막 때문입니다. 


 "당신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합니다."


  평범한 문구지만 저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행복하다'가 '햄볶아요'로 변질된 세상에서 위 문구가 어린이 청소년에게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바뀌었거든요.
  "당신이 불행해야 내가 비로소 행복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어떤 과장법이나 은유법이 아니고 아이들은 정말로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을 가져온다고 믿습니다. 제로섬 게임이란 낱말을 모르겠지만 경험으로 분위기로 세상의 본질이 제로섬 게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가질 수(소유) 없다면 살아도 산 것이 아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제로섬 게임에서 행복하려면 타인의 상실과 파탄을 주문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공교육 학교는 사회 다른 영역에서 모두 갖춘 물리적 환경을 가장 마지막으로 받아들입니다. 교실에 가스난로가 설치되고, 대형 TV가 들어오고, 천정형 에어컨이 달리고, 교사의 손에 아이패드가 쥐어지는 순서가 그렇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사회의 작은 변화에 가장 먼저 생리적 정신적 변화를 보입니다. 아이들이 잠수함의 토끼와 같습니다. 산소가 부족한 것을 가장 먼저 아는 녀석이 토끼입니다. 계측기가 발전하지 않은 20세기 초중반, 잠수함에서 산소 부족을 경고하는 역할을 토끼들이 한 것처럼 말입니다. 아이들은 학습을 통해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르침은 효과에 대한 사후적 데코레이션에 불과합니다. 

  애들은 그냥 압니다. 알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통해 알게 됩니다. 
  우리의 상식과 다르게 용어가 변화를 이끕니다. '제로섬' 용어가 나온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제로섬 사회에서 잉태되고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자랐습니다. 제로섬의 가장 대표적 제도인 선거를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표상으로 여기는 현실입니다. 다수표 획득한 사람이 모든 걸 독식하는 제도, 차점자는 모든 걸 잃는 제도를 가장 훌륭한 정치적 장치로 세뇌된 사회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남의 불행을 기원하는, 이제는 남의 불행을 기획하는 행동이 당연한 것 아닐까요.
  사안을 강조하려는 볼드체 표시나 언더라인 긋기로 보지 마십시오.
  아이들은 진정으로 남의 불행이 없이는 내 행복이 없다고 믿고 삽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201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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