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20
벤 로몬드 국립공원에 다녀왔다. 론세스톤에서 남쪽으로 1시간 남짓 달리면 나오는 잘 알려지지 않은 국립공원이다. 태즈매니아에는 19개의 국립공원이 있는데, 벤 로몬드는 스타급 국립공원에 가려져 찾는 이가 거의 없는 곳이다. 하지만 포장도로를 벗어나 정상으로 올라가는 비포장 10Km는 MTB 뿐만 아니라 로드나 하이브리드로 달려도 즐거움을 만끽할만한 코스다. 길 양쪽에 아름드리 나무들이 계속 호위하듯 이어져서 일부러 2단에 놓고 천천히 운전했다. 창문 확 열어젖히고.... 산림욕 효과를 보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자동차로 상당히 높은 고도까지 올라갈 수 있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서 이어지는 등산로는 그야말로 돌무더기 길이다. 산 전체가 돌무더기다. 바위산이 아니라 10자 장롱 만한 돌덩이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멀리 보이는 정상은 크레이들 산처럼 주름이 자글자글한 바위 병풍 같다. 내 지구과학 지식 수준에서 말하자면 이곳이 과거 강의 상류였다는 것이고, 거센 계곡물이 흐르던 지형인데, 주변 지각이 습곡에 의해 융기하면서 오늘날의 지형이 된 것이다.
아이들도 신기한 지형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말없이 걷다가, 둘이 수다를 떨다가, 각자 가지고 있는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로 사진도 찍다가 하면서 걷는다. 걷는 길을 만들었지만 돌을 옮겨와 깔은 것이라 발끝을 집중하지 않으면 발목 접질리기 십상이다. 아이들은 두어 번 넘어졌다.
나는 가슴 아프게도 호주 오면서 사진 잘 찍으려고 새로 산 아이폰을 떨어뜨려 가장자리 액정에 금이 가는 일이 있었다. 한 손으로 사진 찍다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게 오늘이다. 하필 떨어지면서 폰이 회전하더니 액정이 돌멩이 날카로운 부분에 떨어졌다. 뒷면이나 옆면이 아닌 액정이 부딪힌 것이라 용서가 없더라. 폰 작동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에 위안을 삼기로 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값비싼 새 폰이 깨졌다고 하면서 즐거워한다. 잠시라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이 태수는 기쁜 소식을 시하에게 전한다. 내가 일부러 “왜 속 쓰린 이야기를 웃으면서 말하냐.”고 큰소리로 말했더니 더 깔깔거린다. 순진하고 솔직한 것이라 생각했다. 누구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법이고, 심각한 일이 아니라면 약간의 손해 입는 남의 일에 고소해 하는 법이다. (나만 그런가?)
크레이들 국립공원은 먼지 하나 없지만 이곳 벤 로몬드 국립공원은 버려진 쓰레기도 눈에 띈다. 새우깡 봉지 같은 과자 껍데기, 각성 고카페인 음료 캔, 500밀리 우유곽을 주워 왔다. 크레이들처럼 UN 자연유산에 등재되면 5년 마다 심사를 받고 기준 점수 미달이면 등재 취소가 된다. 점수 중에 보존을 위해 방문객을 적절하게 통제하는가 항목도 있다. 그래서 크레이들이나 제주 거문오름이나 요란을 떨면서 방문객센터를 운영하고, 사전 출입 신청을 받는 것이다. 여기 벤 로몬드는 방문자센터도 없고, 아무런 통제가 없다. 해발 고도가 높은 곳까지 차량 진입도 허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한 걷기가 필요한다면 벤 로몬드는 방문 가치가 있다. 최고 고도 주차장에서 산등성이를 넘는 4.5km 길은 명상의 코스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1km 정도만 걸었지만 거대한 돌덩이 말고는 드문드문 키 작은 관목들만 있고, 새조차 날지 않는 극단의 고요를 맛볼 수 있다. 우리는 아무도 만나지 않다가 되돌아 내려오는 길에 올라오는 한 가족을 만났다. 내가 물었더니 산아래 마을에 살고 여기 자주 올라온단다. 우리 아이들 나이로 보이는 소녀의 밝은 얼굴이 인상적이다. 부모와 자주 캠핑을 다니는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와 어떤 점이 다를까 잠시 생각했다. 딸과 엄마는 빈 몸이지만 40대 아빠는 30kg은 돼 보임직한 배낭을 맸다. 머리 위까지 올라온 뚱뚱한 배낭이 주는 상징성이 있다.
태수가 그때그때 감정이 요동치지만 갈수록 안정되는 느낌이다. 장쾌한 자연이나 아기자기한 들꽃이나 나무 열매에도 반응을 한다. 자연 속에 놓아두기만 해도 다 되는 느낌이다. 오늘은 걷다가 내가 떠들고 아이들이 경청하는 시간을 20분 가졌다.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다. 나는 세월호 얘기를 꺼내면서 그동안 만난 다양한 아이들 일화를 말했더니 아주 관심을 갖고 듣더라. 얘기하고 난 후 생각해보니 다양한 아이들이라고 하지만 태수와 겹치는 아이들 얘기가 대부분이고, 시하에게도 해당하는 아이 스토리도 있다보니 관심을 가진 것이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던 2시간의 산행. 그것이 오늘의 핵심이다. 대자연 속에서 사람은 물론 생명체라고는 작은 나무와 풀만 있는 곳에서 걸으니까 아이들 반응도 다르다. 그래서 매력적인 벤 로몬드 국립공원이다.
다시 쓰레기 주운 얘기로 돌아가보면, 못 봤으면 모르지만 일단 인간이 버린 캔이나 과자봉지를 보고는 그냥 돌아서지지 않았다. 머릿속에 프로그램이 심어진 느낌이다. 마음 불편해서 외면하고 그냥 돌아서지지 않는다. 이런 내 스타일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까 국립공원에 버려진 과자봉지를 보고도 외면하거나 심지어 본인이 봉지를 획 하고 버린다고 해도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우리는 너무 과잉 가치 시대를 살고 있다.
벤 로몬드에서 과자봉지를 버린 사람이 크레이들에서는 버리지 않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크레이들은 쓰레기를 남기고 오는 사람이 없다. 보는 눈도 많다. 당연한 문화로 자리잡았다. 도브 호수 주차장 화장실에 휴지통이 없더라. 자기가 쓴 휴지는 가지고 내려가라는 얘기다. 크레이들에서는 절대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사람이 벤 로몬드 같이 눈치 볼 사람이 없는 곳에서 마시던 캔을 획 집어던질 수도 있다. 쓰레기를 버리는 건 상상할 수도 없고 눈에 띈 쓰레기는 주워야 마음 편한 나는 과잉가치시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세뇌된 것이다.
이게 종교처럼 평생을 가고 잘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나와 다른 스타일의 사람을 혐오하게 된다. 그래서 쓰레기 줍는 행위와 도덕적 판단에도 정치가 들어있는 것이다. 좀 더 확장하면 영화 국제시장에 나오는 국기하강식 장면과 이어진다. 저녁 6시에 애국가가 울려퍼지며 게양대에서 국기를 내리면 자동적으로 멈춰서서 가슴에 손을 올렸다. 혹여 왼손을 올린 아이가 있다면 부득이 지적하고 오른손으로 바꾸도록 잔소리하게 된다. 하지만 국기를 24시간 게양하면서 이런 모습은 사라졌다. 국기하강식 때 취해야 하는 매뉴얼이 사라진 것이고, 사람들 머릿속에서도 지워졌다.
이 문제가 교실로 갔을 때 심각해진다. 가장 흔한 문제가 정리정돈이다. 불현듯 “晨必先起하야 整頓寢狀하라”가 떠오른다. 한때 아이들과 사자소학 외우기를 많이 한 탓이다. 아침에 부모님보다 먼저 일어나 잠자리를 정리정돈하라는 말이다. 이걸 외우면서 아이들과 많이 웃었다. “그게 가능해?” 뭐 이러면서....
정리정돈을 잘 하는 아이도 있고 그렇지 못한 아이도 있다. 두 유형의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의 일반적인 반응을 생각해보라. 자신의 편애를 올바른 생활지도라고 굳게 믿는 교사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내가 보기에 불가능하다. 정리정돈 잘하는 아이는 그런대로, 못하는 아이는 또한 그런대로 인정할 수 있을까. 그런 말하는 나를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볼 것이다.
상상해보자. 교실의 모든 아이가 정리정돈을 못한다고 생각하면 아수라장이 따로 없을 것이다. 인정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반대로 모든 아이들이 정리정돈을 잘한다고 생각해보면 어떤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 또한 지옥이다. 사람이라면 모두가 정리정돈을 잘하는 경우가 있을 수 없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을 최상의 모범으로 설정한다는 것이 교실 구성원에게 지옥이 된다. 교실에 로봇을 앉혀놓았을 때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자라온 환경이 서로 다르고, 그래서 생각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다.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추구하는 것도 다르다. 사람 혼자 지낼 수 없기에 내 맘과 다른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면 교육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시하와 태수는 매우 다르다. 시하는 손에 흙이나 먼지가 묻는 걸 거부한다. 태수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손으로 음식을 집었다면 시하는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씻고, 태수는 손가락을 빨아먹어서 음식 흔적을 지운다. 손가락의 침은 옷에 ‘쓰윽’ 닦으며 해결한다. 누구나 시하에게 높은 점수를 주겠지만 (나도 예외가 아니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내 취향을 아이에게 적용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태수가 문제라면 시하도 문제인 걸 알아야 한다. 깔끔이들이 미션수행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태수가 옷에 ‘쓰윽’ 닦는다고 공동체에 피해 주지 않는다. 손가락을 빨아먹는다고 심신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냥 지켜봐주면 아무리 늦어도 스무 살 이후에는 달라진다. 반드시. 그때도 마찬가지라면 그건 다른 차원 문제로 넘어가기 때문에 도덕적 문화적 문제가 아닌 게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앞에서 “교육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하게 말한 것은 내게 오는 아이들이 대부분 선생님들로부터 상처를 입은 경우라서 그렇다. 해당 선생님들은 자신이 상처 입힌 줄 꿈에도 모를 것이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동의 경향성은 겨우 국기하강식에 걸음을 멈춰서는 수준이다. 24시간 게양으로 매뉴얼이 바뀌자마자 사라지는 문제일 뿐이다.